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책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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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책 메모

일상/아무거나

by 알록달록 음악세상 2025. 6. 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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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쉬기가 힘들어. 목이 매여. 이 책을 읽는 내 숨소리가 짐승이 흥분했을 때 내는 소리 같아. 책 속의 글씨들이 총을 들고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종이에 인쇄된 검정색 잉크가 나를 죽이려는 군인의 눈동자같아. 무서워서, 그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나는 책을 덮지 못해. 알고 싶어. 더 알고 싶어. 사람들이 정말로 겪었던 일들을. 허망하게 소멸된 온기들을. 눈송이가 닿아도 녹지 않을 만큼 싸늘하게 식어버린 별들을. 죽어간 꽃들을. 꿈들을. 진실을.
  있잖아. 나는 이 사람의 글을 읽다보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이토록 필사적이고 처절하게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까. 인간이 제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들을 끝도 없이 상상하며 얼마나 자주 영혼까지 사무치는 떨림을 경험했을까.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까? 가끔 그럴 때 있잖아. 너무 끔찍해서, 공포스러워서 온몸의 혈관이 수축하는 것 같은. 글을 쓰다가 말고 눈을 감은 채 위태로운 숨을 내뱉는 작가님의 모습이 떠올라.
 
 
 
 
 
 
 
 
 
 
 
 

 
 
 
 만족할 만한 글을 쓴다는 건 역시 간단하지 않지만,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인간의 상처를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내 상처가 곧 인간의 상처니까 내 마음부터 제대로 들여다보고 표현할 줄 알아야겠지.
근데 나는 왜 지금까지 사람들이 겪은 일을 몰랐을까. 지금까지 학교에서 뭘 배웠을까. 수능 공부 할 시간에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나치게 뜨거운 그걸 천천히 먹는 동안, 유리문 밖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가 깨어질 듯 연약해 보였다.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 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모르는 여자들과 함께, 그녀들의 아이들과 손을 나눠 잡고 서로 도우며 우물 안쪽 벽을 타고 내려갔다. 아래쪽은 안전할 줄 알았는데, 예고 없이 수십 발의 총탄이 우물 입구에서 쏟아져내렸다. 여자들이 아이들을 힘껏 안아 품속에 숨겼다. 바싹 마른 줄 알았던 우물 바닥에서 고무를 녹인 듯 끈끈한 풀물이 차올랐다. 우리들의 피와 비명을 삼키기 위해.
 
 
 
 
 
 
 
 
 
 
 
 
 
 
 
 그때 알았다.
 파도가 휩쓸어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 전에 능선으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고, 누구의 도움도 믿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등성이 끝까지. 거기, 가장 높은 곳에 박힌 나무들 위로 부스러지는 흰 결정들이 보일 때까지.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엔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 해도 더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계속해봐야지, 일단은.
 그건 인선의 오래된 말버릇이었다. 함께 취재 여행을 다니던 시절, 문제가 있는 인터뷰이를 만나거나 섭외된 장소에 말썽이 생겨 내가 허둥거리면 동갑내기 인선은 그렇게 선선히 말하곤 했다.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게. 내가 문제를 해결하든, 절반 정도만 해결하든, 마침내 실패하고 돌아오든 그녀는 장비들을 세팅하고, 현장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놓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 영상을 녹화해야 할 경우에는 캠코더를 고정시켜놓고, 스틸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서 웃으며 말했다.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해.
 그 웃음에 문득 전염되어 내 마음이 밝아지면, 내 밝아진 얼굴에 안심한 인선의 눈이 더 환해졌다.
 뭐,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이 주문처럼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아무리 까다로운 인터뷰 상대를 만나도,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생겨도,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침착한 얼굴을 보면 더이상 당황할 필요도, 허둥거릴 이유도 없다고 느껴졌다.
 
