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우주패스 덕분에 원스토리 라는 어플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는데 거기에 도킨스를 검색하니까 이 책이 있어서 읽게 됐다
원스토리는 밀리의 서재, yes24 북클럽 처럼 책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어플인데 방금 말한 어플 3개 다 써봤는데 그냥 다 비슷해서 아무거나 써도 될 것 같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어플 모두 써보고 알게 된 건데 다 내가 찾는 책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작가가 비교적 최근에 쓴 책들은 대부분 있는 편인 것 같고 외국 작가의 책이나 옛날에 나온 책들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찾는 책들이 없어서 아쉽지만 어플에 있는, 내가 알지 못 했던 책들을 읽게되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암튼 책을 다 읽었는데 내가 언제나 믿고 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학자이자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메모하고 싶은 문장으로 가득했다
생각해보면 난 도서관 갔을 때나 전자책 어플 깔았을 때 항상 제일 먼저 검색했던던 이름이 도킨스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가 쓴 책을 거의 다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혹시 새로 나온 게 있는지 또 검색해본다
내가 느끼는 리처드 도킨스라는 과학자는 자기가 아는 무언가를 설명할 때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다
단순히 가지고 있는 지식이 방대한 것을 넘어서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 친절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어려운 내용도 재밌게 읽을 수 있고 또 감동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나같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은 더욱 더)
개인적인 느낌인데 도킨스의 책을 읽으면 책 속의 과학 지식만 얻어 가는 게 아니고 인간, 살아있는 모든 것들, 더 나아가서 우주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과학자 최재천 교수님이 "알면 사랑한다" 라는 말을 했던 것 처럼,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록 모든 게 더 경이롭게 보이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나는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도 계속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가치관에도 영향을 주고, 그런 면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이 아닌 다른 주제의 글을 써도 참 잘 쓸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내가 혼자 느끼는 거고, 리처드 도킨스가 직접적으로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다 라던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 와 같은 윤리적 가치에 대해서 무엇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과학 지식이 마치 성서라도 되는 양 거기서 직접적으로 어떤 가치관을 유도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도킨스가 그의 책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또 그 자신이 궁금해하는 건) 무엇이 사실인지(what is true) 이며 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총동원하여서 진실을 전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데 좋은 소설이 우리에게 간접 경험, 즉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그저 등장 인물들이 겪는 여러가지 사건과 감정 묘사를 보면서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게 만드는 것처럼,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다보면 과학(나는 왜 존재하는지, 우주는 왜 존재하는지)과 과학자의 사고 방식(설령 자신이 모르는 것일지라도 진실을 알기 위해서 실제로는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 않는 신과 같은 다른 무언가를 끌어오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종교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일, 점성술, 자신에게 마법을 쓰는 능력이나 초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 미신이나 유사 과학을 이용해서 아픈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같이 잘못된 정보로 세상에 피해를 끼치는 것에 분노하는)을 알게 되면서 부가적으로 느끼게 되는 여러가지 사적인 감정들이 있는 것 같다
그의 진실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 담긴 글들을 읽다 보면, 과학이라는 차가워보이는 주제와 그가 창조론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에서조차 그의 따뜻함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느껴진다
하지만 진지하게 묻는데, 왜 진짜 과학자가 문학상을 받으면 안 되는가? 슬프게도 더 이상 우리 곁에 있지 않아 상을 받을 수는 없지만 천국에서 위대한 소설가, 역사가, 시인들과 함께 있을 칼 세이건의 작품이 노벨문학상감임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로렌 아이슬리는 어떤가? 루이스 토머스는? 피터 메더워는? 스티븐 제이 굴드,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다아시 톰슨은?
우리가 거명하는 저자 개개인의 재능이 무엇이든, 과학은 위대한 문학 작품에 영감을 주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최고의 작가들에게 가치 있는 주제가 아닐까? 그리고 과학을 그렇게 만드는 성질ㅡ위대한 시와 노벨상을 수상한 소설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성질ㅡ이 무엇이든,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의미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 리처드 도킨스 [영혼이 숨쉬는 과학]
이 책은 비행을 하는 생물들을 소개하면서 진화와 다윈주의를 설명하는 책이다
인간이 만든 날 수 있는 기구들, 예를 들면 글라이더, 비행기, 헬기, 열기구 같은 것들의 작동 방식도 설명하고 동물의 비행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글이 쓰여졌기 때문에 이해하기 더 쉬우면서도 공학적인 지식을 함께 얻어갈 수 있는 게 좋았다
당연한 거지만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이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무엇이 사실일 확률이 높고, 무엇은 덜 합리적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해야한다
이 책도 여러가지 이론과 도킨스의 생각이 등장하는데 그게 모두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아마 내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책을 읽다보면 알 것 같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복잡함이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매우 긴 시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는 진화의 핵심 메커니즘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그의 다른 책들처럼)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 책도 추천하구 밑에는 메모@
비행은 어디에 좋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아주 많으므로, 독자는 왜 굳이 이 질문을 해야 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 신화 속의 구름 사이를 신나게 떠다니는 꿈에서 벗어나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할 때다. 우리는 정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생물에게 그 답은 다윈주의적임을 의미한다. 진화적 변화는 모든 생물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방식이다. 그리고 생물에 관한 한, '어디에 좋을까?'라는 모든 질문의 해답은 언제나 있으며 예외 없이 동일하다. 바로 다윈의 자연 선택, 즉 '적자생존'에 좋다.
그렇다면 다윈의 언어로 말해서, 날개는 어디에 '좋은' 것일까? 그 동물의 생존에 좋을까? 당연히 그러하며, 그 답이 현실에서 어떤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공중에서 먹이를 찾아내는 것이 한 예다. 그러나 생존은 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다윈주의 세계에서 생존은 번식이라는 목적의 수단을 의미할 뿐이다. 수컷 나방은 대개 냄새를 따라 날개를 써서 산들바람을 타고 암컷을 향해 날아간다. 일부 나방은 고도로 민감한 아주 큰 더듬이를 써서 농도가 1천조 분의 1에 불과한 냄새를 검출할 수 있다. 이 능력은 수컷 자신의 생존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방금 말했듯이 생존은 번식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 말은 조금 더 다듬을 수 있다. 생존이라는 개념에 다시 초점을 맞춰 보자.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생존이다. 개체는 죽지만 유전자는 사본으로 남아서 살아간다. 번식을 통해 달성하는 생존은 유전자의 생존이다. 유전자, 아무튼 '좋은' 유전자는 충실한 사본이라는 형태로 여러 세대, 수백만 년까지도 생존한다. 나쁜 유전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자신이 유전자라고 할 때 '나쁘다'는 바로 그런 의미다. 그렇다면 유전자가 어떠해야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게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몸을 잘 만드는 유전자가 좋은 유전자다. 나방의 몸에 커다란 더듬이를 만드는 유전자는 그 더듬이가 검출한 암컷이 낳을 알 속으로 전달되므로 생존한다.
마찬가지로 날개는 그것을 만드는 유전자의 장기 생존에 좋다. 좋은 날개를 만드는 유전자는 소유자가 바로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도록 도왔다. 다음 세대에도 그러했다. 그런 식으로 무수한 세대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정말로 아주 잘 나는 동물들을 보고 있다.
공작처럼 잘 날지 못하는 새들뿐 아니라, 많은 새들은 땅에 얽매여 있는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서 비행을 이용한다. 그리고 물론 포식자 중에는 땅에 얽매이지 않은 종류도 있다. 즉, 그들도 날 수 있다. 그리하여 진화 하는 동안 항공 군비 경쟁이 벌어진다. 먹이는 잡히지 않게 더 빨리 날고, 포식자도 잡기 위해 더 빨리 난다. 먹이는 날쌔게 방향을 바꾸는 회피 기동을 할 수 있게 진화하고, 포식자는 그에 맞서는 대항 수단을 진화시킨다. 밤에 나는 나방과 나방을 잡아먹는 박쥐 사이의 군비 경쟁이 탁월한 사례다.
박쥐는 우리가 거의 상상도 못할 감각을 써서 어둠 속을 돌아다니고 먹이를 향해 곧장 나아간다. 박쥐의 뇌는 자신이 낸 (음이 너무 높아서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 초음파 펄스가 부딪혀 돌아온 메아리를 분석한다. 나방이 감지 범위 내에 들어오면, 틱·····틱····· 틱 기준 속도로 내던 펄스가 타-타-타로 빨라지고, 마지막 공격 단계에서는 브르르르르 진동한다. 각 펄스를 세상을 표본 조사하는 활동이라고 본다면, 이렇게 표본 조사 빈도를 늘리면 표적의 위치를 더 정확히 파악하게 되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진화는 수백만 년에 걸쳐서 박쥐의 메아리 기술을 완벽하게 다듬었다. 이를 분석하는 정교한 뇌 소프트웨어도 포함해서다. 한편 군비 경쟁의 반대쪽에 있는 나방은 나름 영리한 방법을 진화시키고 있었다. 나방은 박쥐가 내는 초음파를 듣는 귀를 계발시켰다. 또 박쥐의 소리를 들을 떄마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펼쳐지는 회피 전술도 발전시켰다. 와락 돌진하고, 툭 떨어지고, 홱 비키는 행동이다. 그에 대응하여, 박쥐는 더욱 빠른 반사 행동과 날랜 비행 능력을 진화시켰다. 이러한 군비 경쟁의 정점에서 펼쳐지는 행동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스핏파이어와 메서슈미트 전투기가 펼친 전설적인 공중전처럼 보인다. 밤에 펼쳐지는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는 완전히 고요한 가운데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나방의 귀와 달리, 우리 귀는 박쥐가 내는 기관총을 쏘는 듯한 펄스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방의 귀는 우리와 다르게 조율되어 있다. 아마 나방이 귀를 지닌 주된 이유는 박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방이 덥수룩한 것도 한편으로는 박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 방 안의 메아리를 줄이고자 하는 음향 공학자는 나방의 털과 비슷하게 소리를 흡수하는 성질을 지닌 물질로 벽을 덮는다. 일부 나방은 더 독창적인 비법도 지닌다. 이들의 날개는 '레이더에서 사라지는' 방식의 스텔스 폭격기처럼 박쥐의 초음파와 공명하도록 끝이 갈라진 작은 비늘로 덮여 있다. 또 일부 나방은 스스로 초음파 잡음을 낸다. 이 잡음은 박쥐의 레이더(엄밀히 말하면 음파 탐지기)를 '교란할' 수 있다. 그리고 몇몇 나방 종은 구애할 때 초음파를 쓴다.
땅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은 한곳의 먹이가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재빨리 날아갈 수 있다. 독수리와 맹금류는 높이 날아올라서 넓은 지역을 훑는 용도로 날개를 쓴다. 독수리는 정말로 아주 높은 상공에서 훑는다. 그들은 죽은 동물을 먹으므로 먹이를 잡느라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아주 높이 올라가 넓은 지역을 훑으면서 사자가 잡은 먹이 등이 있음을 알려 주는 단서를 찾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다른 독수리들도 단서가 된다. 사체를 찾아내면 죽 미끄러지듯이 하강한다. 살아 있는 먹이를 잡는 수리와 매 같은 맹금류는 더 낮은 고도에서 아래쪽을 훑다가 아주 빠른 속도로 내리꽂곤 한다. 제비갈매기와 개닛gannet처럼 물고기를 잡는 많은 새도 비슷하게 내리꽂으면서 물속으로 뛰어든다. 이를 급강하 다이빙plunge-diving이라고 한다.
개닛이나 가까운 친척인 얼가니새(부비새)는 빽빽하게 모여들어서 시속 약 96킬로미터의 속도로 물고기 떼를 향해 폭격하듯이 내리꽂는다. 생명이 보여 주는 장관 중 하나다. 이들의 무자비한 습격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또 다른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급강하 폭격기인 슈투카가 이른바 '예리코의 나팔'을 요란스럽게 울리면서 내리꽂거나 일본의 가미가제 항공기가 돌진하는 장면이다. 개닛과 얼가니새는 죽기 위해서 내리꽂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그럼에도 잘못 내리꽂다가는 목이 부러질 수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계속 급강하 다이빙을 하다 보니 서서히 눈이 손상된다. 얼가니새는 이윽고 시력이 나빠지는 바람에 삶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 다이빙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이빙을 하지 않으면 수명이 더욱 짧아질 것이다. 굶어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개닛은 고도로 특화한 잠수부이기에, 잠수 기술을 쓰지 않는다면 갈매기처럼 수면에서 먹이를 잡는 다른 새들과 경쟁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진화론의 한 가지 흥미로운 교훈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교훈은 이 책에서 내내 튀어나올 것이다. 바로 타협과 절충이라는 교훈이다. 다윈의 자연 선택은 동물의 젊은 시기 번식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면, 늙었을 때의 수명을 줄이게 할 수도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다윈주의 언어에서 '성공'이란 죽기 전에 자기 유전자의 사본을 많이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개닛이 젊을 때 물고기를 더 효율적으로 잡게 하는 유전자는 그 새가 늙었을 때 죽음을 촉진한다고 해도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데 성공한다. 이런 추론은 우리가 늙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비록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급강하 다이빙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젊을 때 뛰어났던 조상들로 죽 이어져 온 계통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늙어서까지 뛰어날 필요는 없었다. 그때쯤이면 번식을 대부분 마쳤을 테니까.
비행은 또 어디에 좋을까? 절벽에 편평하게 튀어나온 곳은 여우 같은 지상 포식자로부터 안전하게 둥지를 짓고 잠을 자기에 아주 좋다.
지구는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태양 주위를 돌 때 계절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달이 바뀌면 먹거나 번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많은 동물에게는 장거리를 이주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날씨가 더 좋은 곳을 찾았을 때 얻는 갖가지 혜택이 더 크다. 그리고 물론 '더 좋은' 곳은 우리 인간이 날씨가 좋은 곳이라고, 여름 휴가를 가기에 좋은 장소라고 여기는 곳과 다를 수 있다. 고래는 따뜻한 번식지에 있다가 자신들이 의지하는 먹이 사슬을 부양할 영양소가 해류를 통해서 풍부하게 공급되는 더 차가운 바다로 이주한다. 날개 덕분에 새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다. 이주하는 조류 종은 많지만, 최고 기록은 북극제비갈매기가 갖고 있다. 해마다 약 2만 킬로 미터를 날면서 번식지인 북극권과 섭식지인 남극권 사이를 오간다. 여행에 걸리는 기간은 두 달에 불과하다. 이 엄청난 거리를 그 짧은 시간에 오가려면 비행하는 수밖에 없다. 북극제비갈매기는 해마다 겨울 없이 여름을 두 번 보내며, 이 극단적인 사례는 이주하는 동물이 왜 그렇게 많은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날개가 달린 동물은 다리만으로는 갈 수 없는 섬에도 갈 수 있다. 외딴섬에는 포유류가 전혀 없을 때가 많다. 또는 박쥐가 유일한 포유동물일 때도 있다. 박쥐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박쥐를 제외하면, 외딴섬은 대체로 포유류가 아니라 조류의 세상이다.
