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책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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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책 메모

일상/아무거나

by 알록달록 음악세상 2024. 3. 2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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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난 어린이를 위해 쓴 시(동시)를 좋아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읽고 맘에 들면 메모하는데 동시가 아닌 시는 잘 메모하지 않았다

왜냐면 읽자마자 무슨 말을 하려 하고 있는 건지 바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아서

근데 잘 이해하고 싶은 거지 싫어하는 게 아니다

시인을 선망한다

읽은 책은 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라는 시집이다

이번에도 내 소양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표현들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맘에 들거나 눈물이 나오려고 했던 시 몇 개를 메모했다

많이 적으면 저작권 침해일 것 같아서 몇 개만

시에서 말하려고 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재밌다고 느꼈기 때문에 시를 좋아한다면 조심스럽게 추천해 보고 싶다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특별한 일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인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웃지 마세요 당신,

 

 

오랜만에 산책이나 하자고 어머니를 이끌었어요

언젠가 써야 할 사진을 찍어두기 위해서였죠

팔짱을 끼며 과장되게 떠들기도 했지만

이 길을 또 얼마나 걷게 될지

 

사진관에 들어섰을 때

어르신 한 분이 사진을 찍고 계셨어요

어머니가 급격히 어두워졌어요

 

나도 저렇게 하는 거냐

 

이게 요즘 유행이라며

평소에 미리 찍어두는 게 좋다며

나도 젊을 때 찍어둬야겠다며

쫑알대는 내 소리에는 눈도 맞추지 않으시더니

 

사진사가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자

우물우물 급히 말씀하셨어요

 

나 웃으까?

 

그 표정 쓸쓸하고 복잡해서 아무 말 못했어요

 

돌아오는 길은 멀고 울퉁불퉁했고

 

웃지 마세요

그래요 웃지 마세요 당신,

 

 

 

 

 


 

 

 

 

 

선물

 

 

어떤 나라에 '눈사람 택배'라는 게 있다 하네요

눈이 내리지 않는 남쪽 지방으로

북쪽 지방 눈사람을 특수포장해 보낸다 해요

 

선물도 그쯤 되면 신비 아닌지요

받을 때 눈부시지만 녹아 스스로 자랑을 지우니

애초에 부담마저 덜어줄 걸 헤아렸겠지요

 

다시 돌아간다면 그리 살고 싶네요

언젠가 녹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왜 손가락을 걸었던지요

 

그때 그 반지, 눈사람 속에 넣겠어요

 

동그라미 두 개가 허공을 품었다 놓아준 것처럼

지우는 법을 가르쳐준

눈사람

 

그런 선물이라면

 

그런 아득함이라면

 

 

 

 

 


 

 

 

 

 

 

 

사라진 왕국

 

 

감각은 어떤 순서로 몸을 나가는지

신경이 죽어가는 어떤 환자를 깨우려

의사가 환자의 젖꼭지를 비틀 때,

 

때때로 너무 세게 비틀어

젖꼭지가 떨어져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되도록 무얼 했을까

 

다 떨어져나가도록 우리는,

 

 

 

 

 

 


 

 

 

 

 

 

 

아직도 숨바꼭질하는 꿈을 꾼다

 

 

이대로 깜빡 해가 질 텐데

누가 나 좀 생각해주면 안 되겠니

 

너무 꼭꼭 숨어버려 너희는 나를 잊은 채 새로 놀이를 시작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갈 수 없잖아

벗겨놓은 바나나가 시꺼멓게 변할 텐데

 

적당히 들켜줄걸 그랬어

들켜주고 즐거울걸 그랬어

 

그렇기도 해

너무 꼭꼭 숨는 건 숨바꼭질이 아니지

 

놀이는 또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선생님은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나를 호명하지 않고· · · · · · 내 차례는 더이상 오지 않았어요

 

어서 가서 감자 넣은 갈치조림을 먹고 싶어

붉은 매운 양념을 먹고 싶어

 

포도나무가 어두워지기 전에,

 

 

 

 

 

 


 

 

 

 

 

 

선글라스

 

 

쌍커풀 수술에 실패한 언니는 잘 때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아

침대 모서리에 네 번이나 걸려 넘어졌다

그때부터 그녀에게는 색깔이 따로 없었다

 

벚꽃놀이 왔는데 왜 벚꽃이 없어?

 

우리는 색깔 없는 세상을 함께 보았다

 

형부는 무뚝뚝해져갔고

부추겼던 사람도 구석이 되어 있었고

 

이렇게 무채색으로 그리면 다 수묵화가 될까, 라는 중얼거림이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이 회복될까, 라는 말과 비슷하기도 했으니까

 

무엇보다 저를 보는 일이 가장 무서웠을

그래서 죽자고 벗지 못하는

검은 안경은,

 

 

 

 

 

 

 


 

 

 

도서관에서 책 4개를 빌려왔는데, 4개 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책 추천 겸 메모글 더 올릴 예정이다

다음 글은 내가 좋아하는 임경선 작가님의 책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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