 
 
 
 
 
 
 
 
 
 
 
 
 
 
 
 
 이상하지, 눈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인선이 말했다.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까무러칠 것같이 아팠는데,
 정말 차라리 까무러치고 싶었는데, 왜 그때 네 책 생각이 났는지 몰라.
 거기 나오는 사람들, 아니, 그때 그곳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 말이야.
 아니, 그곳뿐만 아니라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들 말이야.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완곡한 긍정이 분명해 보이는 그 대답에 이어, 내가 내놓을 어떤 사과와 자책과 후회의 말도 거부하겠다는 듯 빠르게 인선이 다음 말을 이었다. 더이상 귓속말처럼 속삭이지 않는, 갑자기 모든 통증을 이겨낸 듯 또렷해진 목소리였다.
 
 
 
 
 
 
 
 
 
 
 
 
 
 훅, 하고 뜨거운 게 명치에서부터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면 견딜 수 없었어. 집이 싫었어. 외딴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삼십 분 넘게 걸어야 하는 길도 싫고, 버스에 실려 도착하는 학교도 싫었어. 수업 시작을 알리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싫었어. 수업시간이 싫고, 아무것도 그리 싫어하지 않는 것 같은 아이들이 싫고, 주말마다 빨아서 다려 입어야 하는 교복이 싫었어.
 그러던 언젠가부터 엄마가 싫어지기 시작했어. 그냥, 이 세상이 역겨운 것처럼 엄마가 역겨웠어. 나 자신이 혐오스러운 것과 똑같이 엄마가 혐오스러웠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지긋지긋하고, 흠집투성이 밥상을 꼼꼼히 행주질하는 뒷모습이 끔찍하고, 옛날식으로 틀어올린 하얗게 센 머리가 싫고, 무슨 벌을 받는 사람처럼 구부정한 걸음걸이가 답답했어. 점점 미움이 커져서 나중에는 숨도 잘 쉴 수 없었어. 무슨 불덩이 같은 게 쉬지 않고 명치께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았어.
 결국 집을 나온 건 살고 싶어서였어. 그러지 않으면 그 불덩이가 나를 죽일 것 같아서.
 
 
 
 
 
 
 
 
 
 
 
 
 
 하지만 실톱을 깔고도 엄마는 자주 꿈을 꿨어. 숨을 죽여 몸서리를 치고, 이따금 들고양이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껴 울었어. 그 모습, 그 소리가 나한텐 지옥이었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다신 안 돌아올 거라고 그때 스스로에게 맹세했어. 저 사람이 내 인생을 더이상 어둡게 채색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구부정한 등과 끔찍하게 여린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섯 살 모습으로 내가 눈밭에 앉아 있었는데, 내 뺨에 내려앉은 눈이 이상하게 녹지를 않더래. 꿈속에서 엄마 몸이 덜덜 떨릴 만큼 그게 무서웠대. 따뜻한 애기 얼굴에 왜 눈이 안 녹고 그대로 있나.
 
 
 
 
 
 
 
 
 
 
 
 
 
 엄마가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때 국민학교 졸업반이던 엄마랑 열일곱 살 이모만 당숙네에 심부름을 가 있어서 그 일을 피했다고 엄마는 말했어. 다음날 소식을 들은 자매 둘이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국민학교 운동장을 헤매다녔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 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죽은 얼굴들을 만지는 걸 동생한테 시키지 않으려고 그랬을 텐데, 잘 보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워서 엄마는 이모 소맷자락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고서 매달리다시피 걸었대. 보라고, 네가 잘 보고 얘기해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대.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그후로 엄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야기는커녕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마침내 노인이 입술을 떼었다. 통역자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놀라운 집중력으로 오직 카메라만을 응시한 채 대답했다.
 좋아. 내가 이야기해줄게.
 카메라 렌즈를 꿰뚫고, 그 뒤에 서 있었을 인선의 눈까지 관통해 날아온 그 눈의 빛이 내 눈을 찔렀다. 오랜 시간 그 만남을 기다려온 사람의 대답이라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 짧은 승낙의 말에 그의 인생 전부가 들어 있다고.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속솜허라.
 동굴에서 아버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에요.
 