비행은 엄청나게 유용한 능력, 온갖 목적을 달성하기에 유용한 능력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이 날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더 예리하게 다듬으면 이렇다. 많은 동물은 조상들이 지녔던 완벽하게 좋은 날개를 잃는 쪽으로 진화했는데, 그 이유가 대체 뭘까?
비행이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 왜 일부 동물은 날개를 버렸을까?
"이러저러한 것이 아주 좋다면, 왜 모든 동물이 그것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일까? 왜 돼지를 비롯한 모든 동물이 날개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일까?" 많은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날개를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유전적 변이를 자연 선택이 결코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돌연변이가 출현하지 않았고, 아마 돼지의 배아 발생 때 이윽고 날개로 자랄 수도 있을 작은 돌기가 나오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날개가 돋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곧장 그 답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생물학자 중에서 조금 별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답을 조합해 덧붙이고자 한다. "날개는 그들에게 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날개는 그들 나름의 생활 방식에 불리할 것이기 때문에, 설령 날개가 그들에게 유용할지라도 경제적 비용이 그 유용성을 초과하기 때문에." 날개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날개를 썼던 조상에게서 유래했지만 날개를 버린 동물들이 잘 보여준다. 이 장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일개미는 날개가 없다. 어디로 가든 걸어서 간다. 아니, '달린다'가 더 맞는 단어일 듯하다. 개미의 조상은 날개 달린 말벌이었고, 현대 개미는 진화 과정에서 날개를 잃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까지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일개미의 부모, 즉 어미와 아비 개미들은 날개가 있었다. 모든 일개미는 여왕의 유전자들을 온전히 다 지니고 있는 불임 암컷이며, 다르게 키워졌다면, 즉 여왕을 키우는 방식으로 키워졌다면 날개가 돋았을 것이다. 즉, 모든 개미의 유전자에는 날개를 돋게 할 능력이 잠재되어 있지만, 일개미는 그 잠재력이 발현되지 않는다. 날개를 만드는 데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일개미는 틀림없이 날개를 만드는 유전적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암컷에게 날개가 자랄 때도 있고 안 자랄 때도 있다면 날개를 돋게 하는 요인과 돋지 않게 하는 요인 사이게 섬세한 균형이 이루어져 있을 것이 틀림없다.
여왕이 원래 살던 집에서 멀리 떠나 새둥지를 차리려면 날개가 필요하다. 왜 멀리 떠나는 것이 좋은지는 11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날개 덕분에 어린 여왕은 다른 둥지에서 날개로 날아오른 수컷을 만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런 이계 교배가 좋은 일일 수 있는 이유도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일개미는 번식을 하지 않으므로,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지 않다. 대개 일개미는 한정된 땅속 공간을 기어 다니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땅속 둥지의 비좁은 통로와 방을 돌아다닐 때 날개는 아마 방해가 될 것이다. 여왕개미가 평생에 한 번 하는 짝짓기 뒤에 새로운 땅속 둥지를 짓기 적당한 곳에 내려앉아서 날개를 떼어 낸다는 사실은 그럴 가능성이 높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자기 날개를 물어서 뜯어내는 종도 있고, 다리로 차서 떼어 내는 종도 있다.
자기 날개를 물어서 뜯어낸다는 사실 자체는 날개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증명한다. 날개는 짝짓기 비행을 하고 새로운 둥지 자리를 탐색하는 목적에 봉사했다. 계속 간직하려면 추가로 비용이 들 것이고 아마 땅속에서는 방해가 되기 때문에, 여왕개미는 날개를 떼어 버리거나 먹어 치운다.
물론 일개미가 언제나 땅속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니다. 밖으로 나와 먹이를 찾아서 둥지로 가져가기도 한다. 날개가 땅속에서는 지장을 준다고 해도, 밖에서는 조상인 말벌처럼 빠르게 먹이를 찾을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그냥 지니고 있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말벌이 개미보다 더 빨리 돌아다닐 수도 있겠지만, 이 점을 생각해 보라. 일개미는 자기보다 훨씬 더 무거운 머기을 둥지로 끌고 돌아오곤 한다. 딱정벌레 한마리를 통째로 끌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큰 먹이는 갖고 날 수가 없다. 때로 일개미들은 협력하여 더욱 큰 먹이도 끌고 온다. 군대 개미 무리는 심지어 전갈까지 통째로 끌고 온다. 말벌과 벌이 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소량의 먹이를 모으는 반면, 개미는 상대적으로 집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날아서는 갖고 올 수 없는 커다란 먹이까지 끌고 오는 쪽으로 분화했다. 짐을 최대로 들지 않는다고 해도, 비행의 매우 에너지 집약적인 활동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말벌의 비행 근육은 아주 작은 왕복 기관이며, 비행 연료인 당을 많이 태운다. 날개 자체도 자라는 데 비용이 많이 들 것이 틀림없다. 모든 부속지는 먹어서 몸에 흡수한 물질로 만들어야 하며, 한 둥지에 있는 일개미 수천 마리에게 날개를 네 개씩 달려면 적잖은 비용이 들 것이다. 군집이 이용할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이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마 이 모든 사항이 일개미에게 날개가 돋지 않는 쪽으로 균형을 기울였을 것이다.
'균형을 기울이다'라는 표현은 금방 와닿으며, 경제적 균형이라는 개념은 이 책에서 계속 접하게 될 것이다. 진화적 이점을 묻는 질문 ㅡ 이 기관은 어디에 좋을까 ㅡ 은 언제나 트레이드오프trade off라는 경게적 계산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즉, 이익과 비용 사이의 형평을 헤아려야 한다.
흰개미termite는 몇몇 측면에서는 개미와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측면도 많다. 어릴 때 아프리카에서 우리는 이 동물을 '흰개미white ant'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들은 개미가 아니며 개미와 가깝지도 않다. 개미는 말벌과 벌의 친척인 반면, 흰개미는 바퀴벌레와 더 가깝다. 흰개미는 바퀴벌레와 비슷한 조상에게서 출발하여 독자적으로 개미와 비슷한 생활 방식을 갖는 쪽으로 진화했다. 개미도 말벌처럼 생긴 조상에게서 출발하여 흰개미와 비슷한 생활 방식을 갖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두 집단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개미, 벌, 말벌의 일꾼들은 언제나 불임 암컷인 반면, 흰개미 일꾼은 불임 암컷뿐 아니라 불임 수컷으로도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흰개미 일꾼들은 날개가 없는 반면, 번식하는 암컷(여왕)과 수컷(왕)은 날개가 있고 여왕과 왕이 날개 달린 개미와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개미와 같다. 날개 달린 흰개미들도 개미와 비슷한 방식으로 무리를 지어서 날고 해마다 특성한 시기에 장관을 펼친다. 어릴 때 아프리카의 친구들은 날개 달린 '흰개미들'이 떼 지어 날고 있으면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서 흰개미들을 입에 마구 집어넣곤 했다. 그러면서 아주 별미라고 자랑했다. 개미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아마 같은 이유로(대개 흰개미는 개미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닫힌 공간에서 보낸다) 흰개미 여왕은 짝짓기 비행을 한 뒤에 날개를 떼어 낸다. 사실 여왕은 기괴할 만치 부풀어 있는 모습으로 변한다. 날개를 지닌다는 생각 자체가 농담으로 여겨질 모습이다. 머리, 가슴, 다리는 분명히 곤충의 것이지만, 배가 엄청나게 부풀어서 알이 가득한 살진 하얀 주머니처럼 변한다. 여왕은 그저 걷는 알 공장이나 다름없다. 실제로는 걷지도 않는다. 너무 뚱뚱해서 걸을 수가 없다. 여왕은 평생에 걸쳐서 1억 개가 넘는 알을 낳는다.
개미와 흰개미 일꾼은 이 장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짐작게 하는 사례다. 모두 유전적으로 날개를 돋울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날개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여왕개미는 자기 날개를 뜯어내거나 물어뜯기까지 한다. 자기 날개를 물어뜯는 새는 없다. 상상조차도 하기 어렵다.
긴 진화 시간에 걸쳐서 보면, 날개가 서서히 쪼그라들거나 아예 사라진 새도 많다. 특히 섬에 사는 새들이 그렇다. 오늘날 날지 못한다고 알려진 새는 60종이 넘는다(멸종한 새까지 치면 훨씬 더 많다). 거위, 오리, 앵무, 매, 왜가리 종류도 있고, 뜸부기류는 트리스탄다쿠냐의 갈수없는섬뜸부기를 포함해 30종이 넘는다.
섬의 새들은 왜 진화하는 동안 비행 능력을 잃는 것일까?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날지 못하는 새는 대개 포유류 포식자나 경쟁자가 들어가지 못했던 아주 외딴섬에서 발견되곤 한다. 포유동물이 없으면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난다. 첫째, 날개를 써서 섬에 들어온 새가 대개 포유류가 채웠을 생활 방식들을 독차지할 수 있다. 굳이 날개가 필요없는 생활 발식들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커다란 포유동물이 맡는 역할을 지금은 멸종한 날지 못하는 새인 모아가 채웠다. 키위는 중간 크기의 포유동물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는 작은 포유동물의 역할을 날지 못하는 굴뚝새인 스티븐스섬굴뚝새와 날지 못하는 곤충인 거대한 귀뚜라미 웨타wetas가 채우고 있다(또는 채웠다. 스티븐스섬굴뚝새는 최근에 멸종했다). 모두 날개를 지녔던 조상들의 후손이다.
둘째, 자기 섬에 포유동물 포식자가 전혀 없기에, 새는 먹히지 않게 달아나는 데 날개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아마 하늘을 날던 어떤 비둘기 종류의 후손일 모리셔스섬의 도도와 이웃 섬들의 날지 못하는 친척 새들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여기서 '발견한다'에 따옴표를 친 이유가 있다. 모리셔스섬이나 로드리게스섬에 막 도착한 이 조상 비둘기들이 주위를 둘러보고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 좋네. 포식자가 전혀 없어. 모두 날개를 없애자." 실제로는 우연히 평균보다 조금 더 작은 날개를 만드는 유전자를 지니게 된 개체들이 대대로 성공을 거둠으로써, 세대가 흐를수록 날개가 점점 작아지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아마 날개를 만드는데 드는 경제적 비용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자식을 더 많이 키울 여유를 누릴 수 있었고, 그 새끼들은 조금 더 작은 날개를 물려받았다. 그렇게 세대가 지날수록 날개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한편 비둘기의 몸집은 점점 커졌다. 날개를 만들고 쓰는 데 필요한 신체 자원을 아껴 다른 부위로 돌릴 수 있으므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행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므로, 절약된 에너지가 몸집을 키우는 등 다른 곳에 쓰인다는 것은 매우 이치에 맞는다. 다만 몸집이 커지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은 섬 동물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혼란스럽게도, 더 작아지는 사례도 종종 있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원래 큰 동물은 섬에 들어오면 작아지고, 작은 동물은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주장이 있다.
도도는 포식자가 없었기에 날개를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도는 17세기에 선원들이 등장하자 살아남지 못했다. '도도dodo'라는 말이 '바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도도는 곤봉을 들고 '운동' 삼아 자신들을 때려잡는 선원들을 피해 달아나지 않았기에 바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달아나지 않은 이유는 그전까지 섬에서 달아날 만한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그들의 조상이 날개를 잃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아마 선원들이 '운동'삼아 때려잡거나 먹기 위해 사냥한 것보다(당시 기록을 보면 별맛이 없었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멸종 원인은 배를 타고 온 쥐, 돼지, 종교 난민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도도와 먹이 경쟁을 했고, 도도의 알을 먹어 치웠다.
코끼리새 알껍데기는 놀라울 만치 두껍다. 자동차 앞 유리와 비슷한 두께다. 중대의 아침 식사용으로 알을 깨려면 도끼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새끼가 어떻게 깨고 나왔을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이는 진화가 사람의 경제처럼 트레이드오프, 즉 타협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알껍데기에 관한 한, 알이 두꺼울수록 포식자의 공격이나 위에 앉아서 품는 부모의 몸무게를 더 잘 견딘다. 반면에 부화할 때가 되었을 때 새끼가 깨고 나오기가 어렵다. 그리고 알이 두꺼울 수록, 칼슘 같은 귀한 자원이 더 많이 들어간다. 진화 이론가들은 '선택압selection pressures' 사이의 트레이드오프 이야기를 좋아한다. 각각의 선택압은 진화하는 종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밀어 대며, 그 결과 다양한 방향에서 절충이 이루어진다. 포식자가 일으키는 자연 선택은 진화 시간에 걸쳐서 두꺼운 껍데기를 진화시키도록 압력을 가한다. 하지만 두껍고 단단한 껍데기로 덮인 알 안에 있는 새끼들은 그대로 갇힌 채 죽기도 하므로, 더 얇은 껍데기를 갖도록 하는 반대 방향의 선택압도 동시에 가해진다. 안에 갇힐 가능성이 가장 적은 새끼들은 더 얇은 알껍데기를 만드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개체들이다. 한편 그 유전자는 포식자가 쉽게 깰 수 있는 알껍데기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알껍데기 두께에 관한 한 어떤 새끼는 이런 이유로 죽고, 다른 새끼는 정반대 이유로 죽는다. 세대가 지날수록, 알껍데기의 평균 두께는 상반되는 압력들의 타협안인 중간 두께로 정착된다.
