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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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 메모

일상/아무거나

by 알록달록 음악세상 2024. 4. 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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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은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 책 제목을 보고 예상했지만 이 책은 다정함이 생물이 생존하는 데에 얼마나 실용적이고 효과적인지 설명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의 도덕성, 윤리의식을 자극해서 남을 돕자고 타이르거나 훈계하는 책이 아니다.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가거나 복이 온다고 종교나 초자연적인 미신을 믿도록 설득하는 책도 아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다정함이라는 요소가 실질적으로 생존에 가장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걸 오로지 과학적으로, 특히 내가 좋아하는 진화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만약 자기가 다윈과 진화, 또 인류학에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면 분명 유익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 덩치가 크고 힘이 세서 다른 개체를 공격하거나 굴복시킬 수 있는 개체, 남을 잘 속일 만큼 똑똑해서 이익을 보는 개체, 기억력이나 연산 능력이 뛰어나 특정 문제 해결을 잘하는 개체가 유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훨씬 많은 번식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그런 개체들이 성공하고 나머지는 도태된다고 믿는 사람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잠깐 설명하자면, 진화의 관점에서 우월한 개체나 우월한 유전자라는 건 없다. 개체가 특정 시점에 우연히 생존에 유리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 과학자들이 그것을 두고 우월하다고 표현했던 적이 있지만, 그 표현은 진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 어떤 건 절대적으로 안 좋고, 어떤 건 절대적으로 좋다는 오해를 할 수 있다. 특정한 조건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속성은 있을 수 있어도 모든 조건에서 유리한 속성은 없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고 환경은 늘 변한다. 또 특정한 환경에서도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속성은 한 가지가 아니라 수없이 많다.

 

한 개체가 일생의 환경에서 우연히 생존에 유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개체는 살아남아서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생존에 방해가 되는 치명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개체는 죽어서 자식을 남기지 못할 확률이 높다. 번식에 성공한 개체의 유전자는 복제되어 후대에 남게 되고 번식에 성공하지 못한 개체의 유전자는 서서히 유전자풀에서 제거된다. 이렇게 유전자가 그 어떤 목적성도 없고 외부의 개입도 없이 자연적으로 선택된다는 개념이 다윈의 자연선택이다.

 

번식에 성공한 개체의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의 복사본을 물려 받으므로 부모의 속성을 닮게 된다. 물론 우리가 복제라고 하는 세포 분열의 과정은 언제나 실수 없이 완벽한 게 아니라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마치 내가 책 내용을 똑같이 메모하더라도 항상 오타가 발생하는 것처럼). 또 무성생식을 하는 게 아니라면 한 개체의 유전자를 모두 물려받는 것이 아닌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받게 되므로 자식이 아빠나 엄마와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유전자는 매우 정밀하게 복제되기 때문에 부모가 다른 개체들에 비해 다리가 조금 더 길었다면, 자식도 그럴 확률이 높다. 만약 다리가 길다는 게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강력한 특성이라면 이후에도 다리가 긴 개체들은 살아남아서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고 다리가 짧은 개체들은 번식을 하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환경이 크게 변화하지 않고 여러 세대를 거치면 나중에는 대부분의 개체가 그 옛날 선조들에 비해서 다리가 길 것이다(현대에 우리 인간들은 이런 진화의 메커니즘을 활용해서 특정 동물이나 식물 종만을 교배시켜서 우리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새로운 종을 만들기도 하고, 우리가 원하는 성격을 가진 동물로 가축화 시키기도 한다).

 

진화의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고 해도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에서는 그 차이를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매우 긴 시간이 흐르면 먼 후손은 먼 선조와 같은 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 기관이나 행동 방식, 생존 전략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 보노보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현재는 많이 다른 것 처럼. 이렇게 처음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서 마치 나무의 나뭇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듯이 지금의 수많은 종이 생겨났다는 게 다윈의 진화론이다.

 

설명을 위해서 가장 단순하게 썼지만, 실제 진화의 과정은 훨씬 복잡하다. 하나의 유전자는 다른 수많은 유전자와, 수많은 특성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단순히 다리가 긴 것이 생존에 유리했던 것이 아니고 다리를 길게 하는 유전자가 우리가 관찰하지 못한 어떤 다른 이로운 특성을 발현되게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리가 긴 것이 생존에 유리함을 가져다 주지 않았더라도 다리를 길게 하는 유전자가 유전자풀에 퍼질 수 있다. 우리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진화의 단위는 종도 아니고 개체도 아닌 유전자다.

 

 

책 읽기라는 게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 또는 한 번 앉은 자리에서 오래 읽는 건 누구에게나 힘들기 때문에 가벼운 독서를 하고 싶은 사람도 두려움 없이 일단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중반부까지만 읽어도 참 좋았던 책이기 때문에. 어떤 책을 읽든 책의 모든 문장을 다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자유롭게 취하고 싶은 부분을 선택해서 읽는 게 더 많은 책을 읽는 방법이고, 대부분의 작가들의 독서 방법이다. 아래부터는 내 메모이고, 맨 아래는 yes24에서 복사해온 글이다.

