최재천 <다르면 다를수록> 책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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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다르면 다를수록> 책 메모

일상/아무거나

by 알록달록 음악세상 2024. 12. 3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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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멸 위기에 놓인 부전나비 한 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예산이 책정되었다. 많은 환경보호 운동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그 부전나비의 서식지를 몽땅 사들인 후 말뚝을 뺑 둘러 박고는 자축의 술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부전나비의 수는 오히려 더 빨리 줄어들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부전나비의 생태를 연구하기로 했다. 부전나비가 개미와 공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영국의 개미학자에게 연구비가 주어졌다. 그 부전나비의 애벌레는 개미가 개미굴로 데리고 들어와 키워 줘야만 나비가 될 수 있다.

 연구 결과는 의외로 간단했다. 부전나비의 서식지에는 두 종의 개미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부전나비를 데려다 키워 주는 개미는 실내 온도가 높게 유지돼야 발육도 잘되고 사회가 제대로 성장하는 반면 다른 종은 좀 서늘한 실내 온도를 선호한다. 그런데 부전나비를 보호한답시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풀이 너무 자라 개미굴로 햇볕이 잘 들지 않았다. 이렇게 부전나비의 의붓 부모 노릇을 하는 개미들은 상대적으로 잘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처방 역시 간단했다. 부전나비 보호 구역에 동네 사람들이 기르는 소나 말들을 풀어놓을 수 있도록 허락했더니 풀이 짧아지며 개미굴의 온도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나비와 개미는 물론 주민들까지 함께 승리하는 그야말로 환경 친화적이며 생산적인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다.

 방송 매체에 나와 이른바 '전문가의 견해' 를 밝히는 환경 단체 간부들을 볼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너무나 자주 생태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론' 들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젠 늘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고집할 순 없다. 과학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구호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생물과 생물 간의 관계는 서로가 얻는 손익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개미와 진딧물, 그리고 꽃과 벌 사이처럼 양측이 모두 이득을 얻는 관계를 공생이라 부른다. 공생을 좀 더 세분하면 한쪽은 이득을 보지만 다른 쪽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관계를 편리공생이라 하며, 양측이 공히 이득을 취하는 관계는 상리공생이라고 한다.

 한쪽은 손해를 보는 대신 다른 쪽에는 이익이 되는 관계로는 포식과 기생이 있다. 남을 잡아먹고 사는 동물이나 남에게 빌붙어 사는 생물들이 만드는 관계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호랑이와 모기는 비슷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양측이 모두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관계는 말할 나위 없이 경쟁이다. 그런가 하면 나도 손해를 보지만 남의 손해가 내 것보다 크기만 할 때 성립하는 관계는 악의에 의한 관계인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자연계에서는 마땅한 예를 찾기 어렵다.

 생태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네 관계들 중 경쟁와 포식 그리고 기생이 가장 흔하며 '성공적인' 관계들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여 년간의 연구로 이들 관계에 못지않게 수많은 생물들이 공생의 지혜를 터득하여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악의에 의한 관계는 자연계의 그 어느 곳에도 발을 붙이지 못했다. 인간 사회를 제외하고.

 

 

 

 

 

 

 

 

 

 

 

 

 

 

 우리가 그처럼 가슴 설레게 즐기는 섹스 역시 위기관리를 위해 진화한 적응 현상이라면 믿겠는가. 자손을 불리는 방법으로는 무성생식이 유성생식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구태여 암수를 만들 필요 없이 암컷만 낳으면 훨씬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구상의 많은 생물들은 다 암수가 있어 섹스를 즐기도록 진화했을까?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모두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공은 거둘지 모르지만 결국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절멸하고 만다.

 

 

 

 

 

 

 

 

 

 

 

 

 

 

 번식에 관해서는, 성에 관한 결정권은 거의 예외 없이 암컷에게 있다. 주식회사의 경우 투자를 가장 많이 한 최대 주주가 최종 결정권을 쥐는 것처럼, 암수 사이에서도 암컷의 투자가 대부분의 경우 수컷의 투자보다 크기 때문에 성은 어차피 암컷의 특권이다.

 수정을 하기 위해 난자를 파고드는 정자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해 보면 마치 달 표면에 내려앉는 우주선과도 같다. 이 세상에 정자만큼 경제적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또 없을 것이다. 수컷의 DNA에 꼬리만 하나 달아준 것이 바로 정자다. 거기에 꼬리를 움직일 수 있도록 이른바 에너지 제조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소기관들을 몇 개 목 부위에 끼워 넣은 것이 고작이다. 그야말로 덜덜거리는 모터사이클 퀵서비스에 유전물질을 태워 보내는 격이다.