하늘을 나는 조류에게는 가벼울 필요가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진화 압력으로 작용한다. 나는 새는 몸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아주 멀리까지 나아갔다. 뼈는 속이 비어 있고, 몸의 다양한 부위에 아홉 개의 공기주머니가 있다. 이런 수단들을 써서 몸을 가볍게 만든다고 해도 알이 무겁다면 그 효과는 상당 부분 상쇄될 것이다. 어느 시점에든 간에 새의 몸속에 온전히 다 형성된 알이 단 하나만 들어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 번에 품는 알은 여러 개일 수도 있지만 부모는 마지막 알을 낳은 뒤에야 비로소 알을 품기 시작하므로, 새끼들은 동시에 부화한다. 일부 맹금류는 추가로, 조금 잔혹한 타협을 보여준다. 어미는 기르게 될 새끼 수보다 더 많은 알을 낳는다. 먹이가 유달리 많은 해라면, 모두 기를 수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해라면 으레 가장 작은 새끼가 죽기 마련이다. 때로 형제자매들에게 살해당하기도 한다. 가장 작은 새끼는 더 큰 새끼들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개 포유류는 다르다. 아주 가벼워야 한다는 선택압을 받지 않으므로, 임신한 포유동물은 많은 배아를 함께 품고 있곤 한다.
박쥐는 다르다. 박쥐는 몸집이 작으며 새끼를 대개 한 마리씩만 낳는다. 새와 같은 이유에서다. 사람도 그렇지만, 이유는 다르다. 우리가 한 번에 많은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는 아마 뇌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큰 뇌를 지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 때문에 출산은 유달리 힘들고 고통스러워진다. 현대 의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출산 때 죽는 여성의 비율이 충격적일 만치 높았는데, 주로 아기의 커다란 머리 때문이었다. 여기서 다시금 우리는 진화에서 일어나는 타협을 본다. 사람의 아기는 발달 단계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태어남으로써 엄마에게 미칠 위험을 줄이지만, 생존이 위협에 처할 만큼 너무 일찍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해도 엄마가 편하게 낳을 만큼 작지는 않다. 게다가 두 명 이상의 쌍둥이는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인간의 아기는 일찍 태어나기에, 다른 대형 포유동물들에 비해서 유달리 부모에게 의존하게 된다. 우리는 첫돌 무렵에야 걸음마를 뗄 수 있다. 반면에 누gnu 새끼는 태어난 날 걸을 수 있다. 누도 새끼를 한 마리만 낳는다. 자궁에서 거의 나오자마자 걸을 ㅡ 심지어 달릴 ㅡ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더 많이 낳는다면, 새끼는 더 작게 태어날 것이고 이주하는 무리를 따라다닐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기술은 비타협적인 방향으로 압력을 가할 만큼 성숙했다. 게다가 이 압력은 진화 시간에 걸쳐서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판에 잇달아 설계도를 그리는 시간 규모에서 작동한다. 비행기는 새처럼 가능한 한 가벼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알껍데기처럼 튼튼하기도 해야 한다. 양쪽 극단은 양립 불가능하므로, 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균형이 필요하다. 항공 여행은 지금보다 더 안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돈뿐 아니라, 불편함과 지연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여기서도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안전에 무한한 가치를 둔다면, 보안 요원이 각 승객의 옷을 다 벗기고 검사하고, 모든 가방의 물품을 꺼내서 살필 수도 있다. 그러나 받아들일 만한 트레이드오프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는 것을 막아 준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받아들인다.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는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인간의 생명이 무한히 소중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 군용 항공기와 민간 항공기의 법규는 서로 다른 안전 기준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다. 경제적 트레이드오프, 균형과 타협은 기술과 진화 양쪽의 토대이며, 이 개념들은 이 책에서 내내 등장한다.
작다면 비행은 쉽다
코팅리 요정이 존재하지 않았다니 안타깝다. 천사나 부라크 혹은 페가수스와 달리, 이 상상 속의 작은 인간은 쉽게 날 수 있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몸집이 클수록 비행은 점점 어려워진다. 독자가 꽃가루나 깔따구만큼 작다면, 굳이 날려고 애쓸 필요도 거의 없다. 그냥 산들바람을 타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가 말처럼 크다면, 날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물론 아예 못 날 수도 있다. 크기가 왜 중요할까? 이유는 흥미롭다. 여기서는 수학이 조금 필요하다.
무언가의 크기(이를테면 길이, 그리고 다른 모든 차원은 그에 비례한다고 하고)를 2배로 늘린다면, 부피와 무게도 2배로 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8배 무거워진다(2*2*2). 이는 사람, 색, 박쥐, 비행기, 곤충, 말을 포함하여 어떤 모양의 규모를 키우든 간에 다 들어맞지만, 아이의 장난감 블록 크기를 늘릴 때 가장 뚜렷이 알 수 있다. 정육면체 블록을 하나 놓자. 이제 블록을 쌓아서 모양은 같으면서 크기가 2배가 되도록 하자. 큰 쪽은 블록의 수가 몇 개일까? 8개다. 크기가 2배로 늘어난 블록 더미는 같은 모양을 한 블록 한 개보다 8배 더 무겁다. 이제 블록 크기를 3배로 한다면, 블록 27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3*3*3, 즉 3의 세제곱이다. 그리고 각방향으로 블록을 10개씩 쌓으려고 한다면, 아마 블록이 부족해질 것이다. 무려 10의 세제곱(1,000) 개가 필요할 테니까.
어떤 모양이든 골라서 크기를 몇 배수만큼 늘려보자. 불어난 대상의 부피(그리고 비행에 명백히 영향을 주는 무게)는 언제나 그 수의 세제곱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 수를 세 번 곱한 값이다. 이 계산은 블록만이 아니라 크기를 늘리고자 하는 모든 모양에 적용된다. 그러나 크기를 늘리는 대상의 무게는 세제곱씩 증가하는 반면, 표면적은 제곱씩만 증가한다. 블록 하나를 칠하는 데 필요한 물감의 양을 재 보자. 이제 어느 방향에서 재든지 블록이 2개씩 되도록 쌓아보자. 겉으로 드러난 표면을 다 칠하려면 물감이 얼마나 들까? 2배도 아니고 8배도 아니다. 물감은 4배만 더 있으면 된다. 이제 모든 방향으로 블록이 10개씩 놓이도록 쌓아보자. 앞서 말했듯이, 무게는 이제 1,000배에 달할 것이다. 블록은 1,000배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감은 100배만 더 있으면 된다. 따라서 몸집이 작을수록,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더 크다. 표면적이 왜 중요한지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자. 여기서는 표면적이 클수록 공기를 더 많이 접한다는 말만 하고 넘어가기고 하자.
우리가 시작한 환상의 비행을 따라가 보자. 천사가 날개를 지닌 사람, 확대된 요정이라고 생각해 보자. 대천사 가브리엘은 대개 보통 사람과 거의 같은 키로 그림에 묘사되어 있다. 약 170센티미터다. 코팅리 요정보다 10배 정도 크다. 그러니 가브리엘은 요정보다 10배가 아니라, 1,000배 더 무거울 것이다. 천사를 들어 올리려면 날개가 얼마나 열심히 날갯짓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라. 게다가 날개의 면적은 1,000배가 아니라 100배만 늘어날 것이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황홀할 만치 아름다운 수태고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림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오는데 날개가 놀라울 만치 작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성인 남성(비록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만 한 가브리엘은 커녕, 아이조차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할 날개다.
몸집이 커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비행만은 아니다. 걷기도 힘들어진다. 그냥 서는 것조차도 더 힘들어진다. 동화 속 거인은 못생기긴 했지만 대개 정상적인 모습의 사람을 확대한 것처럼 묘사된다. 그런데 키가 9미터인 오크의 뼈가 정상적인 사람의 뼈와 비슷하면서 그저 크기만 큰 것이라면, 무게 때문에 부러질 것이다. 오크는 키가 1.8미터인 사람보다 겨우 5배가 아니라, 125배 더 무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고통스럽게 뼈가 부러지면서 무너지는 일을 막으려면, 거인의 뼈는 정상적인 사람의 뼈보다 더 높은 비율로 굵어져야 할 것이다. 코끼리의 뼈와 큰 공룡의 뼈처럼 굵은 나무줄기 같아야 한다. 길이가 늘어난 비율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로 굵어질 필요가 있다.
크기는 어느 방향으로든 간에 동물이 진화할 때 변하기 가장 쉬운 것 중 하나다. 모리셔스섬의 도도를 이야기할 때 보았듯이, 섬에 들어간 동물은 더 커지는 쪽으로 진화하곤 한다. 이를 섬 거대화island gigantism라고 한다. 혼란스럽게도 다른 상황에서는 섬에 들어왔을 때 더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섬 왜소화island dwarfism다. 크레타, 시칠리아, 몰타에 살았던 키 1미터의 작은 코끼리가 그랬다. 분명히 귀여웠을 것이다. 포스터 법칙Foster's Rule은 원래 작은 동물은 섬에 와서 커지는 경향이 있고, 큰 동물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그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냥감인 동물(본래 작은 경향이 있는)은 포식자가 없기에 더 커지는 것이라는 추론이 제시되어 있다. 반면이 큰 동물은 작은 섬에는 구할 수 있는 먹이가 한정되어 있어서 작아진다.
이제 크기의 진화적 변화가 단순히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는 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비율도 변해야 한다. 앞서 장난감 나무 블록에서 살펴본 수학 법칙 때문이다. 동물의 전체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더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하는 동물은 더 깡총하고 가늘어진다. 더 커지는 쪽으로 진화하는 동물은 더 굵고, 나무줄기 같은 팔다리를 지녀야 한다. 단지 뼈만이 아니라 ㅡ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ㅡ 심장, 간, 허파, 창자 등의 기관까지, 절대적인 크기가 변하면 모든 비율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하는 모든 수학적 이유는 이 장의 첫머리에서 살펴보았다.
비행에는 몸집이 작을수록 더 좋다. 그런에 어떤 이유로든간에 몸집이 크면서도 날 필요가 있다면? 큰 몸집을 지닐 타당한 이유는 많다. 경제적으로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해도 그렇다. 작은 동물은 잡아먹히기 쉽다. 또 커다란 먹이를 잡을 수 없다. 자신이 자기 종의 경쟁아, 짝을 구하려는 경쟁자보다 더 크다면 경쟁자를 위협하기가 더 쉽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작아질 수 없으면서도 날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이륙할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몸집이 크면서도 날아야 한다면, 표면적은 더 높은 비율로 늘려야 한다
앞장에서 우리는 작은 동물이 자동적으로 무게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표면적을 지닌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비행이 쉽다.
그런데 표면적이 비행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표면적이 넓을수록, 공기를 받는 면적이 그만큼 늘어난다. 똑같은 풍선 두 개가 있다고 하자. 한쪽 풍선은 불어서 표면적을 늘리고, 다른 풍선은 그대로 흐느적거리는 납작한 고무로 놔두자. 그런 다음 피사의 사탑에서 두 풍선을 동시에 떨어뜨리면 어느 쪽이 땅에 먼저 닿을까? 불지 않은 풍선이 먼저 떨어질 것이다. 무게가 똑같음에도 말이다(사실 아주 조금 더 가벼움에도). 물론 진공 상태에서 떨어뜨린다면, 둘은 동시에 땅에 닿을 것이다(더 현실적으로 보면, 공기를 불어 넣은 풍선은 진공 상태에서 터지겠지만 그 문제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여기서 '물론'이라고 말했지만, 갈릴레이 이전까지는 모든 사람이 놀랄 이야기였을 것이다. 갈릴레이는 진공 상태에서 동시에 떨어뜨린다면 깃털와 대포알도 동시에 땅에 닿을 것임을 보여 주었다.
이 장에서 우리가 다룰 질문은 이것이다. 동물이 나름의 이유로 몸집이 크면서도 날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표면적을 불균형적으로 늘림으로써 보완을 해야 한다. 깃털(새라면)이나 얇은 피부로 된 막(박쥐나 익룡이라면)처럼 뻗어 나온 부위를 만들어야 한다. 몸을 이루는 물질이 얼마나 많든 간에(즉, 부피나 몸무게가 얼마가 되든지 간에), 그 부피의 일부를 펼쳐서 표면적을 넓힌다면, 비행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아니 적어도 부드럽게 낙하하거나, 산들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천사가 그렇게 거대한 날개를 지니도록 우리가 수정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공학자는 날개 하중wing loading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한다. 항공기의 날개 하중은 항공기 무게를 날개 표면적으로 나눈 값이다. 날개 하중이 클 수록, 뜨기가 더 어렵다.
항공기 ㅡ 또는 새 ㅡ 가 더 빨리 날 수록, 날개의 제곱센티미터당 일으키는 양력은 더 커질 수 있다. 무게가 같다면 더 빨리 나는 항공기일수록 날개 면적이 더 작아도 되며, 작으면서도 떠 있을 수 있다. 빠른 비행기보다 느린 비행기가 상대적으로 날개 표면적이 더 큰 경향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처럼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하던 초기 항공기들은 쌍엽기가 많았다. 날개 면적을 2배로 늘리면, 항력도 증가한다. 같은 이유로 삼엽기도 종종 만들어졌다.
그런데 잠시 비행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보면, 표면적과 부피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생물의 몸에 매우 중요하며, 아주 흥미롭다. 이를테면 날개가 외부 표면적을 늘리고 그것이 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몸집 증가에 발맞추어서 내부 표면적을 늘리는 기관도 많다. 허파가 한 예다.
동물의 부피나 무게는 세포의 수를 알 수 있는 좋은 척도다. 큰 동물은 세포가 더 큰 것이 아니라, 세포가 더 많은 것이다. 코끼리의 세포든 생쥐의 세포든 간에 몸에 있는 모든 세포는 산소를 비롯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들을 공급받아야 한다. 벼룩은 코끼리보다 세포가 더 적으며, 공기로부터 아주 멀이 떨어져 있는 세포는 전혀 없다. 즉, 산소는 조금만 들어가도 어느 세포에든 다다를 수 있다. 성인은 약 3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지며, 그중에 극히 일부에 불과한 피부 세포만이 공기를 접하고 있다. 사람이 벼룩보다 표면적이 훨씬 넓다고 해도, 우리 몸에서 바깥 표면을 이루는 세포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 우리 큰 동물은 공기에 노출되는 안쪽 표면적을 엄청나게 넓힘으로써 바깥 표면적 부족을 보완한다. 허파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허파 속은 갈라지고 또 갈라지면서 뻗어 나가는 관들이 복잡한 망을 이루고 있으며, 가장 끝에는 허파 꽈리라는 작은 방이 있다. 우리 몸에는 허파 꽈리가 약 5억 개 있으며, 허파 꽈리를 다 펼쳐서 이어 붙이면 면적이 테니스장을 거의 뒤덮을 정도다. 우리 몸속의 이 표면 전체는 공기를 접하고 있으며, 혈관이 풍부하게 공급되어 있다. 훨씬 작긴 하지만, 곤충도 공기가 통하는 복잡하게 가지를 친 관들의 망인 기관을 통해서 공기와 접하는 표면적을 늘리는데, 마치 곤충의 몸 전체가 허파인 듯하다.
