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2022년 상반기의 문화 현상으로 기록될 ‘추앙’ 신드롬은 작가 박해영의 작품 세계에 빠져든 대중의 화답이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주인공인 구씨(손석구 분)와 염미정(김지원 분)의 애틋한 관계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마음이 저려오게 하는 그 매력의 배경. 작품에 잔잔히 녹아 있는 스토리와 여운을 더하는 대사가 빚어낸 앙상블 아닐까.
‘나의 해방일지’는 그렇게 인생 드라마 대열에 합류했다. 박 작가는 인생 드라마의 대명사로 불리는 ‘나의 아저씨’에 이어서 또 하나의 홈런을 날린 셈이다. 대사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 ‘나의 아저씨’의 여운은 ‘나의 해방일지’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나의 해방일지’ 결말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온라인에는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는 글이 줄을 잇는다.
▲서사의 결말은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꽉 닫힌 결말’이라고 평가받는 작품들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확정되지 않은 부분들이 적지 않다. 결말은 ‘그들은 이렇게 됐다’가 아니라 극의 시작부터 이어져 온 생각과 행위들이 모이는 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끝일 수도,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창작자의 과도한 해석은 시청자 해석을 제한할 위험이 있어 조심스럽지만 구씨의 이후 행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구씨는 염미정을 통해 배운 게 있다. 자신의 잣대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추앙해주고 추앙받을 때의 자유로움이다.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뒤틀린 모든 관계에서 해방될 방법을 엿봤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선배한테 배신당하고, 몸은 만신창이지만, 오늘은, 일단은,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가본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살아갈 거로 생각한다.
-‘나의 해방일지’의 "나를 추앙해요"란 대사가 유행처럼 번졌는데 작가는 무엇을 추앙하나.
▲제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질이 있다. 지나는 사람을 보고도 속으로 평가하고, 버스 안에서 눈에 띄는 사람도 속으로 평가하고. 대개는 부정적인 평가다. 한마디로 욕이다. 그러다가 반성한다. 추앙은 둘째치고라도, 습관적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진 말자. 아무리 속으로 생각한 말이어도 그 씨앗 어디 안 간다. 하지만, 오늘도 벌써 공공장소에서 마주친 몇 분을 속으로….(웃음)
-‘나의 아저씨’를 인생 드라마로 꼽는 사람이 많다. 드라마 종영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운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소감이 궁금하다.
▲그때 우리가 허튼짓을 한 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종영 후 한 번도 뵙지 못한 200여명의 스텝 분들과 조용한 연대의식 같은 걸 느낀다. ‘나의 아저씨’ 팀은 단 한 명에게서도 어떤 어긋남이나 누수가 보이지 않았다. 우린 다,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가야하고,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합이 맞았던 한 팀이었기에 결과가 좋았고, 현재까지 회자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파울로 코엘료 작가 등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았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극 중 이지안(이지은·아이유)에 매료돼 본인의 영화 ‘브로커’ 주인공으로 낙점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아주 기분이 좋다. 다만 이 질문은 저보다는 감독님이나 배우분들께서 답해주시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나의 아저씨’ 대본집도 큰 인기를 얻었다. 대본집은 20~30대 여성이 즐겨 찾는다는 통념을 깨고 남성 구매자들의 비중이 높았다.
▲나의 아저씨는 드라마를 잘 안 보는 남자분들이 많이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영향으로 대본집까지 구매하신 게 아닐까 싶다. 짐작건대 드라마의 많은 남자 주인공이 발산형이었다면, 박동훈(이선균)은 수렴형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같은 수렴형인 남자분들이 봐주신 게 아닐까.
-‘어떤 경험을 하면 이런 글을 쓸까’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오해일지 모르나 왠지 아픔의 경험도 많을 것 같은데.
▲뭔가 아픔과 특이한 경험이 있어서 글을 쓸 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저도 작가들은 뭔가 다를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작가가 돼 동료 선후배님들을 보니 다르지 않았다. 그 사실에 잠깐 실망했지만 바로 안도했다. 좋은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 하나의 특징은 있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으시다는….
-주옥같은 대사를 해산하기 위한 산고가 궁금하다.