 그에 비하면 난자는 암컷의 DNA 외에도 수정란의 초기 발생에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고루 갖추고 있다. 수정 외의 번식 과정에 암컷보다 훨씬 큰 투자를 한다면 모를까 성에 관한 한 수컷은 기본적으로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 투자는 쥐꼬리만큼 해 놓고 호의를 베풀겠노라 생색을 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음악의 기원을 찾기 위해 동물 세계를 연구하는 접근 방식을 기본적으로 진화생물학적 접근이라고 하는데, 음악의 경우 더욱 어려운 까닭은 인간 사회의 모든 문화권이 예외 없이 음악을 만들고 즐기는 것은 분명하나 음악이 어떻게 우리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와 함께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이나 문화를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그것들이 우리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생존과 번식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리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 질투심도 질투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보다 많은 자손을 남겼기 때문에, 즉 보다 많은 유전자를 후세에 퍼뜨렸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외간 남자가 자기 아내랑 은밀한 시간을 가져도 질투할 줄 모르는 남자는 자기 유전자가 아닌 남의 유전자를 지닌 자식을 먹여 살릴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음악의 기원과 진화는 그리 간단히 풀릴 숙제가 아니다.

 음악의 진화를 고민해 온 진화생물학자들이 내놓은 가설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음악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도 때로 음악의 기원과 기능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지실 텐데, 그럴 때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이 네 가지 진화생물학적 가설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음악이 어떻게 하여 생겨났고 왜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궁극적으로 음악인들과 자연과학인들이 이마를 맞대야 한다. 학제적 연구가 진정 화려한 꽃을 피울 주제가 있다면 음악의 진화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다윈은 그의 1871년 저서 『인간의 유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으로 진화한 어떤 동물이, 수컷이든, 암컷이든, 아니면 둘 다든, 서로 간의 사랑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기 전에는 음과 리듬을 사용하여 서로를 유혹하려 했을 것이다."

 음악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메이팅 마인드』라는 책으로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해진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가 다윈의 생각을 이어받아 정립한 '성선택sexual selection 가설' 이다. 동물행동학자들은 그동안 자연계의 많은 동물들, 그중에서도 특히 새들과 곤출들에서 암컷들이 수컷의 소리를 듣고 맘에 드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그렇다 보니 수컷들은 다른 수컷들보다 더 매력적인 소리를 내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동물들의 소리들은 우리 인간의 귀에도 마치 음악처럼 복잡하고 아름답게 들리게 된 것이다.

 밀러는 동물들의 소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음악도 기본적으로 구애 신호로 시작하여 발달했다고 주장한다. 보다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는 남성이 보다 많은 번식의 기회를 갖게 됨으로써 그의 이른바 '음악 유전자' 가 후세에 보다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우리 가까이 있는 예로 밀러가 자주 드는 이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마약 과다 복용으로 요절한 천재 기타 연주가 지미 헨드릭스이다. 헨드릭스의 음악적 재능이 그에게 장수를 보장하지는 못했지만 그 짧은 생애 동안 그는 공연장마다 따라다니는 수많은 여성 팬들 중 적어도 수백 명과 잠자리를 같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또한 늘 두 여성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고 미국과 독일, 그리고 스웨덴에 적어도 세 명의 자식을 남겼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이기적 유전자 』, 『눈먼 시계공 』, 『확장된 표현형 』 등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모방자meme 개념을 가지고 음악의 진화를 설명한다. 모방자란 오로지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종적으로만 전달되는 유전자gene와 달리 한 세대 내에서 횡적으로도 전하될 수 있는 진화의 단위를 말한다. 데닛에 따르면 음악은 유전자보다 훨씬 빠른 전파 속도를 지닌 모방자에 의해 진화했다.

 옛날 동굴 시대의 어느 남자가 우연히 나무 막대기로 통나무를 두들기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가 두들기던 리듬 중 어떤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듯하게 들려 여러 남자들이 그 리듬을 두들기기 시작해 그들 주변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넓은 지역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리듬으로 통나무를 두들기게 될 것이다. 이 리듬이 바로 일종의 모방자이다.