우리 허파 속의 혈관은 갈라지고 또 갈라지면서 허파뿐 아니라 몸의 모든 세포에 뻗어 있다. 느리게 연소를 하면서 에너지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근육 세포에도 뻗어 있다. 모세 혈관은 모든 세포로 뻗어 있으면서 물질을 수거하고 배분하는 데 쓰일 엄청난 내부 표면적을 제공한다. 전형적인 세포는 살아남으려면 가장 가까이 있는 모세 혈관의 약 0.05밀리미터 이내에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가장 가까운 모세혈관에서 세포 2~3개 지름 내에 있어야 한다. 모세 혈관은 역시 아주 넓은 내부 표면적을 제공하는 창자에서 음식의 물질을 흡수한다. 이 면적도 테니스장만 하다. 우리 몸 속에 있는 이리저리 꼬여있기에 실제로는 아주 길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지렁이의 창자와 비교해 보자. 지렁이의 창자는 그저 몸의 끝에서 끝까지 곧장 뻗어 있는 관이다. 우리 콩팥에도 작은 관이 무수히 뻗어 있어서 마찬가지로 내부 표면적을 넓힌다. 콩팥에서는 피가 걸러져서 노폐물이 제거된다. 몸에 있는 혈관의 대부분은 모세 혈관이며, 혈관을 다 모아서 이어 붙이면 지구를 세 바퀴나 감고도 남는다. 이는 피와 세포 사이의 접촉 표면적이 엄청나게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파와 창자뿐 아니라 간, 콩팥 등 우리 몸에 있는 커다란 장기 중 상당수는 모두 피가 세포에 닿는 유효 표면적을 늘린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산호초의 고랑과 틈새, 숲의 울퉁불퉁한 나무껍질과 무수한 잎도 생명이 생명 활동을 하기 위해 쓸 표면적을 엄청나게 넓힌다.
곁다리로 흐른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 장의 제목인 '몸집이 크면서도 날아야 한다면, 표면적을 더 높은 비율로 늘려야 한다'가 비행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호흡, 혈액 순환, 소화, 노폐물 처리 등 동물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몸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일에도 모두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쯤하고 다시 비행으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물이 체중에 비해 표면적이 클수록, 공중에서 떨어지는 속도는 더 느려지며, 비행에 필요한 양력을 얻기는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날개짓을 하는 데 쓰이든 활공하는 데 쓰이든 간에 날개는 분명히 표면적을 넓힌다. 박쥐와 익룡의 날개는 얇은 피부막이다. 얇은 표면은 지탱해 줄 것이 필요하다. 뼈나 다른 무언가로 지지를 해야 한다. 진화는 기회주의적이다. 즉, 아예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기존에 있는 것을 땜질해 쓰는 경향이 있다. 이론상으로는 천사의 그림에서처럼 등에서 날개가 돋아난다고 상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지탱할 새로운 뼈도 자라야 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기존 뼈 중에서 비행 표면을 지지하는 데 동원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무엇일까?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몸 양옆으로 삐죽 내민 얇은 막을 써서 활공하는 도마뱀이 있다. 이들은 갈비뼈를 이 막을 지지하는 용도로 쓴다. 그러나 박쥐, 새, 익룡 같은 더 전문적인 비행자들은 팔을 이용한다. 팔에는 용도를 변경하기에 좋은 쓸 만한 뼈와 근육이 이미 들어 있다.
새는 문제를 다르게 해결한다. 비행 표면은 피부막 대신에 교묘하게 펼칠 수 있는 깃털로 이루어져 있다. 깃털은 세계의 경이 중 하나다. 공중에 띄울 수 있을 만치 튼튼하면서 뼈보다 딱딱하지 않은 경이로운 장치다. 깃털은 유연한 동시에 빳빳해서 새의 날개는 뼈를 덜 쓸 수 있다. 그림에 실린 까마귀처럼 일부 조류는 팔의 뼈대가 날개의 약 절반까지만 뻗어 있고 나머지는 깃털로 되어 있다. 그에 비해 박쥐나 익룡은 뼈가 날개의 끝까지 뻗어 있다. 뼈는 튼튼하지만 무거운데, 비행자가 되고자 한다면 결코 무거워지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속이 빈 관은 꽉 찬 막대보다 훨씬 가벼우면서 조금 덜 튼튼할 뿐이다. 비행하는 척추동물은 모두 속이 빈 뼈를 지니며, 안에는 뼈를 튼튼하게 받치는 지지대가 들어 있다. 새는 날개에 가능 한 뼈를 적게 지니는 대신에, 아주 가벼운 깃털의 빳빳함을 이용한다.
깃털은 파충류의 비늘이 변형된 것이다. 아마 원래 비행용이 아니라 포유류의 털처럼 단열용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진화가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동력 비행: 낙하와 활공
독자가 얼마나 무겁든 간에 표면적이 충분히 넓다면, 적어도 부드럽고 안전하게 하강할 만큼 중력을 길들일 수 있다. 우리가 낙하산을 메고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활공하는 새가 아래로 활공을 시작하기 전에 높이, 때로 아주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온난 상승 기류를 이용하는 것이다. 뜨거운 공기는 솟아오른다. 온난 상승 기류는 더 차가운 공기에 둘러싸여 솟아오르는 따뜻한 공기의 수직 기둥이다. 온난 상승 기류는 흔히 태양에 땅이 불균등하게 가열될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 드러난 바위처럼 주변 땅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곳들이 있다. 그러면 그 주위의 공기도 가열되면서, 온난 상승 기류가 되어 올라간다. 그 아래로는 주위의 차가운 공기가 모여들어서 빈자리를 메웠다가 마찬가지로 가열되어 위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공기는 점점 차가워져서 온난 상승 기류의 꼭대기까지 가면 주위로 가라앉는다. 내려간 공기는 상승 기둥의 바닥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대류 순환이 이루어진다. 솜이 뭉친 것 같은 뭉게구름은 온난 상승 기류의 꼭대기에서 공기가 식으면서 물방울이 생길 때 형성되곤 한다. 이런 구름은 멀리서도 온난 상승 기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동력 비행과 작동 방식
현대 헬기는 많은 양의 화석 연료를 태워서 거대한 회전 날개를 요란스럽게 돌리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비틀린 날개가 아래쪽으로 강한 바람을 일으킴으로써 헬기를 곧바로 위로 밀어 올린다.
또 헬기는 꼬리에 프로펠러가 하나 더 필요하다. 옆을 향해 있는 이 프로펠러는 동체가 팽이처럼 빙빙 도는 것을 막는다.
이륙할 때에는 제트 노즐을 곧바로 아래로 향하게 해 동체를 들어 올린다. 이륙하면 노즐 방향을 바꿔 뒤로 향하게 해 앞으로 날아간다. 그러면 정상적인 비행기처럼 날개를 통해 향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일반 항공기는 어떻게 이륙할까? 조금 더 복잡한데, 이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헬기와 달리, 일반 항공기는 프로펠러나 제트를 써서 앞으로 빠르게 나아감으로써 양력을 얻는다. 그리고 날개에 부딪히거나 날개 주위로 지나는 공기의 흐름은 두 가지 방식으로 비행기를 띄운다. 이 두 방식 모두 제작된 항공기뿐 아니라 살아 있는 비행자에게도 중요하다. 두 방식 중에서 명백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뉴턴 방식이다. 비행기가 나아가면 공기가 날개에 부딪히면서 압력이 생기고, 날개가 살짝 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비행기가 빠르게 나아가면 이 압력이 비행기를 위로 들어 올린다. 빠르게 달리는 차에서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이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손바닥을 약간 위로 기울이면 팔이 위로 밀려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는 날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말해 주는 확실한 설명이다. 즉, 날개는 뉴턴 방식을 쓴다. 이것이 비행기가 양력을 얻는 주된 방식이다. 약간 위로 기울어진 납작한 판이기만 해도 날개는 작동할 것이므로, 이를 '납작판 방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덜 명백하긴 하지만 작동하는 방식이 또 하나 있다. 이 두 번째 방식은 빠르게 앞으로 추진될 때 날개에 양력을 일으킨다. 이 방식은 18세기 스위스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많은 이들, 특히 몇몇 교과서 저자조차도 이 두 방식이 어떻게 함께 작용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가 복잡한 양상을 띠는 이 두 방식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단순한 용어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해도, 비행기가 뜬다는 것이다.
날개가 양력을 제공하는 두 번째 방식, 즉 베르누이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는 현대 항공기의 날개가 납작판이 아님을 안다. 멋지게 다듬어진 모양이다. 앞쪽 가장 자리는 두껍고 뒤쪽 가장자리는 얇다. 그리고 날개의 단면을 보면 공들여 다듬은 곡선 모양을 하고 있다. 공기가 날개 표면위로 흐를 때 베르누이 원리에 따라서 양력을 얻도록 설계된 모양이다.
베르누의 원리는 유체('유체'는 액체뿐 아니라 기체도 의미한다)가 어떤 표면위를 지나갈 때, 그 표면에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이 장의 끝부분에서 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해 보겠다. 샤워할 때 커튼이 다가와서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욕조 바깥에 두 번째 커튼을 달기도 한다. 이 사례에서 베르누이 유체는 떨어지는 물이 일으키는 아래로 부는 바람이다. 한 커튼의 양쪽에서 두 샤워기가 아래로 물을 쏟아 내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물을 더 빠르게 쏟아 낸다. 베르누이 원리에 따르면, 커튼은 물줄기가 더 빠른 쪽으로 '빨려 들' 것이다. (여기서 '빨려 들'에 따옴표를 단 이유는 흔히 흡인을 한쪽이 다른 쪽보다 압력이 더 높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행기 날개가 공기를 가르고 나아갈 때도 바람을 받는다. 비행기는 바람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바람에 맞서는 방향으로 이륙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미묘한 내용이 나온다. 베르누이 원리는 흡인의 세기가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표면의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공기는 더 납작한 표면을 지닌 날개 아랫면보다 더 구부러진 표면을 지닌 윗면을 더 빠르게 지나간다. 여기서 빠른 물줄기와 느린 물줄기 사이에 걸려 있는 커튼을 떠올려 보자. 샤워 커튼과 마찬가지로, 날개도 위쪽 표면의 압력이 낮기 때문에 위로 빨려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날개의 굽은 윗면에서 공기가 더 빨리 흐르는 이유는 아주 복잡하다. 예전에는 대개 두 공기 분자가 날개 앞쪽에서 동시에 출발해 위아래로 분리되어 날개를 스쳐 지나간다면, 어떤 수수께끼 같은 이유로 날개 뒤쪽에 동시에 도착해야 한다고 설명하곤 했다. 다시 말해, 굽은 위쪽 표면을 따라 나아가는 분자는 더 멀리 돌아가기에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설명은 틀렸다. 두 분자는 같은 시간에 날개 뒤쪽에 도달하지 않는다. 그래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렇긴 해도 공기 분자는 날개 표면에 부딪힌 뒤 접선으로 쭉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굽은 위쪽 표면을 껴안은 채 움직이기에, 납작한 아래쪽 표면보다 굽은 위쪽 표면을 더 빨리 이동한다. 따라서 베르누이 효과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양력을 제공한다.
이렇게 말했으니, 베르누이 효과가 양력에 기여하는 정도가 앞서 말한 '납작판', 즉 뉴턴 효과보다 대개는 덜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해야겠다. 베르누이 양력이 비행에 가장 중요한 기여 요인이라면, 비행기는 뒤집힌 채로 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비행기, 적어도 작은 비행기는 뒤집힌 채로도 날 수 있다.
방금 공기 분자가 굽은 위쪽 표면을 '껴안고' 있으며, 표면에 부딪힌 뒤 접선 방향으로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일부만 맞다. 받음각이 너무 크면, 즉 날개가 너무 많이 기울어지면, '껴안기'가 끊기면서 공기 분자는 날개의 표면을 따라 매끄럽게 흐르는 대신에 떨어져 나가면서 소용돌이치는 난류로 들어간다. 베르누이 흡인은 깨지고, 항공기는 갑자기 양력을 잃는다. 이를 실속이라고 한다. 실속은 위험할 수 있으며, 조종사는 받음각을 줄임으로써(대개 기수를 조금 내림으로써) 날개 위쪽으로 공기가 매끄럽게 흐르는 층류를 복원해 양력을 복구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방금 '받음각angle of attack'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내친김에 비행과 관련된 몇 가지 전문 용어도 정의하기로 하자. 받음각은 날개가 기류와 만나는 각도를 말한다. '피치pitch'와 혼동하지 말기를. 피치는 지면과 이루는 각도를 가리킨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피치는 크다. 여객기가 이륙할 때 트레이를 집어 넣으라는 말을 듣지 않으면, 음료가 무릎에 쏟아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때는 받음각도 크다. 그러나 피치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받음각도 크다는 의미는 아니다.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는 전투기는 피치는 커도 받음각은 낮다. 날개로 밀려드는 기류도 아래로 향해 거의 수직이기 때문이다.
'피칭pitching'은 항곡기의 기수가 아래나 위로 기울어지며 지면과 이루는 상대적인 각도를 말한다. 또 한쪽 날개가 올라가고 다른 쪽 날개가 내려가 비행기가 좌우로 기울어지는 것은 '롤링rolling'이라고 한다. 조종사는 날개 뒤쪽에 연결된 보조 날개를 써서 롤링을 제어한다. 피칭은 수평 꼬리 날개에 달려있는 승강타로 조절한다. 또 비행기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도는 것은 '요잉yawing'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가 비행에 쓰이는 중요한 용어다. 조종사는 수직 꼬리 날개의 방향타를 움직여서 요잉을 제어한다. 물론 동물 비행자도 피칭, 롤링, 요잉을 제어한다.
고정 날개 항공기보다 새의 날개가 어떻게 양력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지 이론적으로 계산하기는 더 어렵다. 새는 날개를 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민하고 조정하고 모양을 끊임없이 바꿀 수도 있다.