▲인간은 한 종자라 나의 갈증은 대중의 갈증일 것이라는 상정 하에 저의 갈증을 푸는 방식으로 인물을 잡는다. ‘나의 아저씨’ 기획 의도에는 그런 글이 있었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근원에 깊게 뿌리 닿아있는 사람들. 그런 맑은 사람들에게 감동하고 싶다. 원래 인간이란 이런 물건이었다는 듯,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의 매력을 보여주는…." 평범해 보이는 인간의 뜨거움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대사를 고통 속에서 길어낸다기 보다는, 인물에게 빙의해서 길어낸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대사와 캐릭터 모두가 자식 같겠지만, 유독 마음이 쓰이는 자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대사나 캐릭터가 있나.
▲극에서 좋은 끝을 맺지 못한 캐릭터가 제일 마음이 쓰인다. 악역인 배우분들은 자기 속에서 악을 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모른다. 그런 연기를 하고 나면 소주를 마시고 들어가야만 잠이 오신단다. 악인은 그냥 악인으로 두고 극을 끝낼 때, 그 역할을 하신 배우분에게 상당히 미안해진다. 그래서 마음이 쓰인다.
-명목적 주인공은 있지만, 모든 캐릭터가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삶이 다채롭게 읽히는 재미가 있다.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인가.
▲한 번 등장했으면 극 중에서 자기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영상화를 목적으로 하는 글이기에, 연기하는 배우가 분명히 있고,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이기에 인간적인 대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인물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 쫑파티에서 그 배우 얼굴을 못 본다. 미안해서.
-드라마 집필, 제작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나.
▲쓰는 내내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누구도 저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고, 조용히 글만 쓰게 했다. 심지어 어느 날 선배 작가님이 전화로 "그 팀에 그런 일이 있었다며?" 하는데 저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안 좋은 얘기는 아예 제 귀에 안 들어오게 하시는 것 같았다. 고마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흡족했던 반응이나 피드백을 소개하자면.
▲‘나의 아저씨’ 마지막 방송 후 시청 소감 중에, 너무 고마워서 작가에게 돈(3만원)이라도 주고 싶다는 글을 본 적 있다. 너무 진심 같으셔서 그분을 찾아가서 받아오고 싶었다. 당신의 감사를 제가 정확히 받았다고 알려드리고 싶어서 3만원을 받아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진=세계사 출판사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독자가 작품을 해석하는 데 창작자 개입은 제한되기 마련이다. ‘정독’이든 ‘오독’이든 그건 오롯이 독자의 몫일 뿐, 창작자가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그건 박해영 작가가 여러 차례 인터뷰를 거절한 연유이기도 하다.
드라마 대본집 ‘나의 아저씨’(세계사)가 나왔을 때 한 차례 거절했다. "‘나의 해방일지’ 방영을 앞두고 이전 작품으로 인터뷰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회신이 왔다. ‘나의 해방일지’가 좋은 반응을 얻을 무렵 이번엔 해당 드라마 관련 인터뷰를 다시 요청했다.
역시 이번에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방영 중인 드라마에 작가가 의견을 내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자꾸 인터뷰를 거절하는 것도 민망하니 드라마가 끝난 후 ‘나의 아저씨’ 대본집을 중심으로 서면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긍정의 신호를 내비친 셈이다.
"‘나의 아저씨’는 4년 전 작품이라 제가 가타부타 떠든다고 해서 시청자분들의 감정이 훼손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그만큼 박 작가는 작품과 사람을 대하는 데 사려 깊었다. 작품으로 독자와 소통하기를 원하는 박 작가에게 자꾸만 목소리를 내달라고 하는 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인생 드라마로 여기는 수많은 이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묻고 또 듣고 싶었다. 작가 박해영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대사를 길러냈을지에 관해….
그렇게 박 작가와의 인터뷰가 성사됐고,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에 관한 그의 시선을 담을 수 있었다. 다만 박해영이 아닌 ‘박해영의 작품’으로 관객과 마주하고 싶다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그의 프로필 사진은 담지 않았다.
출처 : https://www.asiae.co.kr/article/2022061607162323944
* 내가 제일 존경하는 박해영 작가. 그녀의 작품을 보면 닮고싶고, 배우고 싶어서 부던히 애를 쓰게 된다. 계속해서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내가 배울 점을 담은 그녀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박해영 작가 인터뷰 모음
<나의 아저씨>갤러리 및 브런치 글 참고
드라마 작가들이 천착해야할 것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지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이다.