 양치잎 같은 그림자가 벽 위를 미끄러지며 소리 없이 솟아올랐다.
 
 숨을 죽이라는 뜻이에요. 움직이지 말라는 겁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거예요.
 
 손깍지 낀 그녀의 두 손이 풀렸다가 다시 단단히 매듭지어졌다.
 
 동굴 입구를 막은 돌 틈으로 빛이 새어들어왔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두툼한 점퍼를 벗어서 입혀줬던 기억도. 열이 나지도 않는 내 이마에 손을 짚으면서 아버지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어요.
 감기 들리민 안 돼여. 정신 바짝 차리민 아프지 않을 수 이서. 정말로 멩심해야 돼여.
 집으로 가자고 내가 속삭여 말하면 아버지는 낮고 단호하게 대답했어요.
 그 집에 이시면 안 돼여.
 이렇게 추운 데서 어떻게 자느냐고 내가 물으면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어요.
 밤낫이 어신 거라이. 군사작전이라는 건.
 어멍이 기다릴 건디.
 내가 어멍이라는 말을 뱉은 순간 아버지의 몸 전체가 움찔 떨리는 걸, 전류가 옮겨온 것처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릴 따라와서야 해신디.
 돌 틈으로 들어오던 빛이 흐려지다 캄캄해지기 직전에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해요. 돌 틈을 올려다보는 눈에서, 철회색으로 센 머리카락에 맺힌 눈비에서 유리구슬같이 반들반들한 빛이 났어요.
 어떵할 수가 이시냐. 억지로 끄성 올 방법이 어디 이시냐. 아이를 살려사주. 이 아이가 무신 죄가 이서.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스쳐가고 있었을 상상들의 내용을 몰랐지만, 절망적인 결론에 다다를 때마다 내 손을 잡는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의 몸에서 배어나온 조용한 전율이, 빨래를 쥐어짜는 순간 쏟아지는 물처럼 손을 적시는 걸 느꼈어요.
 
 
 
 
 
 
 
 
 
 
 
 
 
 
 
 
 
 
 어둠이요.
 
 어둠이 거의 기억의 전부예요.
 
 깜박 잠들었다가 눈을 뜰 때마다 혼란스러웠어요. 여기는 집이 아니라 동굴이고, 얼굴도 몸도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손이 내 손을 아직도 쥐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얼마 뒤에 찾아왔어요. 그 손이 아니었다면 나는 소리를 냈을 거예요. 엄마를 찾거나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몰라요. 그걸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다른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잠결에라도 내가 소리 내지 않게 하려고. 언제 그 굴 앞을 지나갈지 모를 존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나한테는 앞장서 가라고 하고, 아버지는 바닷게처럼 옆걸음을 걸어서 나를 따라왔어요. 두 사람의 발자국을 조릿대 잎으로 쓸어 지우면서.
 이디서 어디로 가, 아빠?
 내가 멈춰서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방향을 알려줬어요. 더이상 길이 없는 산속으로 접어들면 나에게 등을 내밀어 업히라고 하고, 그때부턴 당신의 발자국만 쓸어내며 비탈을 올랐어요. 업힌 채로 나는 발자국들이 사라지는 걸 똑똑히 지켜봤어요. 마술 같았어요. 매 순간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사람들처럼, 우린 단 한 점의 발자국도 남기지 않으며 걷고 있었어요.
 