 

 


 

 

 

 

추천의 글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죄를 죄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에 뒤집어씌웠다. '적자생존'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도 아니다.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작품인데 앨프리드 월리스Alfred Wallace의 종용으로 다윈은 《종의 기원》 제5판을 출간하며 당신 이론의 토대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다윈의 죄는 거기까지다. 《종의 기원》은 물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그는 생존투쟁struggle for existence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the fittest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 풍성하게 설명했다.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 안에 가둔 것이다. 이 책은 그 틀을 속 시원이 걷어낸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는 침팬지를 대상으로 하여 마음이론의 다양한 면모를 실험적으로 검증해 낸 탁월한 영장류 학자다. 그가 영장류 연구를 거쳐 개의 인지를 연구하기로 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오랫동안 동물행동학이나 생태학에서는 인간과 너무 가까이 살아온 동물은 여구대상으로 채택하기 꺼렸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직의 청정 자연을 찾아가 그곳의 생태를 연구해야 했고 인간에게 오염되지 않은 야생 동물의 행동을 관찰해야 했다. 그러나 개를 연구하기로 한 헤어의 혜안은 적중했다. 동물 중에서 우리 다음으로 높은 IQ(지능지수)를 지닌 동물은 단연 침팬지지만 가장 탁월한 EQ(감성지수)를 지닌 동물을 아마 개일 것이다. 우리 사람 아기는 생후 4개월이면 손가락이 가르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릴 줄 알지만 우리와 유전자의 거의 99퍼센트를 공유하는 침팬지는 그저 손가락 끝만 바라볼 뿐이다. 개는 여러 공들 중에서 정확하게 우리 손가락이 가리키는 공을 물어온다. 개 연구는 인지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제 헤어가 있는 듀크대학교는 물론, 하버드대학교와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 등 세계적 연구기관들이 경쟁적으로 개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이 책에서 헤어는 하버드대학교 재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의 '자기가축화 가설'로 많은 현상을 설명한다. 가축화 과정에서는 보편적으로 펄럭이는 귀, 얼룩무늬 털, 동그랗게 말린 꼬리, 작은 이 같은 특징이 나타나지만, 나는 여기에 정해진 번식기의 굴레에서 벗어나 훨씬 자주 번식하게 된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야생에서 사냥을 기반으로 살아온 늑대는 세계 곳곳에서 절멸 위기를 맞고 있지만 개는 개체 수가 수억 마리에 이르도록 생존에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장 다정한 늑대들을 우리가 잡아다가 길들인 게 아니라 가장 붙임성 있는 늑대들이 우리와 함께 살기로 선택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친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랑 살면서 발현되고 향상된 것이다. 개들도 자기가축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나는 2014년에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라는 책을 출간하며 다윈이 스펜서의 용어를 채용할 때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 표현으로 각색해 'Survival of the fitter'라고 했더라면 인간성의 진화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지금같이 거칠게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그래서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특별히 반갑다. 조금은 외롭던 차에 학문적 동지를 만나 기쁘고, 인류의 기원과 보편적 인간성에 관한 참으로 탁월한 분석을 맞이해 더할 수 없이 반갑다. 아직도 성악설과 성선설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조간신문과 저녁 뉴스가 들려주는 사건, 사고 소식에는 인간의 잔인함이 넘쳐나지만,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정연한 논리로 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서

 

 

 1971년,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에서 인종분리 학교는 위헌이라고 판결한 지 17년이 지나서도 전국 학교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어린이들은 여전히 버스를 타고 멀리 떨어진 다른 구역의 학교에 다녀야 했다. 백인 학생들보다 두 시간은 먼저 일어나야 했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백인 가정은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냈기 때문에 공립학교에 남은 백인 학생은 빈곤층 아이들뿐이었다. 인종 집단 간의 적대감이 넘치는 교실 안에서 면학 분위기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육자, 학부모, 정치인, 인권운동가, 사회복지사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 상황을 우두망찰 지켜볼 뿐이었다.

 카를로스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한 공립 학교의 5학년 학생이었다. 그에게 영어는 제2언어였다. 수업 중에 질문을 받으면 말을 더듬었고, 아이들이 놀리자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 학교생활 거의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지냈다.

