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밌다. 한강 작가님의 책들을 읽는 건 순수한 의미로 재밌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이 머릿속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누군가 내 심장을 움켜쥐는 것만 같이 고통스럽고 강렬했던 기억의 편린들이 내 몸에 문신처럼 새겨져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그 복잡한 감정들보다 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은 건, 한강 작가님의 책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밌다는 거. 읽기 시작하면 책을 덮기 싶을 만큼 재밌다는 거.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레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그녀는 동생의 텅 빈 검은 눈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얼굴이 비쳐 있을 뿐이다. 놀랄 만큼의 실망에 그녀는 맥이 풀린다.
·····미친 거니, 너 정말 미친 거야.
지난 수년 동안 자신이 결코 믿을 수 없었던 그 질문을, 그녀는 처음으로 영혜에게 던진다.
·····네가 정말 미친 거니.
그녀는 알지 못할 두려움을 느끼며 동생으로부터 주춤 물러나 앉는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병실의 정적이 물먹은 솜처럼 그녀의 귀를 틀어막는다.
어쩌면·····
침묵을 깨고 그녀는 중얼거린다.
·····생각보다 간단한 건지도 몰라.
그녀는 망설이며 잠시 말을 끊는다.
미친다는 건, 그러니까·····
그녀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대신 팔을 뻗어 동생의 인중에 집게손가락을 얹는다. 가느다랗고 따스한 숨이 느리게, 그러나 규칙적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히 경련한다.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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