 흑백사진 석 장이 차례로 화면을 채우고 사라졌다.
 해송 숲 가운데 흰옷 입은 남자 넷이 서 있었다. 철모를 쓴 군인 넷이 그들에게 과녁 조끼를 입히고 있었다. 네 쌍의 모습이 측면에서 클로즈업되어, 차려 자세로 서 있는 청년들의 콧날과 인중, 턱과 목을 잇는 앳된 선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카메라에 가장 가까워 얼굴이 크게 보이는 청년의 입술은 긴장한 듯 다물렸고, 막 침을 삼킨 듯 목의 얇은 피부 아래 성대가 튀어나왔다.
 다음 사진에서 청년들은 과녁 옷을 입고 한 명씩 소나무에 묶여 있었다. 사진의 화각이 좀전보다 넓어져, 오 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엎드려쏴 자세로 과녁을 겨눈 병사들이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사진에서 청년들의 몸은 비틀려 있었다. 끈으로 묶인 허리 위쪽 상체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턱이 들리고 고개가 젖혀졌다. 무릎이 오그라졌다. 입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여느 때와 달라져서 멍하게 벽에 기대앉아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나를 불렀어요. 집히는 대로 생고구마나 오이 조각 두어 개, 귤 한두 알을 내 손에 쥐여주며 말했어요.
 느네 아방 가져당주라. 안 받으민 입에다 넣어드려불라.
 아버지가 그것들을 먹다가 문득 환상에서 빠져나오길 어머니는 바랐던 것 같아요. 그 방법이 정말 통하는 날도 있었어요. 내 손에서 귤을 건네받으며 아버지는 반쯤 웃었어요. 마치 두 세계를 사는 사람 같았어요. 한 눈으로는 나를 보고 다른 한 눈으론 내 몸 너머 다른 빛을 보는 것같이, 어두운 방인데도 부신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어요.
 
 
 
 
 
 
 
 
 
 
 
 
 
 
 뼈들을 본 뒤부터야.
 인선이 말했다.
 ·····만주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아미가 죽은 다음이거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일 거라고 짐작했다. 만주 촬영이라면 벌써 십 년 전, 인선이 후암동에 살던 때다.
 그 가을에 유골들이 발굴됐어.
 어디에서?
 나는 물었다.
 제주공항, 하고 대답하며 인선이 목소리를 낮췄다.
 ·····활주로 아래에서.
 
 
 
 
 
 
 
 
 
 
 구덩이 가장자리에 있던 유골 한 구가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어.
 
 다른 유골들은 대개 두개골이 아래를 향하고 다리뼈들이 펼쳐진 채 엎드려 있었는데, 그 유골만은 구덩이 벽을 향해 모로 누워서 깊게 무릎을 구부리고 있었어. 잠들기 어려울 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쓰일 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구덩이들을 향해 열 명씩 세워졌을 거라는 추정 기사가 사진 아래 실려 있었어. 뒤에서 총을 쏘아 구덩이로 떨어지게 하고, 다음 차례의 사람들을 다시 줄 세워 쏘기를 반복했을 거라고.
 그 유골만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가, 흙에 덮이는 순간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그때 들었어. 그 유골의 발뼈에만 고무신이 제대로 신겨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을 거라고.
 
 
 
 
 
 
 
 
 
 
 
 
 
 
 산 위 무장대 삼백 명과 내통할 수 있다고 군경에게 의심받을 나이의 남자는 맏아들뿐이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오직 아버지만 걱정했어. 이북 사투리를 쓰는 경찰들이 마을마다 들이닥쳐서 젊은 남자들을 잡아가 실적을 올린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니까. 일제 때 부역하던 고등계 형사들이 그대로 남아 해방 전에 하던 대로 고문을 한다고, 그렇게 읍내 경찰서에서 죽은 고등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뒤로는 아버지 혼자 동굴에 숨어 지내게 했대. 동굴에서 아버지는 낮엔 호롱불을 켜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시국이 지나가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시험을 쳐보고 싶다고 생각했대―, 해가 지면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불을 끄고 앉아 있었어. 자정 녘에야 집에 들러 식은밥을 먹고 눈을 붙이고, 찐 감자 서너 알이랑 종이에 싼 소금 한 첩을 동트기 전에 싸 들고 다시 동굴로 올라갔대.
 