 많은 사회과학자가 인종통합 학교 정책은 크게 성공할 거라고 예견했다. 교실 안 모든 어린이가 평등해지면 백인 어린이들이 학교 안의 유색인종뿐만이 아니라 살면서 만나게 될 다른 인종의 사람도 차별하지 않는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며,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어린이들은 성공적 미래의 기틀이 될 일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리학자 엘리엇 에런슨이 카를로스와 그 급우들을 조사해보니 근본적 문제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인종통합 학급이라고는 하나 학급 내 어린이들이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백인 어린이들이 다른 인종 학생들에 비해서 학과 공부든 준비물이든 더 잘 준비했고 휴식의 질도 더 좋았다. 다른 인종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처음이었던 대다수의 백인 교사들은 이 새로운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카를로스가 학생들 사이에서 놀림거리가 되는 것을 본 담임 교사는 카를로스가 최대한 주목받지 않도록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고, 되레 카를로스는 더 고립되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인종 학생들을 아예 교실에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교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못된 백인 학생들이 다른 인종의 학생을 놀려대는 행동을 장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따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전통적 학급 환경에서는 어린이들이 교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이 내재적 갈등 구조, 즉 한 어린이의 성공이 다른 학생들에게 위협이 되는 구조가 해로운 환경을 조정할 수 있는데, 인종통합 학교 정책은 이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이미 몇 년째 그 학교를 다니고 있던 많은 백인 어린이는 다른 인종 어린이들을 침입자, 심지어는 열등한 침입자로 여겼다. 따라서 다른 인종 어린이들이 백인 아이들의 적대감에 위협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런슨은 카를로스의 담임 교사에게 새로운 수업법을 제시했다. 교사가 재판장처럼 일부 학생을 선택해 질문을 던지고 나머지는 소외시키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각각 학습 단원의 일부분을 전달하고 그 부분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카를로스의 반에서는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에런슨은 반을 여섯 모둠으로 나누어싿. 카를로스가 속한 모둠원들은 각각 퓰리처의 일생 가운데 한 시기씩 맡아 공부했고, 지식나눔 시간을 진행하고 나서는 퓰리처 일생에 대해 시험을 보기로 했다. 카를로스는 퓰리처의 중년 시기를 맡았다. 발표할 차례가 된 카를로스가 평소처럼 말을 더듬자 다른 학생들이 '멍청이'라고 부르면서 놀려댔다. 에런슨의 조수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근데 그게 퓰리처의 중년에 대해 배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겠죠. 이제 20분 뒤에 퓰리처의 일생에 대해서 시험을 칠 거예요."

 아이들은 카를로스가 경쟁자가 아니라는 사실, 카를로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카를로스를 긴장하게 했다가는 카를로스가 맡은 부분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질 뿐이었다. 아이들은 호의적인 질문자가 되어 카를로스가 공부한 내용을 차근차근 끄집어냈다. 같은 방식으로 몇 주에 걸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자 카를로스는 다른 아이들과 좀 더 편하게 지내는 듯했고, 이후에는 반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에런슨이 개발한 이 학습법을 '직소모형jigsaw method'이라고 하는데, 한 모둠 내 각각의 구성원에게 정보 일부를 전달하고, 서로 협력하여 조각을 맞추는 방식으로 정보를 완성하는 상호 의존적 수업 방법이다. 일주일에 단 몇 시간만 이 모형을 적용해 수업했을 뿐인데 겨우 6주가 지났을 무렵 엄청난 효과가 나타났다. 에런슨은 어린이들이 모두 인종에 상관없이 자신의 모둠원을 같은 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자존감도 더 높아졌다. 직소모형 학습법을 경험한 어린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상황에도 더 쉽게 공감했다. 아이들이 친구가 되고 나자, 더 표준화된 경쟁적 수업법을 다시 도입하는 것도 안전해졌다. 다른 인종의 어린이들은 모든 점에서 더 크게 개선되었다. 직소모형 학습법은 미국 수천 개 교실에서 수많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되었고, 비슷한 결과를 얻은 바 있다.

 

 적자생존

 협력은 우리 종의 생존에 핵심이다. 우리의 진화적 적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적자'라는 개념이 '신체적 적자'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 논리를 야생에 대입하면, 덩치가 클수록 더 싸우려 들며 그럴수록 덤비려는 자가 적고 따라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최상의 먹이를 독차지할 수 있고 가장 매력 있는 짝을 얻을 것이며 가장 많은 후손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150년 동안 이 잘못된 '적자'의 해석이 사회운동, 기업의 구조조정, 자유시장에 대한 맹신의 바탕이 되어왔으며, 정부 무용론의 근거로, 타 인구 집단을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근거로, 또 그런 평가가 야기하는 결과의 참혹함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어왔다. 하지만 다윈과 근대의 생물학자들에게 '적자생존'이란 아주 구체적인 어떤 것, 즉 살아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며, 그 이상으로 확대될 개념이 아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제5판이 나오던 1869년 무렵에는 강하고 냉혹한 자들이 살아 남고 약한 자들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집단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는데, 다윈은 이 책을 쓰면서 "적자생존이 더 정확하며, 때로는 더 편리하다"면서 자연선택의 대안으로 이 개념을 제시했다.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썼다. 다윈을 위시하여 그의 뒤를 이은 많은 생물학자도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상적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대중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적자생존' 개념은 최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한 연구는 가장 덩치 크고 가장 힘세고 가장 비열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 비축된 에너지를 고갈시켜 면역체계를 약화하고 결국 우리는 더 적은 수의 후손을 남기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격성이 높을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데, 싸워서 다치거나 잘못되면 죽을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적자'는 우두머리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더럽고 잔인하고 짧은' 인생으로 끝날 수도 있다.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데, 다정함이 자연에 그렇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속성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협력은 아주 오래된 전략이다. 수백만 년 전 떠다니는 박테리아로 존재하던 미토콘드리아는 더 큰 단위의 세포 속으로 들어갔고, 미토콘드리아와 더 큰 세포가 힘을 합치자 동물의 몸에 힘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되었다. 우리 몸의 미생물 군집은, 다른 기능도 많지만, 특히 우리 몸이 음식물을 소화하고 비타민을 합성하여 장내 물질을 생성하는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하게 해주는데, 이 협력관계는 미생물군과 우리 몸에 공히 이로운 결과물이다. 개화식물은 대부분의 식물 종보다 늦게 발생했지만,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과의 성공적 협력관계로 번성한 덕분에, 현재 우리의 정원을 지배하고 있다.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육상동물 개체의 5분의 1을 점하는 개미는 5천만 마리의 개체군이 하나의 사회로 기능하는 초개체 동물이다.