사회 현실이 어떻든간에 드라마는 인간에 대한 천착이기 때문에 변할 이유가 없다.
자극적인 것으로 한판 승부를 보자는 건, 그만큼 자기 작품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박해영 작가 관련 네티즌의 글 中
1.소재는 어디서 찾나?
플롯이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인물이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전 먼저 인물이 먼저 들어온다. ‘또 오해영’에서는 ‘난 다시 태어나면 엄청 쉬운 여자로 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오해영이란 인물을 탄생시켰다. 한편, ‘나의 아저씨’ 썼을 당시 작품들은 남자주인공이 다 기괴했다. 버럭하고 성격이상하고 능력(초능력)은 많은 설정이 판을 쳤다. 그런 사람에게 감동해 본적이 없던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감동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범하게만 보이는 한 남자를 까고까고 봤을 때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근원(선함)을 발견한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눈물이 날까라는 생각으로 탄생했다.
이런 남자의 얘기를 극적으로 풀어가려면 이 사람을 보통의 아저씨로 보고 이용해 먹을 아주 거친 여자가 필요했다. 이면을 봐줄 수 없을 것 같은 아이가 그 사람의 진가를 혼자 알아본다는 설정. 인물에 집중하는 이유는 미니시리즈는 구성보다는 먼저 시청자들이 그 등장인물이 보고 싶어해야 한다. 인간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등장인물이 한번 나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에 대한 얘기를 끝까지 가져간다. 그 등장인물들은 내가 갖고 있는 감정의 한 부분, 한부분을 띄어 만든다.
2. 드라마 심리묘사는 어떻게?
사실 모든 사람이 말할 때 그 밑바닥의 심리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말의 심리의 근원을 파악하는 걸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어머니 덕택이기도 하지만 대학 때 집단상담심리라는 강의를 받았다. 7명 쯤 앉아 밑바닥 감정얘기만 한다. 그렇게 6개월을 했더니 나도 모르게 감정의 근원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심리묘사에 대한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3.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시나?
방송작가의 덕목 두 가지가 있다. 굳건한 체력과 시청자를 계몽하려 하지 말 것.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글을 잘쓰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20년을 버텨왔지만 이건 아닌거 같다고 생각했다. 바퀴얘기를 하시며 어떤 신문물이 발견 될 때는 동시다발적으로 나온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다. 시대가 필요한 글을 쓰면 된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우린 같이 뭔가 해소를 해야한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나의 아저씨’ 는 사람은 원래 이렇습니다. 라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서 썼다.
4. 삶을 건강히 살기 위해선?
‘친절해라’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선 친절해야한다. 내 맘이 좋아야 남에게 잘한다. 자기를 사랑(친절)한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있다.
5. 취재는 어떻게?
나의아저씨 취재 당시구조기술자. 스님 등등. 매일 같이 카톡으로 물어봤다. 동훈의 직업은 시나리오 플롯을 거의 다 잡고 제일 마지막에 결정. 직업 찾는데 두달이 걸림. 대기업, 권력 암투가 심한 집단. 어느덧 구조기술사 발견. 제 또래 구조기술사(연우구조사무소) 분이 드라마 광이셔서 자문을 부탁했다. 많은 도움을 주셨다.
6. 대본을 쓸 때 장면을 상상하며 썼을텐데 실제로 연출과 차이는? 방송을 봤을 때의 느낌은?
또 오해영을 봤을 때는 밝기로 따지면 8로 썼는데 10으로 나왔다. 나의 아저씨는 6정도였는데 톤 다운하여 5로 나왔다. (중략) 내가 쓴 글보다 방송이 훨씬 좋을 수 있구나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편집, 음악 모든 분야의 스탭분들의 열정을 통해 나온 작품이라 제가 이렇게 얘기하고 다니기도 민망하다.
7. 캐릭터를 구상하는 방법, 캐릭터를 설정하는 방법?
내가 쓸 수 있는 사람은 세 부류가 있다. 본 사람, 느낀 사람, 겪은 사람. 어떤 방식으로든 만나본 사람이어야 다시 재구성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8. 공감가는 캐릭터, 혹은 애정이 붙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냐?
