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한 문단을 읽어주시는데 하마터면 울뻔했다. 짧은 글로 이렇게 강렬한 감정을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인터뷰 내내 메모하고 싶은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공유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두고두고 보려고 올렸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들은 블로그에 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작가님 책들 읽어봐야겠다.
어깨뼈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당신을 만나기 전,
목덜미와 어깨 사이가 쪼개질 듯 저려올 때면
내 손으로 그 자리를 짚어 주무르면서 나는 생각하곤 했어.
이 손이 햇빛이었으면,
나직한 오월의 바람소리였으면.
처음으로 당신과 나란히 포도를 걸을 때였지.
길이 갑자기 좁아져서 우리 상반신이 바싹 가까워졌지.
기억나?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힌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 소리를 내는 순간.
효에게. 2002. 겨울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를 덮고도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다시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 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성장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질을 더 주울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않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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