 나(이 책에서 '나'는 주로 브라이언 헤어다)는 매년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활용하여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과제를 내주는데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같은 과제를 부여하려 한다. 이 책은 다정함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전략이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물의 행동을 탐구하는데(특히 개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다정함의 이면, 즉 우리의 친구가 아닌 이들에게는 잔인해지는 능력에 관해서도 탐구할 것이다. 우리의 이 이중적 본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적·정치적 양극화를 해결할 새로운 해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다정한 사람

 우리는 진화를 일종의 창조 설화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일종의 선형으로 연속되어온 것이라고. 하지만 진화는 생명체가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의 '완성'을 향하여 깔끔하게 일직선으로 발전해온 과정이 아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성공적으로 진화한 종은 많다. 그들은 우리보다 수백만 년을 더 살았으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수십 종의 다른 종을 만들어냈다.

 사람 종은 약 600만 년에서 900만 년 전 보노보와 침팬지와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나온 이래 호모 속屬 안에서 다른 수십여 종을 만들어냈다. 화석과 DNA 분석 결과, 약 20만 년에서 30만 년 전 사이의 대부분 기간 동안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으며 최소 4종 이상의 다른 사람 종과 공존했음이 밝혀졌다. 이들 호모 가운데 일부는 우리만 하거나 우리보다 더 큰 뇌를 지녔다. 뇌의 크기가 성공의 주된 필수 요소였다면, 이들 호모도 살아남아서 우리처럼 번성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규모 집단이었고 호모 이외의 종에 비해서는 인상적이었지만 기술이 부족했던 이들 무리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전부 멸종했다.

 사람 종 가운데 우리가 유일하게 큰 뇌를 지닌 종이었다 해도, 화석 기록에 우리가 등장한 시기와 우리의 인구와 문화가 폭발적으로 발전한 시기 사이인 적어도 15만 년의 빈틈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았다. 우리와 다른 사람 종을 구분하는 신체적 특징은 우리의 진화과정 초기에 나타났지만, 우리가 아프리카에 나타난 뒤로도 최소 10만 년 동안 우리는 문화적으로 여전히 미숙한 상태였다. 돌날, 좌우대칭을 맞춘 뾰족한 날, 붉은 안료를 바른 유물, 뼈와 조가비 장신구 등은 우리를 유명하게 한 기술이었지만, 혁신이라기에는 감질날 수준이었다.  혁신은 수천 년 동안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을 뿐 확고하게 정착되지는 않았다.