안쓰러운가, 안아주고 싶은가, 응원하고 싶나. 이 세 가지를 고려한다.
9. 주인공 외에 다른 캐릭터들의 각각 특징은 어떻게 잡아내느냐?
(박연선 작가: 캐릭터들을 같은 한 상황에 넣어놓고 각각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면 캐릭터가 잡히고 구분된다.)
10. 글을 어떻게 쓰는가
드라마를 쓰기 시작할 때, 한 줄, 한 줄로 시작한다. 드라마에 대한 한 줄이 나오면 그 후에 인물들이 그럼 어떤 처지여야 하고, 어떤 상처가 있어야 하는지 등 그림이 조금씩 잡힌다. 특히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에는 상처나 트라우마가 꼭 들어가는데, 어떤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폭발하여 치유하며 살아가는지를 고민한다 한다. 인물의 상처에 집중하는 건 어려서부터 여러 고민을 할 때 무얼 얻어서 행복한게 아니라 무얼 놓아서 행복해진다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각각 인물의 사연을 만들어내는데 정성을 들인다.
( 박연선작가: 악역을 맡은 캐릭터를 그려낼 때 고려하는 것은 멀리 있는 악역이 아니라, 태초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그럴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고 한다.)
11. 유머를 넣는 방법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면 안되고 희석작용이 필요하기에 유머를 넣는데,
‘무서워서 재밌는지, 슬퍼서 재밌는지, 통쾌해서 재밌는지, 웃겨서 재밌는지’ 이 네 가지를 고민한다.
12. 작가는 타고나야 하는가. 노력해서 되는가?
회사를 잘 다니다가 IMF때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나오게 되었고, 그러던 와중에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드라마를 쓰게 되었다. 그래서 작가는 타고나야한다고 엄격히 단정짓기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되는데, 그런 능력은 어느정도 타고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쓰는 사람의 글은 좋고 따뜻한 게 느껴지기 때문에 재능 중의 재능이다.”
(박연선 작가, “글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상대방이 평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쓰는 것, 계속 쓰는 것, 그리고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쓰면 쓸수록 늘기 때문에 많이 쓸수록 이득이다. (중략) 처음 글을 배울 때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 중 작가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밖에서 할 수 있는 취미, 평생 붙잡을 수 있는 화두, 그리고 규칙적으로 쓰는 것‘이다.”)
+) 박해영 작가, “그에 추가해서, 네 번째 조건으로 체력이 중요하다.”
작가님의 <나의 아저씨> 관련 인터뷰
출처: <나의 아저씨> 갤러리
1. 달빛의 의미?
제가 논리와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지 않는다. 직관으로 쓴다. 느낌이 그랬다. 생각을 곰곰히 해보니 할머니가 물들지 않았다. 자기의 근원을 알고 있는 사람. 말랑말랑한 사람(경직된 인간-지안과 대비)
2. 장례식이 나온 이유
느낌상 장례식이 나와야 할 것 같았다. 삼형제의 어머니 요순이 죽는 다는 건 정말 큰일! 하지만 봉애가 죽는다는 건 약간의 해방감도 있는 것이다. 지안이가 더이상 아픔없이, 짐없이 나아가겠구나. 또한 봉애는 죽음을 준비한 사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심각한 사건이 아니야. 장례식이라도 주인공(후계팸)들의 반응을 통해 삶, 죽음 그렇게 대수 아니야 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님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에서 차별화를 두고 싶어 했다.
처음부터 인물들이 내면 속 결핍된 문제들을 가지고 있던 것도 모두가 겪었을 ‘평범함’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치적인 부분들에서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한다던가,
타인과 비교하면서 열등감, 시기의 감정을 느끼는 등, 보편적인 것들의 일상화말이다.
지나치게 희망만을 말하는 모습들은 싫었고, 그냥 자연스럽게 감정에 이끌려가는 모습들 속에
편견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 속에서 선택으로 인해 겪게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담고자 했던 바를 ‘사랑’이라는 정조를 통해 전하고 싶었다 말하더라.