 그 11월 밤에도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동굴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이었어. 건천을 건너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며 별안간 사위가 밝아졌대. 집들이 불타기 시작한 거야.
 어디로도 움직여선 안 된다는 걸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알았어. 건천 기슭 대숲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마을 공터 쪽에서 일곱 발 총성이 울렸대. 뒤이어 군인들이 호각을 불며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걸 아버지는 숲 사이로 지켜봤어. 먼 거리였지만 손을 잡고 걷는 두 동생을 알아보았대. 더 어린 아이들을 앞세워 걸리거나 아기를 업은 여자들, 허리가 굽은 노인들이 넘어지거나 빨리 걷지 못해 자꾸 행렬이 지체됐는데, 그때마다 군인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개머리판을 휘둘렀대.
 더이상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아버지는 마을로 달렸어. 뒤돌아보자 가호 수가 더 많은 아랫마을에서도 불길이 타오르는 게 보였대. 불꽃이 얼마나 크고 밝은지, 연기가 솟아 닿는 구름의 흰빛이 보였대.
 집담과 밭담들, 돌로 된 집들의 벽체들만 남기고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어.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자 마당 가득 붉은 게 흩어져 있어서 놀랐는데, 달아오른 고추장 장독이 터진 거였어. 집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총소리가 들렸던 팽나무 아래로 달려가보니 일곱 명이 죽어 있었대. 그중 한 사람이 할아버지였어. 가호마다 주민 명부를 대조한 군인들이, 집에 없는 남자는 무장대에 들어간 걸로 간주하고 남은 가족을 대살한 거야.
 집까지 시신을 업고 가서 마당 가운데 뉘어놓고,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댓잎 한아름을 끊어왔대. 헝겊 대신 그걸로 얼굴과 몸을 덮고, 아직 잔불이 타고 있는 창고 자리에서 자루가 타버린 삽을 끌어냈대. 달궈진 쇠가 식기를 기다려 댓잎 위로 흙을 덮었대.
 
 
 
 
 
 
 
 
 
 
 
 
 
 
 
 
 그럼, 군이 데려간 사람들은?
 P읍에 있는 국민학교에 한 달간 수용돼 있다가,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모두 총살됐어.
 모두?
 군경 직계가족을 제외한 모두.
 
 
 
 
 젖먹이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방으로 총알이 들어올까봐 이불을 쓰고 총소리를 듣는데, 아이들이 있었던 게 자꾸 생각나서 가슴이 떨렸습니다. 우리 아들만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들도 봤고, 산달인지 배가 불러 허리를 짚고 서 있는 여자도 있었어요. 어둑어둑해지는데 총소리가 멈춰서 문구멍으로 내다봤더니, 피투성이로 모래밭에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바다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옷가지들이 바다에 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 죽은 사람들이었어요. 다음날 새벽에 내가 우리 아기를 업고 아기 아빠 몰래 바닷가로 갔습니다. 떠밀려 온 젖먹이가 꼭 있을 것 같아서 샅샅이 찾았는데 안 보였어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옷가지 한 장 신발 한 짝도 없었어요. 총살했던 자리는 밤사이 썰물에 쓸려가서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이렇게 하려고 모래밭에서 죽였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금방 아이들이 학교서 돌아올 건디 어서 가줘시민 해서. 우리 서방이 알민 난리가 날 건디 제발 그전에. 도로 부엌으로 들어강 물그릇을 내려놓곡, 멫 번 오목가심을 문지르당 나왕보난 그 사름이 안 보여서. 아무 흔적도 어신 댓돌에 내가 앉앙 시퍼런 바당을 내당봐서. 꼭 그 사름 발소리가 다시 들릴 거 같아신디, 그걸 내가 기들리는 것인지 겁내는 것인지 알 수가 어섰주게.
 