 10만 년 전, 최후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인류가 어느 종이었을지 내기를 걸었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독보적 승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경쟁자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였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18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상 가장 너른 영토에 분포했던 탐험가요, 질긴 생존력을 지닌 전사였다. 그들은 지구의 거의 전역을 개척했고, 불 다루는 법을 깨쳐 몸을 데웠을 뿐 아니라 자기방어와 요리에도 이용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석영, 화강암, 현무암 같은 원료로 만든 아슐 손도끼를 포함하여 발전된 석기를 능숙하게 사용한 최초의 인류였다. 이 원료의 성질이 부스러뜨리거나 얇게 조각내는 기술에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로 눈물방울 모양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연모를 얻었다. 수천 년 후 이를 발견한 자들은 그 돌에 초자연적 힘이 있다고 믿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여러 다른 인류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으며, 우리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 종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10만 년 전까지도 여전히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150만 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가 발명했던 손도끼를 쓰고 있었다. 유전자 분석 결과는 호모 사피엔스의 인구 규모가 멸종 수준으로 감소할 수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호모 에렉투스는 우리를 그저 플라이스토세에 단명했던 또 하나의 사람 종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빨리 되감아서 7만 5000년 전으로 가보자. 호모 에렉투스는 아직 생존해 있었지만 기술은 크게 진보하지 않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으므로, 어쩌면 승자는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만큼 또는 우리보다 머리가 컸다. 신장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우리보다 무거웠고 그 초과분은 대부분 근육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빙하시대를 지배했다.  그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잡식성이었으나 주로 육식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그들이 대단히 기술 좋은 사냥꾼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빙하시대의 모든 덩치 큰 초식동물을 사냥했다. 붉은사슴, 순록 말, 돼지가 주요 사냥감이었고 이따금 매머드도 사냥했는데, 전부 사람보다 훨씬 힘센 동물이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꽥꽥거리는 동굴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들처럼 그들에게도 발화에 필요한 섬세한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FOXP2 유전자가 있었다. 그들은 시신을 매장했고, 병들거나 다친 사람을 보살폈으며, 몸을 안료로 칠하고 조가비, 깃털, 뼈로 만든 장신구로 치장했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한 네안데르탈인은 노련한 솜씨로 잡아 늘린 가죽 조각을 성글게 꿰맨 옷을 입고 있는데, 3000개에 달하는 진주 장식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신비한 동물의 형상을 그린 동굴 벽화를 남겼으며 생존 말기에는 현생인류가 사용한 것과 같은 도구 다수를 사용했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처음 만났을 무렵 그들 무리는 가장 큰 규모였다. 추위에 적응했던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다가오는 빙하를 피해 떠나자 유럽을 차지했다. 7만 5000년 전에 불확실한 기후 조건에서 앞으로 1000년 동안 누가 살아남을지 돈내기를 한다면, 가장 승률 높은 종은 네안데르탈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5만 년 전에 이르면 대세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유리하게 바뀐다. 호모 속의 모든 종이 100만 년 이상 아슐 손도끼의 도움을 받는 동안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연장통은 훨씬 더 복합적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의 나무 창에 약 60센티미터 길이의 자루를 부착하고 1미터에 달하는 날카로운 화살 같은 투창기로 개선했다. 투창기 끝에는 보통 뾰족하게 벼린 돌이나 뼈를 부착했고, 한쪽 끝부분에는 구멍을 내서 투창기 자루를 꽂아서 쏘았다. 이 무기는 반려견과의 공놀이에 사용하는 장난감 척잇Chuck-it과 동일한 물리 법칙으로 작동한다. (중략) 막강한 사냥 기량을 가졌음에도 중간 포식자 이상은 되지 못했던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웬만한 포식자의 공격에도 끄떡없을 신기술로 무장한 호모 사피엔스가 최상위 포식자 지위를 차지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프리카를 떠나 빠른 속도로 유라시아 전력으로 퍼져나갔고, 몇천 년 안에 멀게는 오스트레일리아까지도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위험천만한 횡단을 위해 우리 사람 종은 무기한 여행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음식을 꾸리고 예기치 못한 고장에 대비하며 낯선 사냥감을 포획할 때 사용할 도구를 챙겨야 했고, 바다에서 마실 물을 채워 넣는 것처럼 예상 가능한 문제도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뱃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사항까지 놓치지 않고 주고받을 정도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했으므로 일부 인류학자는 이 무렵 우리의 언어가 이미 완성 단계였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 뱃사람이 수평선 너머에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추론을 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철새의 이동 패턴을 관찰했거나 멀리서 산불 연기가 나는 것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평선 너머에 어딘가가 있다는 생각은 상상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2만 5000년 전에 이르면, 승산은 단연 호모 사피엔스에게로 기운다. 호모 사피엔스는 유목생활 대신 영구 거주지 성격을 띠는 막사를 짓고 수백 명이 모여 살았다. 막사는 도살하는 곳, 조리하는 곳, 잠자는 곳, 쓰레기 버리는 곳 등 기능별로 구획하여 분리되었다. 배불리 먹을 수도 있었다. 찧거나 빻는 도구가 있어 독성 때문에 버렸을 식물을 처리해서 식재료로 만들 수 있었고, 또 음식을 익히거나 구울 수 있는 불구덩이와 화덕이 있었으며, 보릿고개를 대비해 음식을 비축하는 기술이 있었다.

 우리가 가죽을 몸에 두르거나 느슨하게 묶어서 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옷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짐승 뼈로 만든 가느다란 바늘 덕분이었다. 몸에 딱 맞는 포근한 방한복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고열량을 필요로 하는 신체로 발달한 네안데르탈인보다 추위를 잘 견딜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모든 상황에 든든하게 대비한 우리는 온몸이 얼어붙는 빙하기에도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고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까지도 진출할 수 있어 장거리 원정에 나선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