송현욱, 또오해영 감독
언제쯤 박해영 작가님처럼 글을 쓸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감동하는 글. 나부터가 먼저 그 인물에 감동해있는 글. 사람에 대한 통찰과 근원을 볼 수 있는 눈을 언제쯤 기르게 될까?
출처 : https://m.blog.naver.com/moonlight_er/221727205923
‘나의 아저씨’(세계사) 작품집에서 작가는 “시트콤을 오래 했는데, 시트콤에선 모든 인물이 돌아가며 주인공을 한다. 아마도 그때의 습관이 있는 것 같다”며 “그중에 인물이 한번 등장했으면 극 중에서 자기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드라마 대본은 영상화를 목적으로 하는 글이기에 이를 연기하는 배우가 분명히 있고, 그들 모두는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이기에 인간적인 대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 쓰려고 하면 영점 조준이 잘못된 것이다. 인물을 아끼고 사랑하자. 사랑이 다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아저씨’는 잘 쓴 걸 넘어서 사랑이 풍부한 대본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대사가 기억에 남을까. 책에서 작가는 “할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라는 동훈의 대사를 쓰고 왁 울음이 터져 삼십 분을 소리내어 울었다고 술회한다. “처음이라 당황했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울다가 자리에 앉았는데 다시 울음이 다서 또 한참을 서성일 만큼. 극중 춘대가 “마음이 어디 논리대로 가나요”라고 했던 말도 인상 깊었다. 이건 담당 피디의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고 좋았다며 보내준 말이었는데, 작가는 “사실 저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행동하고 싶어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미 마음이 간 후에 뒤늦게 논리를 붙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http://ktrwawebzine.kr/page/vol196/view.php?volNum=vol196&seq=1
유머 코드라는 게 작가마다 스타일이 있는데··· 평소에 주변 분들에게 웃긴다는 말 좀 들으실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장르의 영화나 유머 코드는 무엇인가요?
‘너 안 웃긴데 어떻게 시트콤(<올드미스 다이어리>, <청담동 살아요>)을 쓰냐’라는 말을 꽤 들었고요. 제가 어떤 사람 앞에서는 유쾌한 척하고 어떤 사람 앞에서는 조용한 것 같아요. 그런데 회의할 때 제가 말하면 보조작가들이 깔깔 웃는 걸 보면 좀 웃기지 않나 하는···(웃음)
본능적으로 ‘너무 심각하게 가지 말고 꺾자’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습성을 가진 것 같아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드라마는 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재미있어서 보죠. 어떤 장르든 쾌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슬픈 드라마도 쾌가 있고. 주야장천 심각한 상황만 펼쳐진다면 보는 사람도 쓰는 저도 답답합니다.
tvN <나의 아저씨> 때도 그랬고 이번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 회의 열린 결말을 두고, 드라마가 끝난 몇 주 뒤까지도 시청자들의 커뮤니티가 뜨거웠어요. 이 열린 결말은 작가님의 의도였나요?
저도 시청자분들이 숨겨진 의도를 찾아 해석을 많이 하신다기에 의외였어요. 아마도 극이 어려워서는 아니고, 생략이 많아서 그런 것 같고요. 저는 상당히 깔끔한 엔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그렇게 무 자르듯이 뭔가 딱 해결되고 그러지 않으니까요···
드라마를 처음 시작하실 때 엔딩 신에 대한 스토리까지 다 구상하고 쓰시는 건가요?
처음부터 엔딩까지 다 구상할 수는 없어요. 대개는 50~60페이지 정도 되는 단편소설 분량의 줄거리를 가지고 한 회 한 회 써나가는 건데, 그렇게 살을 붙이다 보면 인물의 한마디로 극의 톤이나 방향이 바뀌곤 합니다. 물론 남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서쪽으로 확 방향을 튼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남남서 정도로 바뀌는 건데··· 그 방향의 정도는 10회를 넘어가면 정확히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10회를 쓰면 대략적으로 엔딩의 상황이나 대사는 미리 머릿속에 나와 있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는가?’라는 엔딩 대사도 한참 12화를 쓰고 있는데 미리 와 있던 말이었어요. 아, 이게 엔딩 대사가 되겠구나 하는 거죠.
참 원초적인 질문인데··· 그 수많은 캐릭터들에 대한 영감,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시는지 아주 노골적으로 궁금합니다.