 여기서 데닛의 가설은 유전자의 도움을 청한다. 모방자 메커니즘의 부산물로 이 리듬을 가장 멋들어지게 두들기는 남자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며 그 리듬에 매료된 여인들에게 호감을 주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단순했던 리듬이 점점 더 복잡한 음악으로 발전해 갈 것이고 보다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내는 남자들은 보다 많은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데닛이 유전자만이 아니라 모방자의 개념을 빌려 음악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유는 역시 모방자의 엄청난 전파 속도에 있다. 동굴 시대 이래 우리의 유전자는 사실상 그리 큰 변화를 얻지 못했다.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음악은 다르다. 지난 1000년만 보더라도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바흐와 베토벤을 거쳐 말러와 쇤베르크는 물론, 엘비스와 비틀즈에 이르기까지 실로 엄청난 '진화' 를 했다. 근래에 와서는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자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례 없이 빈번한 '모방' 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 음악의 시대' 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는 음악이 언어와 마찬가지로 집단 구성원 간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는 일종의 '상호 털 고르기'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침팬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장류 동물들이 서로 상대방의 털을 손질해 주며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던바는 언어란 결국 서로 털 고르기를 하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음악 역시 상당히 대규모로 동료 의식을 고취하고 결속을 다지는 데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가설은 우리말로도 번역된 『언어 본능』과 『빈 서판』의 저자이자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주장하는 것인데 위의 가설들에 비하면 좀 싱거운 편이다. 그는 음악이란 그저 다른 목적으로 진화한 우리 두뇌의 어떤 메커니즘의 우연한, 그러나 '행복한'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핑커와 같은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은 어느 한 가지 기능만을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다 다뤄야 하는 다목적 사고 장치라고 믿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 두뇌는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기왕에 음악 또는 예술을 담당하는 모듈을 가정한다면 부산물은 음악이 아닌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음악. 더 넓게 본다면 온갖 형태의 예술들은 모두 그 기원을 찾기 쉽지 않은 인간 행동의 산물이다. 동물 세계에서 기원의 힌트를 얻는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비교해 보면 그들의 음악과 우리의 음악에는 그 구조의 복합성이나 기능에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사랑하는 여인의 창 밑에서 세레나데도 부르지만, 무슨 이유인지 축구 경기에 앞서 구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군가도 꼭 부른다. 하지만 금메달을 수상할 때 듣는 국가가 주는 감동은 전혀 다르다. 진압대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고 논에도 김을 매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 나 역시 진화생물학자라서 사뭇 단순한 수준에서 음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결코 그 답이 단순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 인간만 갑자기 창조주에 의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면 우리와 오랜 진화의 역사를 공유해 온 우리의 사촌들의 삶을 기웃거리는 일이 전혀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유전체 지도의 초안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뭐니 뭐니 해도 전체 유전자 수일 것이다. 적어도 10만 개는 되리라 예상했는데 그보다 훨씬 적은 3만 개쯤으로 밝혀졌다. 이를 놓고 성급하게 유전자보다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사뭇 성급한 판단이다. 그보다는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 형질 발현에 관여한다는 이른바 '다면발현설' 에 힘을 실어 주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노화를 예로 들어 다면발현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도대체 태어나서 왜 늙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애써 만들었으면 계속 쓸 일이지 무엇 때문에 잠시 사용하다가 폐기 처분을 한단 말인가. 다윈의 자연선택론에 입각하여 이 문제를 분석하면 실마리가 풀린다. 노화 현상을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자들은 젊었을 때 우리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번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유전자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홀연 우리를 저승의 벼랑으로 떠밀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유전자란 원래 자기 자신의 복제만을 위해 존재하는 다분히 '이기적인' 실체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복제에 더 유리한 쪽으로 행동한다. 그런 유전자들이 진화의 역사를 통해 한 기계를 오래 쓰는 것보다는 쓸만한 기계를 만들어 한때 최대한으로 써먹고는 가차 없이 처분하고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 방법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복사체들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처럼 우리 몸속의 많은 유전자들은 여러 가지 요인에 관여하여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언론 매체에 발표되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았다" 또는 "우리를 알코올 중독자로 만드는 유전자를 찾았다"는 식의 뉴스는 결코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예를 들어 우리 머리카락의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도 그 전모가 밝혀졌을 때 유전자 한 개의 소행일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모르긴 해도 몇백 개의 유전자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작업일 것이다. 그처럼 간단한 형질에도 그 많은 유전자들이 매달려 있을 텐데 하물며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거나 쉽사리 술독에 빠지게 만드는 성향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이야 오죽하랴.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로 발표되는 경우도 사실 알고 보면 그 유전자가 그 형질을 유발한다기보다는 정상적인 형질을 갖고 있는 사람의 유전자와 비교할 때 어떤 특정한 유전자 부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뿐이다. 앞으로 이런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면 밝혀질 일이지만 사고는 언제나 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적 결함이 한 곳 이상에서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나의 형질이 발현되려면 여러 단계의 화학반응들을 거쳐야 하고 그 긴 반응 단계에서 사고가 날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만일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늘 스스로를 채근하며 사는 것일까? 당장 이렇다 할 이득을 주는 것도 아닌 듯싶은데 왜 그렇게 도덕 운운하며 사는 것일까? 우리 인간이 자연계에서 보기 드문 '도덕적인 생물' 로 진화한 까닭은 그 옛날 우리 조상 중 좀 더 도덕적으로 행동한 이들이 야비했던 이들보다 더 성공적으로 자손들을 길러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도 보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유리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전파된 이른바 '도덕 유전자들' 이 아직도 우리들 몸속에 남아 우리들로 하여금 거짓을 말할 때마다 자꾸 코끝이 간지럽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자꾸 거짓을 방관하기 시작하여 거짓말쟁이들이 오히려 더 잘살게 되면 자칫 도덕의 진화가 멈출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그저 닥치는대로 물고 뜯는 그런 동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돌고래 수컷들은 늘 두세 마리가 한패가 되어 암컷의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전후좌우에서 번갈아 몰며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 암컷은 끝내 하는 수 없이 자기 몸을 허락한다. 이런 식으로 암컷을 얻을 때마다 수컷들은 순서를 지키며 제가끔 합방의 영광을 얻는다. 그런데 가끔 그 사회에도 먼저 잽싸게 암컷을 취하곤 다른 패로 자리를 옮기는 얌체 수컷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단기적인 이득은 얻을지 모르지만 일단 신의가 없는 친구로 낙인이 찍혀 결국 암컷에게 접근할 자격마저 잃고 만다. 사회적 평판이 나빠진 개체는 결국 그 사회에서도 매장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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