 하지만 후기 구석기시대로 분류하는 이 시기의 놀라운 점은 무기의 발명과 생활 조건이 향상되었다는 점뿐만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우리 종 특유의 인지형식의 근거, 특히 사회적 관계망의 확장이라는 특성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이 장신구로 사용했던 동물의 이빨이나 호박 또는 조가비로 만든 장신구가 내륙의 활동 지역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이내 범위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그 물건이 실용적 가치는 없지만 먼 곳까지 운반할 가치가 있었거나, 아니면 인류 최초의 무역로로 여행하며 난난 누군가에게서 흭득한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 종이 바위에 그린 동물 그림은 무척 정교했는데, 바위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동물 몸의 윤곽으로 삼아서 그림에 입체적 효과를 줄 정도였다. 불빛을 받으며 여덟 개의 다리로 질주하는 듯 묘사된 동굴 벽의 들소는 영화의 원형이라 해도 될 법하다. 말의 입에서 히힝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사자의 포효가 느껴지며 코뿔소 둘이 머리를 맞댄 장면에서는 뿔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실물을 모방했을 뿐만 아니라, 사자 머리 여인, 들소 몸뚱이의 사내 등 신화적 생명체를 상상해서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행동의 현대화를 의미한다. 우리 종은 현생인류처럼 생겼고 현생인류처럼 행동했다. 우리 종의 문화와 기술이 갑자기 다른 어떤 사람 종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고 우월하게 도약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 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며, 그 일은 왜 우리종에게만 일어났을까?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초강력 인지능력이었는데,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함께 일할 수 있다. 알다시피 침팬지의 인지능력도 많은 면에서 우수하다. 우리와 침팬지는 수많은 유사성을 보이지만, 크게 차이 나는 한 가지 능력이 있다. 침팬지는 하나의 공동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도로 의사소통을 하기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이는 침팬지가 똑똑하기는 해도 서로 행동을 맞추고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협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하거나 물려줄 능력이 없으며, 심지어는 몇몇 기본적인 요구 이외에는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걸음마를 떼거나 말을 배우기 전부터 이러한 기술을 습득하는데, 이것이 곧 복잡한 인간관계와 문화적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 된다.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준다. 또 복합적인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었으며,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왔다. 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출중했기 때문이다.

 처음 동물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경쟁적 속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의사소통 능력이나 친화력이 동물뿐 아니라 우리의 인지 발달에도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대를 조종하는 기술, 속이는 기술의 향상이 동물계의 진화적 적응력을 설명해주는 근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똑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감정은 보람차거나 고통스럽다거나 매력적이라거나 혐오스럽다고 느낄 때 아주 큰 역할을 수행한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를 선호하는 성향은 연산능력 같은 인지를 형성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타인의 의도나 욕망, 감정 등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억력, 전략능력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과 결합하지 않으면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친화력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

 수 세대에 걸친 가축화는,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지능을 쇠퇴시키지 않으면서 친화력을 향상시킨다. 어떤 동물이 가축화 될 때는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많은 요소가 변화를 겪는다. 가축화징후라고 불리는 현상의 변화 패턴은 얼굴형, 치아 크기, 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에서 나타난다. 호르몬과 번식주기, 신경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조건이 일정하다면 자기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이 모든 무관해 보이는 변화는 발달과 관련이 있다. 가축화된 종과, 이들과 조상은 같지만 야생으로 남아 있는 더 공격적인 종은 뇌와 신체가 다르게 발달한다. 놀이처럼 사회적 유대를 도모하는 행동의 경우, 야생의 친척 종보다 가축화된 종에게 더 이른 시기에 나타나고 더 오래, 대개는 성인 또는 성체가 될 때까지 유지된다. 다른 종의 가축화 연구는 우리 종의 초강력 인지능력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사람(이 책에서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를 뜻한다)은 네안데르탈인처럼 10명에서 15명 정도의 작은 무리로 살다가 친화력이 높아지면서 1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무리로 전환되었다. 뇌가 더 크지 않더라도, 협력을 잘하는 더 큰 규모의 호모 사피엔스 무리가 다른 사람 종 무리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 종은 갈수록 복잡한 방법으로 협력하고 소통했고 이로써 문화적 역량도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 종은 누구보다 빠르게 혁신할 수 있엇고 또 그 혁신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른 인류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친화력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 수 세대에 걸친 가축화는,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지능을 쇠퇴시키지 않으면서 친화력을 향상시킨다. 어떤 동물이 가축화될 때는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많은 요소가 변화를 겪는다. 가축화징후라고 불리는 현상의 변화 패턴은 얼굴형, 치아 크기, 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에서 나타난다. 호르몬과 번식주기, 신경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조건이 일정하다면 자기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들어가며: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서, 31쪽」중에서

사람 아기는 첫 단어를 말하거나 자기 이름을 배우기 전에 협력적 의사소통을 할 줄 안다. 우리가 기쁠 때 타인은 슬퍼할 수 있으며 역으로 타인이 기쁠 때 우리가 슬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가 나쁜 행동을 하고 거짓말로 덮는 법을 배우기 전에, 혹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전부터, 우리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습득한다. 우리가 타인과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이 능력 덕택이다. 이 능력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로 통하는 관문, 수 세대를 걸쳐 쌓여온 지식을 잇는 문화적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로서 우리의 모든 것이 이 능력에서 시작된다. 많은 위력적인 현상이 그러하듯이 이 능력도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그 시작이 아기가 부모 손짓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1 생각에 대한 생각, 44~45쪽」중에서

가축화가 사람에게 쓸모 있는 희귀종에게서만 발생했음을 시사했던 다른 실험 모델들과 달리, 벨랴예프의 연구는 개체의 밀도가 높아지면 개체들 사이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대규모의 자기가축화라는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보았다. 이 사건은 선택압의 강도, 개체 규모, 그리고 야생 개체군과 가축화 개체군의 유전자격리에 따라서 아주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다. 두려움을 매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생존하는 데 사람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떤 동물이라도 살아남을 뿐 아니라 번성하게 될 것이다.
---「2 다정함의 힘, 83~84쪽」중에서