날갯짓과 모양 변화 때문에 새의 비행은 수학적으로 상세히 살펴보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양력을 얻는 두 가지 방식, 즉 뉴턴 방식과 베르누이 방식이 비행기 날개뿐 아니라 새의 날개에도 똑같이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 복잡한 방식으로 작용하겠지만 말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실속이라는 문제로 돌아가자. 이 문제는 비행기뿐 아니라 새에게도 적용된다.
항공기에는 실속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정교한 장치가 있다. '날개 슬랫wing slat'도 그중 하나다. 날개 슬랫은 주 날개 앞쪽에 교묘하게 붙은 작은 보조 날개처럼 보인다. 슬롯slot이라는 조종할 수 있는 틈새를 만들기 위해서 붙인다. 슬랫은 슬롯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갈 공기를 주 날개의 위쪽 표면으로 돌림으로써 더 많은 공기가 위쪽 표면을 따라 흐르게 한다. 그러면 난류가 시작되는 지점이 더 뒤로, 즉 날개의 위쪽 표면을 지나서 더 뒤쪽으로 밀린다. 그렇게 실속을 방해한다. 날개 슬랫 덕분에 비행기는 실속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받음각을 더 크게 할 수 있다. 슬랫은 정상적인 비행을 할 때는 산뜻하게 접혀 있다. 조종사는 이착륙을 할 때 슬랫을 작동시킨다. 받음각이 가장 커지고 비행기가 가장 느리게 날 때다. 현대 여객기는 날개 끝이 우아하게 비틀려 있기도 하다. 이 모양은 난류와 항력을 줄여 준다. 새의 날개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곤 한다.
항공기만 실속을 겪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는 살아 있는 항공기이며, 따라서 새도 예외가 아니다. 새도 항공기처럼 날개 슬랫이 있을까? 비슷한 것이 있다. 높이 나는 새들은 많은 경우 날 개 끝 쪽의 깃털 사이가 뚜렷하게 벌어져 있다. 이 틈새는 슬랫과 같은 일을 하는 듯하다.
맥크레디는 무게를 1그램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비행기 부품들을 접한하는 데 쓰는 접착제도 아주 가벼운 특수한 종류를 썼다. 무게가 대단히 중요했으니까! 비행하는 동물도 최대한 몸을 가볍게 만든다. 새, 박쥐, 익룡의 뼈는 속이 비어 있다. 여기에서도 뼈를 가능한 한 가볍게 만드는 것과 잘 부러지지 않게 만드는 것 사이에 트레이드오프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빨이 별로 무겁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새는 조상이 지녔던 이빨을 버렸다. 이빨 대신에 각질의 부리가 더 가볍기 때문이다. 항공기가 빠를수록, 유선형을 취하는 것이 더욱 증요해진다. 그 이유가 궁금할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공기 저항이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어디에서 설계되었든 간에, 현대 고속 여객기가 거의 똑같은 모습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산업 스파이 활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나라의 공학자들은 동일한 물리 법칙을 붙들고 씨름해야 한다. 항공기가 더 느렸던 이전 시대에는 이런 통일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로켓은 동쪽으로 쏘며, 지구의 자전 속도를 받아서 궤도로 던져진다. 유럽 우주국은 자전 속도를 잘 이용하기 위해 프랑스령 기아나에 로켓 발사대를 두고 있다. 적도 근처에 있어서 로켓을 궤도로 올릴 때 지구 자전의 힘을 가장 많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르누이 원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할 독자로 있을 테니, 수학 기호 없이 아주 단순하게 설명해 보자. 먼저 기압이 분자 수준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표면이 받는 압력은 조 단위의 분자가 두드려 대는 힘들을 다 더한 것이다. 공기 분자는 서로 또는 표면에 부딪혀서 튀어나올 때 무작위로 방향이 바뀌면서 끊임없이 윙윙 돌아다닌다. 파티 풍선을 불 때, 안쪽 표면은 바깥쪽 표면보다 압력을 더 많이 받는다. 안쪽이 바깥쪽보다 세제곱센티미터당 공기 분자가 더 많이 들어 있기에, 풍선 표면 제곱센티미터당 안쪽이 바깥쪽보다 분자 폭격을 더 많이 받는다. 우리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도 분자 폭격이다. 카드를 한 장 들어 보자. 한 면은 빨간색이고 다른 면은 초록색이다. 고요한 날에 카드는 양면에 동일한 속도로 분자들의 폭격을 받는다. 하지만 빨간 면을 바람을 받는 쪽으로 향하면, 바람 분자가 빨간 면을 폭격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며, 바람이 카드를 밀어 대는 압력을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아주 명백하다. 그런에 여기서 베르누이 원리로 들어가면 조금 까다롭다. 카드를 수평으로 들어서 빨간 면을 하늘로 향하면, 이제 바람은 카드에 수평으로 (양쪽 표며을 다 스치면서) 분다. 공기 분자는 여전히 서로 부딪히고 카드의 양쪽 표면에도 부딪히는 등 무작위로 모든 것에 부딪힌다. 그러나 여전히 대체로 무작위적이긴 하지만, 분자들의 운동은 이제 바람 방향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즉, 양쪽 표면에 부딪히는 분자의 수가 더 적다는 의미다. 대신에 분자들은 카드 주위로 빠르게 지나간다. 이는 양쪽 표면의 압력이 감소한다는 말과 같다. 카드는 위로 들리지도 아래로 밀리지도 않는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헤어 드라이어 두 대를 써서 바람이 초록 표면보다 빨간 표면 위로 더 빠르게 스쳐 지나가도록 해 보자. 그러면 빨간 표면 주위의 압력이 초록 표면 주위의 압력보다 더 감소할 것이고, 카드는 위로 들릴 것이다.
동물의 동력 비행
동물의 비행은 사람이 만든 기계의 비행보다 더 복잡하며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는 치는 날개가 동물의 몸을 앞으로 밀어내는(비행기 원리) 동시에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기도(헬기와 더 비슷하게) 하기 때문이다. 새가 나는 영상을 저속으로 틀면저 지켜보면(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려는 희망이라도 품으려면 느리게 봐야 한다), 날개가 단지 위아래로 팔락거리는 것만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날개의 굴곡이 유연하게 휘어지는 깃털과 결합되어서 새를 앞으로 밀며, 이 전방 운동은 7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뉴턴 방식과 베르누이 방식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양력을 일으킨다. 그와 동시에, 날개의 하향 운동은 자체적으로 양력을 일으킨다. 이 점은 7장의 첫머리에서 헬기를 다룰 때 이야기했다. 날개의 상향 운동이 반대 효과를 일으켜서 양력을 상쇄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날개의 굴곡 때문이기도 하고, 위로 올릴 때 날개를 비틀어서 팔꿈치와 손목의 관절을 안쪽으로 당겨서 힘차게 아래로 칠 때에 비해 날개의 표면적을 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펠러나 제트 엔진이 없기에, 새를 비롯한 비행 동물들은 날개를 써서 앞으로 나아가는 한편으로 직접 양력도 일으킨다. 이 점은 인간이 만든 비행기와 다르다. 비행기 날개는 양력을 일으키지만, 추진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이와 정반대 편에 있는 극단적인 사례는 펭귄이다. 펭귄의 날개는 오히려 추진력만 일으키며, 양력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물론 공중이 아니라 물속에서이긴 하지만,. 펭귄은 물보다 더 가벼워서 물에 뜨므로, 날개로 양력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대신에 날개를 써서 수중 '비행'을 한다. 땅 위에서는 뒤뚱뒤뚱 느리게 걷지만, 물속에서는 돌고래처럼 아주 빠르게 물을 가르고 나아간다. 돌고래는 날개가 아니라 꼬리를 위아래로 움직여서 물속을 나아간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돌고래와 펭귄 모두 아름다운 유선형이다. 이미 하늘을 나는 데 알맞은 유선형 몸을 지니고 있었기에, 펭귄의 조상은 물속에서 나아가는 데 알맞은 유선형 몸을 갖추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퍼핀puffin, 개닛, 큰부리바다오리, 바다오리 같은 새들도 날개를 써서 물속에서 난다. 그러나 펭귄과 달리, 이들은 공중에서도 날개를 써서 난다. 공중에서 가장 좋은 날개 모양은 물속에서 가장 좋은 날개 모양과 다르다. 수중 비행에는 작은 날개가 더 낫다. 퍼핀과 바다오리는 양쪽 요구 조건을 절풍한 날개를 지닌 반면, 펭귄은 하늘을 나는 것을 포기했기에, 오로지 물속에서 쓰는 쪽으로 날개를 완벽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퍼핀은 날개가 하늘을 나는 데 이상적인 크기보다 더 작으며, 그래서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 날개를 아주 빨리 파닥거리며 날아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 헤엄치는 데 이상적인 크기보다는 더 크다. 여기서도 우리는 타협이라는 진화 원리를 본다.
가마우지는 커다란 발을 써서 물속에서 추진력을 일으키며, 날개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 날개는 주로 하늘을 날 때에만 쓴다. 바다오리와 큰부리바다오리의 친척인 멸종한 큰바다쇠오리는 날지 못했고, 펭귄처럼 날개는 헤엄치는 쪽으로 완벽하게 진화했다. 큰바다쇠오리는 '북쪽의 펭귄'이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학명도 핑구이누스Pinguines로 비슷하지만, 펭귄과 가까운 친척은 아니다. 날개는 날지 못할 만큼 아주 작았다. 그리고 모습도 펭귄과 비슷했다. 마치 큰바다쇠오리의 조상인 북방큰부리바다오리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저런, 공기와 물 양쪽에서 날려고 애쓰다니. 절충하는 데 아주 비용이 많이 들 거야. 공기는 잊고 물에만 집중해. 그러면 정말로 잘할 수 있어."
이제 공중을 비행하는 문제로 돌아가자. 날개로 추진력을 일으키는 것은 공중에서 일종의 노를 젓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벌새는 빠르게 붕붕거리면서 날개를 젓는 스컬링 운동을 극단적인 수준까지 밀고 나간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거의 완전히 뒤집는다. 그래서 날개를 올려칠 때도 거의 내리칠 때만큼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덕분에 벌새는 헬기처럼 정지 비행을 하고, 앞뒤 혹은 좌우로도 날며, 심지어 뒤집힌 채로도 날 수 있다. 정지 비행은 조류에게 중요한 진화적 발견이었다. 그전까지 꽃꿀은 곤충이 독점했다. 꽃에 내려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는 너무 무거워서 불가능했기에, 정지 비행을 발명하기 전까지는 꿀에 입을 댈 수 없었다.
새의 비행을 설령 느린 영상을 통해 지켜본다고 해도, 위로 밀어 올리는 '헬기' 성분과 앞으로 미는 '비행기' 성분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 새는 양쪽의 비중을 시시각각 바꾼다. 이륙할 때에는 '헬기' 성분에 중점을 두고(뛰어오르기의 도움을 받아서), 수평 비행을 할 때는 '비행기' 성분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조류는 종에 따라서 어느 한쪽 성분에 치중하는 쪽으로 분화해 있다.
새는 날개를 내리칠 때와 올려칠 때 서로 다른 근육을 쓴다. 커다란 가슴 근육(큰가슴근)은 내리치는 힘을 낸다. 이 근육은 체중의 15~20퍼센트까지도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가브리엘과 페가수스를 놓고 이런저런 추측을 할 때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근육이 붙을 커다란 가슴뼈, 즉 용골 돌기가 필요하다. 올려치기 근육은 날개 위쪽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박쥐는 그렇다. 그러나 새는 그렇지 않다. 올려치기 근육인 부리윗근은 날개 아래에 있으며, '밧줄(힘줄)'과 '도르래'를 써서 날개를 어깨 위로 잡아당긴다. 또 날개의 각도를 비트는 근육도 있고, 손목과 팔꿈치 관절을 구부려서 날개 모양을 변형시키는 근육도 있다.
곤충은 척추동물보다 거의 2억 년 앞서 공중을 정복한 대가였다. 긴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익룡이 비행에 합류했다. 나는 척추동물이 비행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궁금하다. 어떤 생태적 지위(생활 방식이나 일자리)가 비어 있다면 어떤 동물이든 재빨리 그 빈자리를 차지하는 쪽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어서다.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고, 공중에서 먹이를 찾고, 장거리 이주를 하고, 공중에서 날고 있는 곤충을 낚아채는 등 2장에서 말한 온갖 일들을 할 수 있는 공중의 많은 빈 생태적 지위들을 척추동물들이 왜 훨씬 더 일찍 채우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4장에서 말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곤충은 몸집이 작은 덕분에 너무나 일찍 공중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항공기는 안정성과 기동성 사이의 트레이드오프에 대처해야 한다. 위대한 진화학자이자 유전학자인 존 메이너스 스미스John Maynard Smith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항공기 설계사로 일하다가 전후에 대학으로 돌아와서 ('항공기가 시끄럽고 구식이라고 판단했기에') 생물학자가 되었다. 그는 인간이 만든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새 같은 살아 있는 비행자에게도 트레이드오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주 안정적인 항공기는 알아서 잘 날거나, 적어도 경험이 적은 조종사도 몰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정성은 기동성과 트레이드오프를 해야 한다. 안정적인 비행기는 전투기로는 적합하지 않다. 전투기는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하고 이리저리 휙휙 비키는 등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기동성이 뛰어난 항공기는 불안정하다. 그러니 여기에서도 트레이드오프가 필요하다. 그런 비행기는 빠른 반사 능력을 갖춘 노련한 조종사만이 몰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날 노련한 조종사도 첨단 항공기에 탑재된 컴퓨터가 없이는 무력할 것이다. 조종사가 아무리 노련하다고 해도 전자 유도 시스템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새에게 기동성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새들이 종종 빽빽하게 떼지어 날곤 하기 때문이다. 서로 충돌하지 않으려면 재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 새들이 떼 지어 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아마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적 안전성 때문일 것이다. 포식자인 새는 대개 한 번에 먹이를 한 마리만 잡으며, 포식자들은 대체로 자기 영토를 지니고 있어서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러니 더 많이 모여 다닐수록, 그 지역의 매나 수리에게 잡힐 확률이 낮아진다. '수적 안전성' 효과는 무리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이 이점은 물고기 떼와 포유동물 떼에도 적용된다. 그런 집단은 수십만 마리에 이를 만치 아주 클 수도 있으며, 그렇게 몰려다니면 서로 충돌할 확률이 분명히 높아진다.