 
 
 
 
 
 
 
 
 
 
 
 그해 경북 지역에서 죽은 보도연맹 가입자가 대략 만 명이야.
 인선이 말한다.
 너도 알지, 전국에서는 최소한 십만 명이 죽었다고 하잖아.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나는 입속으로 묻는다. 더 죽이지 않았나.
 1948년 정부가 세워지며 좌익으로 분류돼 교육 대상이 된 사람들이 가입된 그 조직에 대해 나는 알고 있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정치적인 강연에 청중으로 참석한 것도 가입 사유가 되었다. 정부에서 내려온 할당 인원을 채우느라 이장과 통장이 임의로 적어 올린 사람들, 쌀과 비료를 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도 다수였다. 가족 단위로도 가입되어 여자들과 아이들과 노인들이 포함되었고, 1950년 여름 전쟁이 터지자 명단대로 예비검속되어 총살됐다. 전국에 암매장된 숫자를 이십만에서 삼십만 명까지 추정한다고 했다.
 
 
 
 그해 여름 대구에서 검속된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대구형무소에 수용됐어.
 바스락거리는 습자지에 싸인 사진 묶음을 집어들며 인선이 말한다.
 날마다 수백 명씩 트럭에 실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더 수용할 공간이 없게 되니까 재소자들부터 골라내 총살했어. 그때 죽은 좌익 수 천오백여 명에 제주 사람 백사십여 명이 포함돼 있었어.
 인선이 실을 풀고 습자지를 걷어내자 사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경으로 해골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화질이 조악한 흑백사진이다.
 경산에 있는 코발트 광산이야. 1945년에 폐광돼서 당시엔 비어 있었어.
 초점이 날아갔지만 뚫린 눈과 코의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전경의 해골들 뒤로, 높은 명도의 반소매 셔츠를 바지 위로 꺼내 입은 중년 남자 셋이 회중전등을 켜고 꼬즈려앉아 있다. 무리하게 바닥에서 올려 짂은 앵글로 보아 천장이 매우 낮은 곳 같다.
 약 삼천오백 명이 이곳에서 총살됐어. 대구형무소 재소자, 대구 보도연맹 가입자, 경산경찰서 인근 창고에 수용됐던 경북 지역 가입자까지.
 내가 들고 있는 명부 사본을 향해 인선이 손을 뻗는다.
 여러 날에 걸쳐 군용 트럭이 광산으로 들어갔어. 새벽부터 밤까지 총소리가 들렸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있어. 갱도가 시체로 가득 찬 다음엔 근처 골짜기로 장소를 옮겨서 총살하고 매장했어.
 
 
 
 
 
 
 
 
 
 
 
 
 
 
 이 사람이 유족회장이야. 이듬해 5월 군사 쿠데타 직후 체포돼서 사형 언도를 받았어. 옆에 있는 총무는 십오 년 형이 나왔어.
 
 
 
 
 
 
 
 
 
 
 
 
 삼 년 동안 사백 구를 수습하고 2009년에 중단했으니까, 지금도 삼천 구 이상이 갱도에 남아 있어.
 천 페이지가량 되어 보이는 큰 판형의 책을 꺼내며 인선이 말한다.
 그 삼 년은, 여기뿐 아니라 전국의 학살 터에서 유해가 발굴된 기간이기도 해.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부위별로 추려진 뼈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사진들을 넘겨간다. 수천 개의 정강이뼈. 수천 개의 해골. 수만 개의 늑골 더미. 수백 개의 목도장들, 혁대 버클들, 중中 자가 새겨진 교복 단추들, 길이와 굵기가 다른 은비녀들, 유리알 속에 날개가 들어 있는 것 같은 구슬치기용 구슬들의 사진이 사백여 페이지에 걸쳐 흩어져 있다.
 
 
 
 결국 엄마는 실패했어.
 먼 곳에서 들리는 듯 인선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뼈를 찾지 못했어, 단 한 조각도.
 