기획 단계에서는 아주 느슨하게 하는 편이에요.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기 때문에, 억지로 짜낸다고 나오지도 않고, 뭘 뒤지거나 보지도 않습니다. 나의 갈증은 대중의 갈증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 안에 어떤 갈증이 있나 살펴보는 거죠. 그러다가 ‘해갈’이라는 단어에 꽂혔어요. 난 한 번도 해갈을 느껴본 적이 없구나. 내 인생이 보통의 드라마에 나오는 음모, 배신,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그럴까? 그렇지. 이게 인생이지···라는 말을 왜 한 번도 해본 적 없을까? 그래. 이걸 써보자. 그렇게 해서 주제를 잡으면, 이제 어떤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할지 생각하죠. 그렇게 기획을 하고 인물을 찾고 서사를 정리하는 데 일 년 반 정도 걸려요. 이때까지는 저의 일과는 불규칙합니다. 그 후로 일 년 반 정도 대본을 쓰는데, 이때의 일과는 아주 단순해요. 8시경에 일어나서 가방을 둘러메고 스터디 카페나 일반 카페에 있다가 밤 10시경에 집에 들어오는···
유니크하면서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다는 거··· 이거 정말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다시 <나의 해방일지>로 돌아가서··· 염미정(김지원 분)과 구 씨(손석구 분)의 처음 출발점,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맨 처음에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생각의 순서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해갈을 먼저 떠올렸고요. 그다음에 ‘내가 왜 지치나?’ 이 생각을 해봤어요. 관계더라고요. 관계 속에서 추구하는 나의 이미지 때문인 거죠. 그럼 사랑이라는 말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질감을 잡을 수 있나? 단어에 각을 떠서 생각해보자 했어요. 정확하게 관계에서 원하는 게 뭐고, 관계가 왜 이렇게 피곤하고 지치는 걸까?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하고자 하는 얘기의 각이 떠지지 않아요. 그런데 ‘추앙’. 이건 오해의 소지가 별로 없는 단어잖아요. 절대 긍정 혹은 절대 지지. 네가 내 애인이 될 만한 어떤 조건을 갖췄기에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말이 아닌 거죠. 사실 우리의 모든 관계가 조건화되어 있잖아요. 이게 치명적인 실수인 게 뭐냐면, 내가 조건을 들이밀 때 상대는 내 조건을 안 보겠냐는 거죠. 사람이 이걸 본능적으로 알아요. 그래서 관계가 다 치사해지는 거고요. 해방되기 위해서 관계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렇게 얘기가 흘렀다고 할 수 있어요.
‘추앙’이란 말은 언제 생각이 나신 걸까요? 추앙의 맨 처음이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돌아온 답은 상당히 의외였다. 박해영 작가는 정말 솔직한 사람이었다.)
추앙··· 이 단어가 언제 저에게 왔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저도 이게 궁금해서 보조작가들한테 물어봤더니 정확히 언제 회의 때부터 쓴 건지 아무도 잘 모르더라고요, 하하하.
저는 개인적으로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들판의 들개에도 캐릭터가 살아 있어서 놀랐습니다.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머물던 펜션 앞이 넓은 무밭이었는데 거기에 하얀 들개 세 마리가 있었거든요. 근데 다음날에도 같은 곳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비가 와도 움직이지도 않고. 같이 간 지인분이 이야기하길, 사방이 뻥 뚫린 곳이라 그렇다는 거예요. 언제든 공격을 당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자리를 안식처로 삼은 것이라고. 그때 그 들개들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어떤 일을 겪었길래 사방이 뚫린 곳에서 밤낮을 안 움직이고 저렇게 살아가는 걸까.
미정의 아버지(천호진 분)가 누워서 TV를 볼 때 아들 창희(이민기 분)가 조용히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꿔주는 장면에서 울컥했습니다. 저와 아빠를 보는 것 같아서요.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시는 작업이 궁금합니다.
따뜻함이 우선인 것 같아요. 매 신마다 어떤 식으로든 정서적인 느낌이 있게요. 그래야 시간을 들여 볼 맛이 나죠. 어떤 식으로든 불쾌가 아닌 쾌가 느껴지게··· (인터뷰 초반에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쾌를 위해 써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극 중에서 미정이 엄마의 유골함을 거실에 두고 계속 거실에 나와 앉아 있는 장면과, 직장동료와 이야기할 때 했던 “그럼 엄마를 어디다 두고 와?”라는 대사··· 어디까지 상황과 인물을 시뮬레이션 해야 그런 대사들이 나오는 걸까요?