겨울에 찌르레기는 수십만 마리씩 무리를 짓곤 하며, 서로 조화롭게 날면서 장관을 펼치곤 한다. 거대한 무리가 마치 한 마리인 양 조화를 이루어서 선회하고 올라가고 내리꽂고 방향을 돌린다. 무리의 가장자리를 뚜렷이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도 이런 착시 현상을 강화한다. 무리의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 떨어져 나가는 낙오자가 한 마리도 없는 듯하다. 이들은 공중에서 놀라운 군무를 펼치다가, 갑작스럽게 마치 요란한 폭우가 쏟아지는 양 우수수 내려와서 잠잘 준비를 한다.
지켜보는 이들은 지도자, 노련한 안무가가 따로 있지 않을까 상상하곤 하지만, 그런 개체는 없다. 각 개체는 동일하고 단순한 규칙 집합을 따를 뿐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개체들을 계속 주시하라는 것이다. 그 결과 조화로운 움직임이 출현한다. 이 움직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모사할 수 있는데, 컴퓨터 모델링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크레이그 레이놀즈Craig Reynolds의 선구적인 보이드Boid 모형을 시작으로, 이런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다음의 중요한 원칙을 채택해 왔다. 먼저 한 새의 모형을 프로그래밍한 뒤, 그 새가 이웃한 새들에게 어떻게 반응할지를 정하는 단순한 규칙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특정한 각도를 유지하라는 식이다. 그런 뒤 이 새를 수백 마리로 복사한다. 마지막으로 이 수백 마리를 모두 컴퓨터에 풀어놓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본다. 이 모형새들은 현실의 새들과 정확히 똑같이,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무리를 짓는다'. 여기서 레이놀즈와 그 후계자들이 '무리를 짓도록 프로그램을 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새 한 마리의 프로그램을 짰다. 모사한 새 한 마리를 많이 복사하여 풀어 놓자, 무리 짓기는 저절로 출현했다. 이 '창발emergence' 원리는 생물학 전반에 대단히 중요하다. 복잡한 기관과 행동은 많은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단순한 규칙을 따를 때 출현한다. 즉, 복잡성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출현한다. 이 주제는 흥미롭지만, 제대로 다룬다면 그 자체가 책 한 권이 될 것이다.
무리 짓기가 새에게 좋은 이유로 돌아가 보자. 아마 포식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 주된 이유겠지만, 또 한 가지 조금 더 미묘한 혜택도 있다. 이 혜택은 찌르레기 떼에게 만이 아니라 여행하는 많은 새들이 보이는 친숙한 V 자 대형에도 적용된다. 이런 대형을 이루는 각 새는 앞에 있는 새가 일으키는 후류를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 가장 좋은 위치는 대각선이다. 그래서 기러기, 황새 등 많은 새들은 V 자 대형을 이루어 난다. 물론 맨 앞에서 나는 새는 혜택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따오기는 힘든 맨 앞쪽에 교대로 선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자전거 경주를 하는 선수들도 같은 방법을 쓴다. 군용기들도 같은 방법으로 연료를 절약한다. 에어비스 항공기 제작사는 대형 여객기들이 편대 비행을 통해서 연료를 절약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무리 짓기의 또 한 가지 혜택은 먹이를 찾아내는 눈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개체의 시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리는 눈이 훨씬 많으며 그중 누군가는 자신이 못 본 좋은 먹이가 있는 곳을 발견할 수도 있다. 박새들은 누가 먹이를 먹는지 서로 지켜보며,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먹이를 찾아낸 것을 보면 따라서 비슷한 곳을 뒤지기까지 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드러났다.
양력을 얻는 문제의 다음 해결책은 무엇일까? 공기보다 가벼워지는 것이다.
공기보다 가벼워지기
비행기, 헬기, 글라이더, 벌, 나비, 제비, 독수리, 박쥐, 익룡은 모두 이른바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 기계다. 열기구와 비행선은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 기계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비행 기계는 공기보다 가벼운 수소나 헬륨 같은 기체를 이용하거나, 주변의 차가운 공기보다 가벼운, 뜨거운 공기를 이용해서 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라 주위에서 하강하는 더 무거운 공기에 의해 비행 기계가 밀려 올라가기 때문에 떠 있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 기계는 인간의 발명품뿐이다. 내가 아는 한 진정한 동물 열기구는 없다.
인류 기술의 역사를 보면,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 기구가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 기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등장했다. 인류의 첫 비행은 1783년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몽골피에 형제가 만든 열기구를 타고서였다. 조제프 미셸 몽골피에는 불 위에서 빨래를 말리던 중 신기한 일을 목격했다. 뜨거운 공기가 옷을 천장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조제프 미셸은 사업가 기질이 있는 형제인 자크 에티엔에게 열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공기보다 가벼운 기계의 이상적인 형태는 진공을 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진공보다 가벼운 것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공이 바깥의 기압에 짓눌리지 않게 막으려면, 강철 같은 것으로 아주 두껍고 튼튼한 통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조금 점잖게 말해서, 무게를 줄이려는 목적 달성에 실패할 것이다. 기구나 비행선이 날려면 가벼운 막 안에 지구의 공기를 이루는 질소-산소 혼합물보다 더 가벼운 기체를 채워야 한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이며, 초기 비행선은 메탄 같은 가벼운 기체들을 쓰거나, 수소 혹은 수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석탄 가스를 썼다. 안 좋은 방식이었다! 수소는 가연성이 크다. 즉,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 1937년에 일어난 거대한 힌덴부르크 비행선이 폭발하는 비극적인 사고를 기억하기에, 이제 비행선 설계자들은 두 번째로 가벼운 기체인 헬륨을 선호한다.
그런데 사람을 싣고 날려면 헬륨이 대량으로 필요한데, 헬륨은 비싸다. 파티 풍선을 불 때는 소량만 있으면 되지만. 헬륨은 가연성이 없으며, 상대적으로 무해하다. 또 파티에 흥을 붙어넣는 데에도 유용하다. 헬륨이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헬륨이 차 있는 공간은 공기가 차 있는 공간보다 소리가 거의 세 배나 빨리 전달되는 추가 효과가 있다. 이는 들이마신 헬륨이 허파에 찬다면, 미니 마우스 같은 소리를 낼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기를. 헬륨을 너무 깊이 들이마시거나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을 수 있다.
헬륨의 가격을 생각하면 당연하겠지만, 현재는 열기구가 훨씬 더 흔하다. 온난 상승 기류를 이야기할 때 말했듯이, 뜨거운 공기는 차가운 공기보다 가볍다. 버너로 열기구 안의 공기를 가열하는 편이 헬륨으로 기구 안을 채우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 조금 시끄럽긴 하다. 그래서 조용한 시골 위를 떠가는 낭만적인 여행의 분위기를 다소 망친다.
비행선과 달리 기구는 조종하기가 어렵다. 비행선은 밑에 선실을 매단 거대한 기구에 해당하며, 프로펠러를 써서 수펼으로 나아간다. 방향을 조종할 수 있다.
단순한 기구는 오로지 고도만 조절할 수 있다. 원하는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있는 고도까지 오르려고 시도할 수는 있다. 꽤 운에 맡기는 조종 방식이다. 수소나 헬륨 기구의 고도를 올리려면 미리 바구니에 담아 둔 바닥짐(모래 같은) 중 일부를 버린다. 열기구에서는 프로판 버너를 켜서 공기를 빠르게 가열한다. 고도를 낮추려면 밧줄을 당겨서 열기구 꼭대기에 있는 밸브를 열어 뜨거운 공기나 가스를 일부 빼낸다. 기구가 작은 무게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바닥짐을 조금만 밖으로 내버려도 쑥 올라간다. 이는 기구가 주변 공기와 평형을 이루는 에어로스탯aerostat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의 밀도는 낮아진다. 따라서 기구가 완벽하게 평형을 이루는 어떤 고도가 있을 것이다. 기구는 이 평형 고도보다 낮은 높이에 있으면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더 높은 곳에 있으면 내려올 것이다. 모래를 내버리면(또는 머너를 켜면) 기구가 '선호하는' 고도, 즉 평형 고도가 바뀌면서 원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또 기구 조종사는 단순하면서 영리한 장치를 써서 고도를 자동적으로 조절하기도 한다. 이 방법은 기구가 땅에 가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바구니 바깥으로 늘어뜨린 긴 밧줄, 이른바 '땅 끌림 밧줄trail rope'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밧줄의 무게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중요하다. 기구가 낮게 날 때면 밧줄의 대부분이 땅에 닿아 있기에, 밧줄의 무게는 가구의 총무게에서 빠진다. 기구가 더 높이 올라가면 땅 끌림 밧줄 중 더 많은 부분이 땅 위로 올라가고 그 무게 때문에 기구가 조금 가라앉는다. 이런 식으로 땅 끌림 밧줄은 자동적으로 기구의 높이를 조절한다. 나는 이 점이 놀랍다. 밧줄 하나는 아주 가벼워서 아무런 차이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는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 기계인 에어로스탯이 얼마나 민감한지를 잘 보여 준다.
무중력
많은 이들은 우주 비행사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지구의 중력이 닿지 않는 곳에 있기에 무중력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틀린 생각이다! 우주 정거장은 지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ㅡ 런던에서 더블린보다 더 가깝다 ㅡ 지구의 중력은 우주 정거장이 해수면에 있을 때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우주 정거장을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다. 우주 비행사는 체중계에 올라선다면 무게가 0으로 나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무중력이다. 우주 비행사와 체중계 모두 선실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므로 몸은 체중계에 아무런 압력도 가하지 못한다. 그래서 체중이 0으로 나온다.
우주 비행사와 체중계, 우주 정거장과 그 안의 모든 것이 떠 있는 이유는 자유 낙하를 하기 때문이다. 모두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세계를 돌면서 추락하고 있다. 중력은 계속 작용하면서, 그 모두를 지구의 중심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지구 주위를 고속으로 돌고 있다. 너무나 빠르게 돌기에, 계속 지구로 떨어지고 있으면서도 지구를 비껴가고 있다. 궤도에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다. 궤도에 있는 우주 정거장은 기구가 항공 역학적으로 균형 상태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유로 떠 있다. 기구는 주위에 있는 공기의 압력으로 지탱된다. 기구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반면에 궤도에 있는 우주 비행사들은 떨어진다. 끊임없이 떨어진다. 달은 떨어지고 있으며, 40억 년 넘게 떨어지는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 영구 궤도에서 떨어지고 있다.
공중 부유 생물
높은 대기 권역으로 올라가면 이른바 공중 부유 생물, 즉 공중 플랑크톤aeroplankton과 마주친다. 꽃가루, 홀씨, 바람에 날리는 씨, 요정파리, 거미줄이라는 작은 낙하산에 매달린 조그만 거미 등 많은 생물로 이루어진 혼합 집단이다. '기구 타기' 거미는 앞에서 이야기했으며, 그 밖에도 많은 작은 동물과 곰팡이 홀씨, 세균, 바이러스도 공중을 떠다닌다. 물론 '플랑크톤'이라는 이름은 바다에서 따온 것이다. 굽이치는 드넓은 초원처럼 물결치는 바다의 수면 근처에는 햇빛을 받아서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 녹조류와 세균이 풍부하다. 이들은 해양 먹이 사슬의 출발점이 된다. 플랑크톤을 이루고 있는 미세한 동물들은 이 조류를 먹고, 조금 더 큰 동물에게 먹힌다. 그렇게 먹이 사슬이 이어진다. 바다의 플랑크톤은 수직 이주vertical migration라는 행동을 한다. 밤에는 더 안전한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낮에는 모두가 의지하는 햇빛을 받으러 위로 올라온다.
바다의 플랑크톤과 달리 공중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조류와 남세균도 섞여 있긴 하지만 어떤 먹이 사슬을 지탱하는 주요 광합성 기반층이 아니다. 식물이 공중 플랑크톤의 일부가 되는 것은 꽃가루와 씨를 퍼뜨릴 때처럼, 공기를 퍼뜨리기 위한 매체로 삼기 때문이다. 씨를 멀리, 넓게 퍼뜨리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궁금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더 미묘한 이유도 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수학 이론이 관여하는데, 식물뿐 아니라 동물에도 적용된다. 수학적으로 세세하게 따지는 대신에, 내가 으레 해 왔듯이 수학 기호를 쓰지 않은 채 말로만 수학 이론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해보자.
식물이나 동물이 가능한 최상의 장소에서 살고 있다면, 자식도 같은 곳에서 자라게 하는 편이 분명히 유리해 보일 것이다. 가능한 최상의 장소에서 삶을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자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그 수학 이론은 적어도 자식 중 일부를 멀리 떠나보내는 조치를 취하는 동물(또는 식물)이 자식을 모두 부모 옆집에 살게하는 경쟁자보다 장기적으로는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린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설령 '부모 옆집'이 (현재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고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 평균적으로 더 좋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렇다. 홍수나 산불 같은 재앙이 때때로 일어나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을 파괴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재앙은 드물게 일어나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 피해를 입을 확률이 딱히 다른 곳보다 더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가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어떤 특정한 곳의 역사를 죽 돌이켜 보면, 그곳에 격변이 일어났던 시기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진화를 생각할 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즉 기나긴 세대에 걸쳐 이어진 조상들을 되짚어 올라가는 것이 유용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전적 사자의서 The Genetic Book of the Dead」 를 쓸 계획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모든 생물은 성공한 조상들로 끊김 없이 이어진 계통의 최근 후손이다. 정의에 따르면 그 조상들은 성공했다. 조상이 될 만큼 오래 생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상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다윈주의에서 말하는 성공의 정의다. 나는 식물이 씨를 그냥 부모 식물 밑으로 떨구는 대신에 멀리 넓게 퍼뜨릴 필요가 있는 이유를 설명할 때 이런 사고방식을 이용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동물이 적어도 일부 자식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레이프 에이릭손처럼 미지의 땅에서 행운을 찾도록 떠나보낼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한 동물(또는 식물)은 부모와 같은 곳에서 살 수도 있지만, 수십 대 이전의 조상과 같은 곳에 살지는 않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먼 미지의 땅에서 행운을 찾으려고 부모의 안식처를 떠난 덕분에 성공을 거둔 조상이 적어도 일부 나타날 것이다. 식물은 씨를 바람에 실려 보내는 것이 바로 '행운을 찾기를 빌며 떠나보낸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날려 보낸 씨의 대부분은 돌 위에 떨어져서 죽고 조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는 모든 생물은 자기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삶을 시작한 덕분에 산불, 지진, 화산, 홍수 등 부모가 살던 고향을 예기치 않게 쑥대밭으로 만든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조상들을 적어도 일부 찾을 수 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식물이 씨를 그냥 주위에 떨구는 쉬운 길을 택하는 대신에 멀리까지 퍼뜨리고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이 때문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공중 부유 생물이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빌 해밀턴은 여전히 의심스러우면서 매우 터무니없게 들리기까지 하는 대담한 주장들도 내놓았다. 공중 플랑크톤에 관한 놀라운 주장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높은 대기에 있는 세균과 단세포 조류 같은 미생물이 비구름을 형성하는 씨앗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들이 멀리 떠갔다가 비가 되어 내리면 새로운 장소에서 새 생명을 시작하는 혜택이 있기에 그렇게 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검증하기가 어려운 개념이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과학자가 많지 않다고 말하는 편이 공정하겠다. 나는 내치지 않겠다. 특히 내가 오래 전에 (같은 제목의 책에서)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이라고 부른 것의 아주 탁월한 사례라고 볼 수 있어서다. 빌은 시대를 훨씬 앞서갔고, 당대에는 으레 무시되곤 했던 그의 개념이 옳은 곳으로 밝혀진 사례도 많았다.