 
 
 
 
 
 
 
 
 
 
 
 
 
 
 
 
 두 개의 스웨터와 두 개의 코트로도 막을 수 없는 추위가 느껴진다. 바깥이 아니라 가슴 안쪽에서 시작된 것 같은 한기다. 몸이 떨리고, 내 손과 함께 흔들린 불꽃의 음영에 방안의 모든 것인 술렁인 순간 나는 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인지 물었을 때 인선이 즉시 부인한 이유를.
 피에 젖은 옷과 살이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한계를 초과하는 폭력이 제거될 거다. 사 년 전 내가 썼던 책에서 누락되었던, 대로에 선 비무장 시민들에게 군인들이 쏘았던 화염방사기처럼. 수포들이 끓어오른 얼굴과 몸에 흰 페인트가 끼얹어진 채 응급실에 실려온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갈라진 인선의 목소리가 정적을 그으며 건너온다.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몇 차례 내가 엄마에게 물었어. 아버지가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된 건 그 첫 만남 후 오 년이 더 흘러서인데, 그사이의 시간을 두 사람이 어떻게 보냈는지. 얼마나 자주 만났는지. 언제 가까워졌는지. 엄마는 한 번도 정확히 대답해주지 않았어. 대신 엉뚱한 이야기만 했어. 이를테면 아버지가 엄마에게 들려줬다는, 주정공장에서 받았던 고문들에 대해서.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고 이북 말을 쓰던 남자가 아버지를 어떻게 다뤘는지. 옷을 벗기고 의자에 거꾸로 매달 때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씨를 말릴 빨갱이 새키들, 깨끗이 청소하갔어. 죽여서 박멸하갔어, 한 방울이라도 빨간 물 든 쥐새키들은.
 수건이 덮인 아버지 얼굴에 그 사람이 끝없이 물을 부었다고 했어. 젖은 가슴을 야전 전화선으로 묶고 전기를 흘려넣었다고 했어. 산사람과 내통한 친구들의 이름을 대라고 그 사람이 속삭일때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고 했어. 모루쿠다. 죄 어수다. 나 죄 어수다.
 그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엄마는 맥락 없이 자책했어.
 그때 내가 무사 오빠신디 머리가 이상하다고 해실카? 무사 그런 말밖에 못해실카?
 기억나는 건, 그렇게 물을 때면 엄마가 내 손을 놓았던 거야. 너무 세게 잡아 아플 정도였던 악력이 거품처럼 꺼졌어. 누군가가 퓨즈를 끊은 것같이. 듣고 있는 내가 누군지 잊은 것처럼. 찰나라도 사람의 몸이 닿길 원치 않는 듯이.
 
 
 
 
 
 
 
 
 
 
 
 
 
 
 
 
 대답 대신 나는 손을 뻗어 뼈들의 사진 위에 얹었다.
 눈과 혀가 없는 사람들 위에.
 장기와 근육이 썩어 사라진 사람들.
 더이상 인간이 아닌 것들.
 아니, 아직 인간인 것들 위에.
 
 이제 닿은 건가,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더 깊게 입을 벌린 해연의 가장자리,
 어떤 것도 발광하지 않는 해저면인가.
 
 
 
 
 
 
 
 
 
 
 
 
 
 
 낮에는 공방에서 나무를 깍고, 밤이면 안채로 돌아와 구술 증언 자료들을 읽었어. 자료마다 다른 사망자들의 데이터를 대조해 확정했어. 오십 년 봉인이 헤제된 후 접근 가능해진 미군 기록물들과 당시 언론 보도, 1948년과 1949년에 재판 없이 수감된 제주 수형인 명부와 보도연맹 학살 사이에서 사건들을 복기했어.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언인가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내 인생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더이상 알 수 없게 되었어. 오랫동안 애써야 가까스로 기억할 수 있었어. 그때마다 물었어.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지. 이제 내가 누군지.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그 아이들.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
 그 아이들을 생각하다 집을 나선 밤이었어. 태풍이 올 리 없는 10월이었는데 돌풍이 숲을 지나가고 있었어. 달을 삼켰다 뱉으며 구름들이 달리고, 별들이 쏟아질 듯 무더기로 빛나고, 모든 나무들이 뽑힐 듯 몸추림쳤어. 가지들이 불같이 일어서 날리고, 점퍼 속으로 풍선처럼 부푸는 바람이 거의 내 몸을 들어올리려고 했어. 한 발씩 힘껏 땅을 디디고 그 바람을 가르며 걷던 한순간 생각했어. 그들이 왔구나.
 무섭지 않았어. 아니,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했어. 고통인지 황홀인지 모를 이상한 격정 속에서 그 차가운 바람을, 바람의 몸을 입은 사람들을 가르며 걸었어. 수천 개 투명한 바늘이 온 몸에 꽂힌 것처럼, 그걸 타고 수혈처럼 생명이 흘러들어오는 걸 느끼면서. 나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거나 실제로 미쳤을 거야. 심장이 쪼개질 것같이 격렬하고 기이한 기쁨 속에서 생각했어. 너와 하기로 한 일을 이제 시작할 수 있겠다고.
 