겪어보면 압니다. 인물에 몰입해서 길어내는 말들이 있고, 겪었기 때문에 그냥 나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미정의 동료들이 “유골함은 나라에서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했던 대사도 제가 느꼈던 거예요. 아무 데나 둬도 된다고? 불법이 아니라고? 그럼 당연히 집으로 가져가야지.
인간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는 말도 여러 번 이야기하셨는데요. 박해영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 관심. 그 원초적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이전에는 나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었다면, 그게 지옥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목적으로 놓고 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제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평소에 매력적인 인물을 만나게 되면 작품으로 녹여 내기까지 어떻게 입체적으로 만들어 내시나요?
다 박해영입니다. 내 안에 있는 여러 다중이들을 꺼내서 그 다중이들을 온전히 하나의 인물로 만드는 거예요. 내 속에 없는 속성은 말할 수가 없어요. 빙의해서 대사를 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 속에 있는 여러 면을 살펴보고 한 면을 한 인물에게 온전히 주는 거죠. 극중의 열댓 명의 인물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주인공 같은 경우엔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정리해봐요. 조용하다, 우울하다 식의 관념적 단어를 쓰지 않고, 염미정은 이 상황에선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이렇게 행동할 것 같다··· 밀도 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봅니다. 물론 하고자 하는 극에 어울리는 에피소드로 만들어보죠. 그렇게 써서 모으다가 보면, 한 인물이 아니고, 두 인물인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아까워하지 않고 에피소드를 채로 걸러 한 인물로 만들어 내죠. 아깝지만 버려야 할 에피소드들은 과감하게 버립니다.
‘공들이는 만큼 대본은 달라진다’고 이야기하셨어요. 놀고 싶거나 안 쓰고 싶을 때, 집중력이 흐려질 때도 있으실 텐데 그럴 땐 어떻게 컨디션 조절을 하시는지요.
쓰기 싫다 싶을 땐, 그래도 일단 신발을 신고 나갑니다. 앉아서 노트북을 켜놓으면 어떻게든 또 쓴다, 그런 심정으로요. 어느 날 그렇게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주문해 받았는데, 그 커피숍에선 항상 2층에서 썼거든요. 너무 올라가기 싫어서 그냥 가게 앞에 있는 간이 의자에 한참 앉아 있으니까 커피숍 주인이 나오셔서 혹시 2층이 추워서 안 올라가시냐고, “에어컨 좀 줄여드릴까요?” 하시는 거예요. 아니라고, 일이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이러고 앉아 있다고 했더니 웃으시며 들어가셨죠. 그렇게 앉아 있다가 그냥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런 날이 한 달에 두어 번은 오는 것 같아요. 피곤하고 힘들 땐, 잡니다. 자지 못하면 눕습니다. 눕지 못하면 눈이라도 감습니다.
아직 긴 터널을 걷고 있는 작가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잘 쓰고 못 쓰고는 본인이 압니다. 잘 쓴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을 때는 계속 가는 게 맞아요. 나 꽤 쓰는 작가네 싶으면, 맞으니까 계속 쓰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해방일지’ 첫 번째 리스트는 무엇일까요?
‘마주치는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자’입니다. 건널목, 버스 안, 커피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이 사람 왜 이래? 저 패션은 뭐지?’ 이런 식의 습관적인 판단에서 벗어나자는 거죠.
일본 인터뷰 번역본
[출처]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 인터뷰 기사 모음|작성자 성그레D
이환주 기자 (hwlee@fnnews.com)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14/0004986678?sid=103
글 : 김수영사진 : 오계옥
출처 :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140/0000049754
글 : 김수영사진 : 오계옥
출처 :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140/0000049751
출처 : https://gall.dcinside.com/mini/board/view/?id=haebang0409&no=15247&exception_mode=recommend&page=1
출처 : https://gall.dcinside.com/mini/board/view/?id=haebang0409&no=15298&page=1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140/0000049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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