식물의 '날개'
파리지옥이나 민감한 식물인 미모사 같은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식물은 근육에 상응하는 것이 없다.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식물은 씨를 퍼뜨리고, 같은 종의 개체들에게 꽃가루를 옮겨야 한다. 식물이 그 일들을 하기 위해 쓰는 주된 매체는 공기다. 식물은 공중을 날지 못하는 대신 다양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비행에 상응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따로 장으로 다룰 만하다.
엉겅퀴와 민들레 등 많은 식물의 씨는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 씨들은 앞서 살펴본 비행 원리 중 몇 가지를 이용한다. 민들레나 엉겅퀴의 씨는 작으며, 표면적을 크게 넓히는 낙하산과 같은 작은 깃털, 즉 갓털 덕분에 아주 멀리까지 떠갈 수 있다. 단풍나무 씨는 더 크다. 그래서 여기에도 트레이드오프가 있다. 민들레 씨처럼 아주 작고 가벼운 씨는 영양소가 부족하다. 씨가 더 크면 영양소를 그만큼 많이 지니고 있어서 삶을 시작할 때 유리할 텐데 그럴 수가 없다. 단풍나무 씨는 다른 방식으로 타협을 이루었다. 씨가 덜 작은 대신에, 씨를 더 적게 맺는다. 영양소가 담긴 씨를 빽빽하게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단풍나무 씨는 운반하는 날개도 크지만, 그리 멀리까지 가지는 못한다. 이 날개는 사실상 곤충의 날개와 거의 똑같아 보인다. 물론 날개를 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이 날개는 바람에 실려 날아가 작은 장난감 헬기처럼 빙빙 돌면서 하강한다.
많은 식물은 새의 날개(그리고 포유동물의 다리)를 빌려서 씨를 멀리까지 운반한다. 우엉의 씨에는 찍찍이처럼 작은 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동물의 털이나 깃털에 달라붙어서 다른 곳으로 운반된다. 맛있는 열매는 먹히도록 고안되어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먹는 동물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씨는 창자를 통과하여 충분한 비료와 함께 배설되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러나 열매를 먹게 될 동물들이 식물에게 모두 똑같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는 날개가 있기에 더 멀리까지 날아가서 배설을 할 가능서이 높으며, 따라서 식물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벨라도나 열매가 대다수의 포유동물에게는 해롭지만, 새는 먹을 수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일 수도 있다.
꽃가루도 퍼질 필요가 있다. 이유는? 근친 교배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sex이 정확히 왜 필요한지는 과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심하다. 왜 대다수의 동물과 식물은 암수끼리 유전자를 섞는 것일까? 왜 진딧물과 대벌레 암컷처럼 하지 않는 것일까? 즉, 성가시게 수컷과 어울리거나 짝짓기를 할 필요 없이, 그냥 홀로 자신의 사본을 만드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독자는 답이 명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고 장담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강력한 이유라는 것은 분명하다. 거의 모든 동식물은 비용과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데도, 짝짓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가 수정을 하면, 암수가 있는 목적에 어긋난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암컷 부위와 수컷 부위를 다 지닌 암수한그루까지 포함하여 식물이 꽃가루를 공중으로 날려서 다른 개체로 옮기려고 애를 쓰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씨처럼 꽃가루도 날 필요가 있다.
꽃가루를 날게 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냥 바람에 흩날리게 하는 것이다. 꽃가루는 아주 작기에, 4장에서 말했듯이 산들바람에도 뜬다. 그러나 이 방법은 낭비가 조금 심하다.
바람에 날린 꽃가루가 적절한 암컷 부위, 즉 같은 종에 속한 다른 개체의 암술머리에 닿으려면 극도로 운이 좋아야 한다. 식물은 그 낮은 확률을 보완하기 위해서 수백만 개의 꽃가루를 마치 구름처럼 확 흩날린다. 많은 식물이 그렇게 하며, 이 방식은 꽤 잘 먹힌다.
그러나 낭비를 덜 하는 방식도 있다. 동밀한 문제의 다른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곧바로 독자의 상상 속에 떠오르는 개념이 있을 법도 하다. 식물은 꽃가루를 옮길 작은 비행기를 개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날개 달린 소형 꽃마차 같은 것 말이다. 그 꽃마차에는 같은 종의 다른 개체를 검출할 감각 기관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날개를 조종하고 비행하는 꽃가루 운반체를 알맞은 표적으로 인도할 작은 뇌와 신경계에 해당하는 것도. 음, 그리 나쁜 생각이 아니며, 작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공중에는 이미 작은 비행 장치들이 가득하다. 벌과 나비가 그렇다. 박쥐도 그렇다. 벌새도 그렇다. 그들은 이미 근육으로 추진되고, 뇌로 제어되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날개를 지니고, 표적을 찾을 수 있는 감각기관을 갖추고 있다. 식물은 그저 그들을 이용할 방법, 즉 곤충을 꾀어서 꽃가루를 집게 한 뒤 필요한 곳으로 옮기게 할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아마 '이용'은 잘못된 단어일 것이다. 양쪽이 다 혜택을 보는 쪽으로 협력 관계를 맺으면 안 될까? 곤충에게 봉사의 대가를 어떻게 지불할까? 그들에게 비행 연료를 지불하면 된다. 바로 꿀이다. 물론 식물은 벌과 마주 앉아서 협살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꽃가루를 옮겨 주면 꿀을 줄게. 여기 서명해." 그게 아니라 다윈 자연 선택이 꿀을 만드는 유전적 성향을 지니게 된 식물을 선호함으로써 일이 진행된다. 꿀을 만드는 유전자는 꿀에 이끌려서 꽃을 찾은 벌을 통해 운반된 그 식물의 꽃가루를 통해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꿀은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을 덧붙여야겠다. 꽃은 자신이 고용한 날개에 후한 대가를 지불한다.
곤충은 의도를 갖고 꽃가루를 집어 드는 것이 아니다. 벌이 꿀을 빨 때 꽃가루가 몸에 달라붙는 것이다. 벌이 꿀을 더 먹기 위해 다른 꽃을 들르면 그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달라붙는다. 물론 벌과 나비만이 아니다. 벌새도 꿀을 좋아하며, 벌새의 구대륙판인 태양새도 그렇다. 딱정벌레와 박쥐는 몇몇 식물의 꽃가루 매개자다. 날개를 지닌 동물은 모두 식물에게 날개를 빌려줄 가능성이 높다.
벌과 나비, 벌새 같은 동물들은 어떻게 꿀을 찾는 것일까? 자연 선택은 광고하는 식물을 선호한다. "여기 꿀이 있어. 와서 먹어." 꽃은 어느 정도는 향기로 유혹을 한다. 장미와 백합처럼 우리에게까지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향기를 풍기는 꽃도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꽃들도 많다. 파리를 꾀는 쪽으로 진화한 꽃은 썩은 고기 같은 냄새를 풍긴다.
박쥐는 날개가 있으며 일부 박쥐는 꿀을 좋아한다. 따라서 밤에 꽃가루를 운반해 줄 박쥐 날개를 고용하는 쪽으로 진화한 식물이 있는 것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박쥐는 빛이 아니라 음파를 써서 대상을 찾으므로, 눈이 아니라 귀에 호소하는 고아고판에 해당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쿠바 우림에 사는 덩굴 식물인 마르크그라비아 에베니아는 잎이 접시 반사판 같은 모양이다. 이 접시 안테나는 여러 방향에서 오는 메아리를 반사하여 비추는 강력한 등대 역할을 한다. 메아리를 세계에 사는 박쥐에게 접시 모양의 잎은 환한 네온사인처럼 '빛날' 것이다.
흥미롭게도 꽃과 벌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가까이 있을 때 벌을 표적으로 인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기장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있다. 정전기력이 수술에 있는 꽃가루를 벌의 몸에 달라붙게 하며, 벌의 몸에 붙은 꽃가루를 암술로 밀어낸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나 꽃이 꽃가루 매개자를 꾀는 주된 방식은 눈을 통하는 것이다. 곤충은 색각이 뛰어나다. 새도 마찬가지다. 둘 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범위의 색깔인 자외선도 볼 수 있다는 점을 꽃은 이용한다. 많은 꽃은 자외선에서만 보이는 띠나 반점 무늬가 있다. 곤충은 빨간색을 볼 수 없지만, 새는 볼 수 있다. 따라서 새빨간 야생화를 본다면, 아마 그 꽃이 새를 꾀려고 한다고 추측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야생화로 가득한 풀밭은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피커딜리 서커스나 타임스 스퀘어나 다름없다. 화려한 색깔의 꽃잎은 풀밭의 네온사인이다. 정원사는 꽃의 색깔과 향기를 증진시켜 왔는데, 마치 자신이 거대한 벌인 양 선택 행위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벌, 나비, 벌새를 고용함으로써 식물은 꽃가루를 바람에 흩날리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표적으로 옮긴다. 벌은 꽃가루를 잔뜩 뒤집어쓴채로 한 꽃에서 나와 다른 꽃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두 번째로 찾은 꽃이 같은 종이 아닐 수도 있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꽃가루가 확실하게 같은 종의 꽃으로 옮겨지도록 할 방법이 없을까? 곤충의 '문란함'을 줄이고 '꽃 정절'을 지키도록 할 방법이 없을까? 있다. 꽃은 다양한 방법으로 색깔을 이용한다. 한 종 내에서 꽃들은 대부분 같은 색깔을 띤다. 한 꽃을 막 들른 곤충은 같은 색깔의 꽃을 또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꽃가루가 엉뚱한 종의 꽃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조금 줄어든다. 그러나 조금 줄어들 뿐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긴 통의 바닥에 꿀을 쟁여 놓는 꽃들이 있다. 이 꿀은 혀가 아주 긴 곤충만이 먹을 수 있다. 또는 부리가 아주 긴 벌새만이 먹을 수 있다. 남아메리카의 칼부리벌새는 몸보다 부리가 더 길다. 어색할 만치 너무 길어서 부리로 몸에 있는 대부분의 깃털을 다듬을 수조차 없다. 그러니 꽤 불편할 것이 틀림없다. 아마 불편한 차원을 넘어설 것이다. 5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새는 아주 많은 시간을 깃털을 다듬으면서 보낸다. 이는 깃털 다듬기가 생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날개 깃털을 다듬을 수 없는 새는 나는 데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벌새가 그렇게 긴 부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그 진화 압력이 틀림없이 유달리 강했음을 뜻한다. 이 놀라운 칼부리벌새는 시계꽃 종류인 파시플로라 믹스타라는 꽃의 유달리 긴 꿀통과 공진화한 듯하다. 광고하는 듯한 분홍색 꽃잎들의 한가운데에 꿀이 든 통의 입구가 있다. 이 통은 아주 길어서 칼부리벌새만이 그 끝에 고인 꿀을 먹을 수 있다. 따라서 꽃은 칼부리벌새만 들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고(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칼부리벌새가 같은 종의 다른 꽃으로 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새와 꽃은 서로에게 충실한 협력자다. 따라서 꽃가루가 다른 종의 꽃으로 운반되어 낭비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부 꽃, 특히 난초는 꽃가루를 옮겨 줄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까지 쓴다. 진짜로 유혹한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꿀벌 난초는 벌처럼 보이며, 종마다 다른 종의 벌을 닮은 모습이다. 수벌은 속아서 이 꽃과 짝짓기를 시도한다. 이 헛된 시도를 하는 동안 꽃가루가 벌의 몸에 잔뜩 달라붙으며, 이후에 벌이 다른 꽃으로 가서 같은 시도를 함으로써 꽃가루를 옮긴다. 난초는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페로몬도 흉내 낸다. 페로몬은 곤충 암컷이 짝짓기를 하자고 수컷을 꾈 때 쓰는 강한 냄새를 풍기는 화학 물질이다. 파리를 흉내 내는 난초도 있다. 또 다양한 말벌을 흉내 내는 난초들도 있다. 곤충을 흉내 내는 난초는 꿀을 만들지 않는다. 꽃가루 매개자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다른 꽃들과 달리, 곤충을 유혹하는 이런 난초들은 곤충을 속여서 공짜로 서비스를 받는다.
진화한 비행 기계와 설계한 비행 기계의 차이
이 책에서 우리는 이륙하여 하늘에 떠 있는, 즉 중력에 맞서는 방법을 약 여섯 가지 (독자가 어떻게 세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살펴보았다. 각 장마다 나는 가증한 한 인간이 설계한 비행 기계와 그에 상응하는 동물 비행자를 비교했다. 그러나 이륙에 능숙해지기까지의 과정은 양쪽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믈은 다음 세대로 갈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식으로, 수백만 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과정을 거쳐서 비행 기계가 되었다. 인간은 제도판에 점점 더 개선된 설계도를 그림으로써 더욱더 나은 비행 기계를 만들었으며, 이 과정은 수백만 년이 아니라 겨우 수 년 또는 수십 년만에 이루어졌다. 양쪽의 최종 산물은 비슷할 때가 많다(해결해야 할 문제가 동일하므로, 즉 동일한 물리학이므로 놀랄 일은 아니다). 양쪽이 너무나 비슷하기에, 내가 양쪽이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출현했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그 실수를 바로잡기로 하자.