 
 
 
 
 
 
 
 
 
 
 
 
 
 
 
 아직 사라지지 마.
 불이 당겨지면 네 손을 잡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눈을 허물고 기어가 네 얼굴에 쌓인 눈을 닦을 거다. 내 손가락을 이로 갈라 피를 주겠다.
 하지만 네 손이 잡히지 않는다면, 넌 지금 너의 병상에서 눈을 뜬 거야.
 다시 환부에 바늘이 꽂히는 곳에서.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
 
 
 
 
 
 
 
 
 
 
 

 
 
 
 
 
 
 


 
 
 
 
 
 
 

작가의 말

 
 
 
 
 
 
 
 
 
  2014년 6월에 이 책의 첫 두 페이지를 썼다. 2018년 세밑에야 그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했으니, 이 소설과 내 삶이 묶여 있던 시간을 칠 년이라고 해야 할지 삼 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쓰는 데 귀한 도움을 주신 양은석, 임혜송, 임흥순, 김민경, 이정화, 김진송, 배요섭, 정대훈, 조정희 님께 감사드린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기다려주신 이상술 편집자께, 마지막까지 힘을 나누어주신 김내리 편집자께, 마음으로 격려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마음을 다해 감사드린다.
 

2021년 가을 초입에
한 강 드림

 
 
 
 
 
 


 
 
 
 
 
 
 
한강은 모든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각각의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지니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 자리매김했다.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작가가 소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강은 하게 만든다. '5월 광주'에 이어 '제주 4·3'에도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고 믿게 된다.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가 있다. 공간적으로는 제주에서 경산에 이르고, 시간적으로는 반세기를 넘긴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딸의 눈과 입을 통해 전해진다. 폭력은 육체의 절멸을 기도하지만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하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 있게 할 수는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 곁의 소설가 '나'는 생사의 경계 혹은 그 너머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만한 고통만이 진실에 이를 자격을 준다는 듯이,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뿐이라는 듯이.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가장 결연한 답변이 여기에 있다.
언젠가부터 그의 새 소설 앞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된다. 누구나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작가들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https://ko.m.wikipedia.org/wiki/%EC%A0%9C%EC%A3%BC_4%C2%B73_%EC%82%AC%EA%B1%B4

 

제주 4·3 사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제주 4·3 사건(한국 한자: 濟州四三事件)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의 지휘를 받는 빨치산 조직

ko.m.wikipedia.org

 
 
 
 
 
 
https://namu.wiki/w/%EA%B2%BD%EC%82%B0%20%EC%BD%94%EB%B0%9C%ED%8A%B8%EA%B4%91%EC%82%B0%20%ED%95%99%EC%82%B4%20%EC%82%AC%EA%B1%B4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사건

6.25 전쟁 기간 중에 발생한 대한민국 의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경산 안경공장 학살사건'

namu.wiki

 
 
 
 
 
https://blog.naver.com/hanj999/223736200758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경산 코발트광산 희생지 일시: 2025년01월22일~23일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기간: 1950년 7월 20일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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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 - [일상/아무거나] - 김현아 『그녀에게 전쟁 (여성의 눈으로 전쟁을 말하다)』 책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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