유인원의 친척 가운데, 오직 보노보만이 우리를 괴롭혀온 치명적인 폭력성에서 벗어난 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탁월한 지능과 지성을 뽐내는 인간이 하지 못한 것을 보노보가 성취한 것이다.
---「3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우리의 사촌, 106쪽」중에서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발달 패턴을 보이고 관련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개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4 가축화된 마음, 122쪽」중에서

우리는 대부분 고통받는 아이를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배우자와 사별한 동료에게는 위로를 전하려 하며, 투병하는 친척에게는 돌봄의 손길을 주고 싶어 한다. 우리는 모두 한때 낯선 사람이었던 사람들과 친구가 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연민과 공감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본성을 길들이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우리 내면에 최악의 속성의 씨앗을 뿌린 것도 동일한 뇌 부위에서 모두 일어나는 일이다.
---「6 사람이라고 하기엔, 195~196쪽」중에서

고프가 지적하는 것은 비인간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인원화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거나 유인원에 비유하다 보면 사람들의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하며, 이렇게 유인원화의 표적이 된 개인이나 집단은 기본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편견보다 유인원화가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 간 격차를 더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7 불쾌한 골짜기, 218쪽」중에서

우리에게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위협으로 여겨질 때, 그들을 우리 정신의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는 것이다. 연결감, 공감, 연민이 일어날 수 있던 곳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현대 사회에서 비인간화 경향은 오히려 가파른 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편견을 표출하던 덩치 큰 집단들이 보복성 비인간화 행태에 동참하며 순식간에 서로를 인간 이하 취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보복적으로 비인간화하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7 불쾌한 골짜기, 226쪽」중에서

미국의 정치제도는 만인이, 최악의 적까지도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 우리는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지도자는 외면하고 타인에게도 인간애를 실천할 것을 주장하는 지도자에게 정당과 소속을 떠나서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
---「8 지고한 자유, 279쪽」중에서

오레오와 나눈 우정과 사랑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지금까지의 적자생존은 틀렸다.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

다정함을 무기로 삼아 번성해온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와 미래
분노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하다!


늑대는 멸종 위기에 처했는데,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개는 어떻게 개체 수를 늘려나갈 수 있었을까? 사나운 침팬지보다 다정한 보노보가 더 성공적으로 번식할 수 있던 이유는? 신체적으로 우월한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끝까지 생존한 까닭은? ‘21세기 다윈의 계승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이에 대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가장 강한 최적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며 최후의 생존자는 친화력이 좋은 다정한 자였다고 말하는 한편, 친화력의 이면에 있는 외집단을 향한 혐오와 비인간화 경향도 포착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 또한 교류와 협력이 기반이 된 친화력이다. 우리 종은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친구를 만듦으로써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읽는 자가 살아남는다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상적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20쪽)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적자생존’은 사실 다윈이 고안한 표현이 아니다. 다윈은 생존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적자가 되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오히려 다윈 이후의 생물학자들이 자연을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해왔던 것이다. 헤어와 우즈는 적자생존을 일컫는 ‘Survival of the Fittest’를 변형한 ‘Survival of the Friendliest’를 책의 원제로 삼고,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생존의 필수 요소는 ‘친화력’으로, 이는 나와 다른 상대방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특히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에게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헤어는 해마다 개체 수가 늘어가는 개에게서도 이 능력을 발견한다. 그는 먼저 자신의 반려견인 오레오와 함께 손짓 실험 놀이를 진행하는데, 실험은 간단하다. 한쪽에만 먹이를 숨긴 컵 두 개를 놓고 헤어가 손짓으로 먹이가 든 컵을 가리켰을 때, 오레오가 정말로 손짓의 의미를 이해하고 먹이를 찾아내는지 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오레오는 빠르게 달려가 먹이를 찾아낸다. 오레오뿐 아니라 다른 개들과도 변형된 실험을 여러 차례 시도한 뒤, 헤어는 개들이 손짓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같은 실험을 보노보와 침팬지에게 시도했을 때, 친화력이 좋은 보노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시선의 의도를 파악해 먹이를 찾아내지만 친화적이지 않은 침팬지는 계속해 실험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손짓과 몸짓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는 종이 바로 사람이다. 사람 아기는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부모와 눈을 마주치고, 손짓과 몸짓의 의도를 파악한다. 사람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이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 종은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타인과 협력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타인과 마음으로 소통함으로써, 우리 종은 감정반응을 조절하고 자기통제력을 갖추며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한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다정하게

“우리 종이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의를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36쪽)

친화력은 모든 가축화된 종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질이다. 개는 가축화되었지만 늑대는 가축화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이 늑대를 의도적으로 가축으로 번식시켜 개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개는 스스로 가축화된 종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던 친화력이 좋은 개는 수렵채집인 거주지 근처에서부터 사람들의 배설물을 먹으며 살아남았고, 이렇게 친화력이 좋은 개들 사이에서만 일어난 번식으로 이들은 사람과 더 친화적인 동물로 변하게 되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여러 가축화징후(탈색, 펄럭이거나 작아진 귀, 작은 이, 온순함, 작은 뇌, 더 잦은 번식주기 등)다. 이런 가축화징후는 홀로 살아남은 사람 종인 호모 사피엔스에게서도 나타났는데, 이는 곧 사람도 가축화되었음을 뜻한다.

친화력이 상승한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연결망을 확장했고 기술 혁신을 이루어냈으며, 개선된 기술로 더 많은 양식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아진 집단은 또다시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하지만 기술 혁신만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종은 ‘집단 내 타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범주도 만들어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같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 같은 동호회 사람이면 우리 집단이라고 인식한다. 우리는 공통의 사회규범을 공유하는 타인도 같은 집단의 사람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서로를 돕는다. 이런 ‘집단 내 타인’을 향한 친화력은 집단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타인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결속시킨다. 이렇게 “우리 종은 집단 구성원의 정의를 확장”시키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포용력이 높은 보노보뿐 아니라 그 어떤 동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친화력의 이면에 자리하는 공격성과 혐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32쪽)

내집단을 향한 친화력 상승은 외집단에 대한 편견을 공고히 하고 외집단 구성원을 배제하기도 한다. 마치 개가 자신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면 짖는 현상과도 같다. 자신의 집단, 가족에 위협이 되는 외집단이 등장하면 우리 뇌에서는 ‘마음이론’ 활동을 담당하는 부위의 활동이 둔화된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약해지면 공감능력은 사라지고 쉽게 상대방을 비인간화할 수 있다. 친화력이 있던 자리에 공격성과 혐오만 남는 것이다.

헤어와 우즈는 ‘유인원화’와 ‘상호적대감’을 이 현상의 예시로 든다. 유인원화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 사람을 ‘사람 이하의 유인원’으로 비유하는 것을 말한다. 크테일리의 연구에 따르면, 백인들은 흑인과 아시아인이 유인원에 더 가깝다고 보며, 헝가리인에게는 롬인(집시)이, 테러 직후 영국인에게는 무슬림이 자신들보다 유인원에 가깝다고 여긴다. 친화력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상호적대감이다. 서로의 집단에 대해 비인간화가 진행되면, 내집단을 비인간화하는 외집단에 대한 ‘보복성 비인간화’가 발생하고, 이로써 집단 간의 갈등이 더욱 심해진다. 이는 현재 인종, 국가뿐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특히 최근 전 세계에서는 ‘사회지배 성향’과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로 구성된 대안우파가 출현하고 있는데, 내집단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지배 성향의 사람들과 외집단에게는 혐오로 대응하는 우파 권위주의 성향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호적대감을 바탕으로 더욱 심한 비인간화를 일삼고 있다.

양극화의 대척점에 선 인류의 미래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300쪽)

이 책은 증오를 부추겨 권력을 쥔 트럼프 시기에 쓰였다. 트럼프가 멕시코의 “국경 장벽은 저 짐승들로부터 보호해줄 동물원 담장 같은 것”이라고 말했을 때, 민주당 의원이었던 일한 오마는 “원숭이가 높이 올라갈수록 보이는 것은 엉덩이뿐이다”라며 앙갚음했다.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연설이 있고 몇 주 뒤에는 급진 좌파 단체인 안티파 시위자들이 우파 연설가에게 항의하기 위해 집결했다. 화염병에 불을 붙이고 유리창을 깨며 이목을 집중시킨 시위는 표면적으로는 성공한 듯했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에 따르면, 상대방을 외집단으로 규정짓고 그 집단을 비인간화하거나 폭력시위를 감행하는 일은 “효과를 볼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에 따르면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외집단을 비인간화할 때, 상대방에게 최악의 폭력 행위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거나, 혐오감을 느끼는 언어로 묘사하는 것도 가장 위험한 형태의 ‘증오언설’이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답은 바로 접촉과 교류다. 교류가 잦을수록 내집단의 구성원이 위협받을 때 나타나는 ‘보복성 비인간화’의 순환 고리를 ‘보답성 인간화’로 변화시킬 수 있다. 대안우파의 사람들이 동성애자, 흑인 재소자, 이민자, 노숙자 등 소수자와 접촉할수록 관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거나, 제2차 세계대전에 유대인의 생존을 도왔던 유럽인들 대부분이 전쟁 전 유대인과의 긴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보았을 때도, 접촉과 교류는 비인간화와 배척, 그리고 혐오를 줄일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는 ‘지옥도’를 보는 듯하다. 지지하지 않는 정당과 집단에 대한 비난과 비인간화가 심각하고, 젠더 갈등의 정도는 더 심해지고 있다.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은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며 양극화를 주도한다. 공론장에서는 거칠고 날 선 혐오의 말만 들린다. 마치 서로가 최적자가 되려는 ‘적자생존’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너를 제압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기계발과 각자도생의 메시지가 학교와 기업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으며 분노로 일관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음을.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정함으로 대응해야 한다. 만나고,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지 않고 교류와 접촉의 기회를 열어보는 것. 과거의 인류가 그래왔듯,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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