비행 기계가 실속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 등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면 좋을까?" 인간이 만든 항공기라면, 설계공학자들은 정말로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문제를 간파한다. 날개 스탯 등 그 문제의 가능한 해결책들을 상상한다. 착상한 것들을 제도판에 스케치하고, 아마 칠판이나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띄운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의견을 모으기도 할 것이다. 시제품이나 축소 모형을 만들어서 풍동 실험도 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해결책이 도출되면, 이윽고 제품 생산에 나설 것이다. 이 연구 개발 과정 전체는 기껏해야 몇 년이면 끝난다.
동물 쪽은 상황이 다르며, 일이 훨씬 느리게 진행된다. 연구 개발 과정 ㅡ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ㅡ 은 수백만 년 동안 기나긴 세대를 거치면서 이루어진다. 거기에는 어떤 생각도, 탁월한 착상도, 깊이 생각한 끝에 나오는 독창성도, 창의적인 발명도 개입되지 않는다. 제도판도, 의견을 모으는 공학자도, 시제품이나 축소 모형의 풍동 실험도 없다. 그저 집단의 일부 개체가 무작위적 유전적 행운(유전자의 돌연변이와 성적 재조합)으로 평균보다 비행을 조금 더 잘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아마 한 돌연변이 유전자는 매의 속도를 조금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유전자를 지닌 매는 먹이를 조금 더 잘 잡을 가능성이 있다. 돌연변이 찌르레기는 포식자를 홱 피하는 것과 먹히는 것의 차이, 즉 생사의 차이를 낳는 기동력이 같은 무리의 경쟁자들보다 조금 더 뛰어날 수 있다. 한 찌르레기가 '느린 비행 유전자' 때문에 잡아먹힌다면, 그 유전자도 잡아먹히고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또는 날개 모양을 미묘하게 다르게 함으로써, 다른 개체들보다 실속이 일어난 가능성이 조금 낮은 유전형도 남을 수 있다. 그런 개체는 살아남아서 번식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지며, 다른 개체들보다 좀 더 나은 비행자로 만들어 주는 유전자를 후대로 넘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느리게, 서서히, 세대를 거치면서, 비행을 잘하는 유전자는 집단 내에서 점점 더 늘어난다. 비행을 못하는 유전자는 그 유전자를 지닌 개체들이 죽거나 번식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기에, 수가 계속 줄어든다.
집단의 다른 많은 유전자에서도 줄곧 같은 일이 일어나며, 각각은 나름의 방식으로 비행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수많은 세대 동안 수백만 년에 걸쳐서 집단에 좋은 비행 유전자들이 쌓인 뒤에,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우리는 아주 뛰어난 비행자 집단을 본다. 실속 방지 장치를 포함하여 온갖 미묘한 부분까지 갖추고, 소용돌이와 상승 기류 등 온갖 세세한 부분들에 맞추어서 날개 모양을 조정하는 민감한 근육 신경 제어 장치를 포함하고, 조금 덜 지치면서 더 효율적인 날개 근육을 지닌 비행자들이다. 날개와 꼬리는 인간 공학자가 제도판에서 설계를 하고 풍동 실험을 통해 완성한 듯, 모든 세세한 측면에 이르기까지 알맞은 모양과 크기를 지니도록 진화했다.
인간의 설계와 진화적 설계의 최종 산물은 양쪽 다 아주 좋으며, 매우 잘 날기에 우리는 두 개선 과정이 얼마나 다른지를 그냥 편리하게 잊곤 한다. 이 망각은 우리가 쓰는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독자는 이 책에서 내가 일종의 축약 언어를 써 왔다는 점을 눈치챘을 수도 있다. 나는 새와 박쥐, 익룡과 곤충이 우리 인간 공학자들이 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비행의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고 썼다. 마치 다윈 자연 선택이 아니라 새 자신이 문제를 푼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축약 언어는 정말 짧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편리하다. 매번 자연 선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상세리 설명하는 것보다 더 짧게 끝낼 수 있다. 또 독자와 내가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어떤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고 그 문제의 해답을 상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편리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화와 인간의 설계 사이의 유사성이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우리는 공학자의 새로운 착상, 이를테면 실속 방지 장치에 대한 착상이 돌연변이와 흡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착상 돌연변이'는 자연 선택 같은 것을 받게 된다.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창안자가 금방 깨달으면, 그 착상은 곧바로 죽을 수도 있다. 또는 시제품 단계까지 갔다가 예비 검사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풍동 실험을 통해 실패임이 드러나서 거부당해 죽을 수도 있다. 풍동 실험에서 실패한다면 비교적 무해하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동물 비행자의 자연 선택은 더 잔혹하다. 실패는 말 그대로 죽음을 의미한다. 반드시 치명적인 추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결함 있는 설계는 포식자를 피하는 속도가 더 느릴 것이다. 또는 날면서 먹이를 잡는 능력이 조금 떨어짐으로써, 굶어 죽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진화는 풍동 실험을 통한 시행착오 같은 죽음의 온건한 대체물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실패는 진정으로 실패를 의미한다. 죽음이나 적어도 번식 실패를 뜻한다.
잠깐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많은 종의 새들이 어릴 때 비행 연습을 한다는 것이 방금 떠올랐다. 일종의 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새들은 충분히 연습을 한 뒤에야 비로소 진지하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풍동 실험의 조류판이라고 할 수 있다. 치명적이지 않은 시행착오다. 이런 연습은 날개 근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아마 어린 새의 신체 조정 능력과 기술도 향상시킬 것이다. 많은 조류 종의 새끼는 연습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이 목격되곤 한다.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부산하게 위아래로 뜀뛰기를 한다. 비행 근육을 키우는 동시에 비행 기술을 갈고닦는 것이 틀림없다.
여기 진화적 설계와 공학적 설계의 또 다른 차이가 있다(관점에 따라서는 같은 차이의 또 다른 측면일 수도 있다). 공학자는 새로운 설계를 생각할 때, 제도판에 제도지를 깔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 프랭크 휘틀(제트 엔진의 발명자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한 명)은 기존 프로펠러 엔진을 토대로 조금씩, 하나하나, 이렇게 저렇게 변형해서 제트 엔진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휘틀이 프로펠러 엔진을 이리저리 하나하나 뚝딱뚝딱 변형하는 식으로 만들었다면, 최초의 제트 엔진이 땜질 투성이에 얼마나 볼품없었을지 상상해 보라.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착상을 떠올리면서 새 제도지에 처음부터 새로 그리는 쪽을 택했다. 진화는 그런 식이 아니다. 진화는 기존의 설계를 조금씩 하나하나 변형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변형의 모든 단계에서, 각 생물은 적어도 번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한편, 진화가 언제나 동일한 목적을 지닌 기존 기관을 땜질해 쓰는 것은 아니다. 우리 비유를 계속 이어가자면, 프랭크 휘틀의 진화 판본은 프로펠러 엔진을 하나하나 뜯어고쳐서 써야 하는 운명에 처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날개의 불룩한 부분 같은 기존 항공기의 어떤 부품을 변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는 인간 공학자처럼 새 제도지를 깔고서 아예 새로 시작할 수는 없다. 살아 숨 쉬는 기존 동물의 어떤 부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뒤의 모든 중간 단계들도 적어도 번식할 만큼 오래 생존하는, 살아 숨 쉬는 동물이어야 한다. 한 예로 우리는 잠시 뒤에 곤충의 날개가 원시적인 날개가 아니라 햇볕을 쬐기 위한 변형된 태양 전지판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살펴볼 것이다.
인간의 기술에서 혁신이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서로 다른 식으로 설명하는 두 학파가 있다. 이렇게 말하니, 현대 진화론에도 두 학파가 있다는 것이 생간난다. 인류의 기술 쪽에서는 '고독한 천재 이론lone genius theory'이 있다. 그리고 내 친구의 매트 리들리가 <혁신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에서 옹호한 '점진적 진화gradual evolution' 이론이 있다. 고독한 천재 이론은 프랭크 휘틀이 갑자기 등장하기 전까지 누구도 제트 추진이라는 개념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앞에서 그가 제트 엔진의 발명가로 거론되는 몇 명 중 하나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는 점을 눈치챘는지? 휘틀은 1930년에 그 개념의 특허를 받았고, 1937년에 처음으로 작동하는 엔진(비행기에 장착된 것이 아니라)을 내놓았다. 그런데 독일 기술자 한스 폰 오하인도 1936년에 특허를 출원했고, 오하인 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제트기인 하인켈 He 178기를 실제로 날리는 데 성공했다. 휘틀의 엔진을 장착한 글로스터 E38/39기는 그로부터 2년 뒤인 1939년에 하늘을 날았다. 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만났는데, 오하인이 휘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 정부가 더 일찍 당신을 지원했다면, 영국 본토 항공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오하인이 휘틀의 특허를 보았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런데 사실 1921년에 프랑스 기술자 막심 기욤도 제트 엔진의 특허를 받은 바 있다(휘틀은 전혀 몰랐다). 아무튼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휘틀도 오하인도, 심지어 기욤조차도 그 개념을 맨 처음 떠올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고독한 천재 이론은 틀렸다. 많든 적든 제트 엔진을 닮은 발명들의 역사는 길다. 로켓은 10세기 중국에서 무기로 쓰였다. 1633년 오토만 제국에서는 심지어 사람이 로켓을 타고 날기도 했다. 잠깐이긴 했지만. 라가리 하산 첼레비는 화약으로 추진되는 '7날개'로 로켓에 매달려서 톱카피 궁전에서 보스포루스 해협 위로 날아갔다고 한다. 날아가던 도중에 그는 로켓에서 바다로 떨어졌고, 헤엄쳐서 해안으로 올라왔다. 술탄은 그의 대담한 성취를 축하하면서 황금을 하사했다.
리들리는 이런 사례들을 잇달아 제시한다. 증기 기관, 터빈, 백신 접종, 항생제, 수세식 화장실, 전구, 컴퓨터 등등. 이 모든 사례들은 고독한 천재 이론이 틀렸음을 폭로한다. 미국인에게 전구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이라고 답할 것이다. 영국인에게 묻는다면 조지프 스완Joseph Swan이라고 답한다. 리들리는 세계 각국에서 전구를 발명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스물한 명이라고 지적한다. 에디슨은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사람들이 실제로 상점에서 살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는 영예를 얻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전구는 어느 한 천재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다. 물론 유전적으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면서다. 한 단계, 한 단계 힘든 노력을 거치면서 서서히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물론 진화는 멈추지 않았다. 에디슨의 시대 이후로도 계속 개선되어 왔으며, 지금 우리는 모든 면에서 더 뛰어난 LED 전구를 쓰고 있다. 기술은 단계적으로 진화한다. 아마 디지털 컴퓨터만큼 극적인 발전을 보여 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올해의 모델이 제 역할을 하기도 전에 내년에 더 나은 (그리고 더 저렴한) 모델이 나올 만치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비행기는 누가 발명했을까? 라이트 형제다. 그렇다, 그들이 동력 추진을 써서 인간 조종사를 처음으로 하늘에 띄웠을 수 있다. 그러나 글라이더는 훨씬 더 이전에 나왔다. 라이트 형제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글라이더로 다양한 실험을 했기에, 글라이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글라이더를 뚝딱뚝딱 이렇게 저렇게 손본 뒤, 프로펠러와 내연 기관을 붙여 이륙시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요약하면 전문 지식을 쌓으면서 인내심을 갖고 뚝딱거린 기나긴 과정이 생략된다. 그들은 풍동을 만들어서 실험을 했고, 그럼으로써 세세한 부분을 완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1903년 12월 17일 오빌 라이트의 첫 비행은 겨우 12초 동안 지속되었고, 시속 11킬로미터로 37미터를 날아싿. 그렇다고 해서 라이트 형제의 영예가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엄청난 성취였다(그리고 그들이 해낼 것을 믿지 못하고 코웃음 치던 회의주의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독한 천재 이론은 이 사례에 들어맞지 않는다. 비행기는 글라이더를 토대로 서서히 진화했으며, 꾸준히 진화한 끝에 초기의 쌍엽기를 거쳐서 날렵하고 빠르고 우아한 현대 여객기로 이어졌다.
나는 돌연변이 매와 돌연변이 찌르레기가 더 잘 날았기에 생존에 보다 유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개선이 이루어지려면 알맞은 돌연변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알맞은 '고독한 천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아니다. 인류의 혁신이 반드시 고독한 천재를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진화에서 새로운 '착상'의 궁극적인 원천이 돌연변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성 생식은 유전자들을 뒤섞어서 많은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며, 그것들은 자연 선택의 대상이 된다. 공학자의 착상처럼, 유전자도 뒤섞이고 재조합된 뒤에 검사를 받는다. 탁월한 돌연변이(즉, 고독한 천재)가 출연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반쪽짜리 날개는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압도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여전히 진화를 믿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새와 박쥐의 날개가 비행기의 날개처럼 의도를 가지고 일종의 어떤 초자연적인 공학자가 설계한 창의적인 산물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렇게 믿는 이들을 창조론자 라고 한다. 나름 좋은 대학교에서는 그들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조금 낮은 곳에서 그런 이들이 많이 있다.
창조론자들이 선호하는 주장 중 하나는 내가 앞장에서 언급한 사항에 초점을 맞춘다. 진화가 어떤 문제에서 최선의 해결책으로 곧바로 나아가는 대신에, 이미 있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리저리 고치면서 서서히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날개의 경우에는, 창조론자들은 이 장의 제목으로 삼은 질문을 던지며 주장을 펼친다. "반쪽짜리 날개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그들은 완전히 발달한 날개는 아주 유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날개 달린 동물이 날개 없는 동물로부터 진화해야 했다면, 중간 단계들도 어떤 이점이 있었어야 할 것이다. 10분의 1, 4분의 1, 4분의 2, 4분의 3의 날개도 이점을 지녔을까? 반쪽짜리 날개를 지닌 조상은 날았다가 땅에 그냥 추락하지 않았을까? 설령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적어도 꼴사나워 보이지 않았을까? 진화가 이루어지려면, 제대로 된 날개에 도달하는 사다리의 모든 단계가 이전 단계보다 더 나아야 한다. 점진적인 개선의 비탈길을 이루어야 한다. 불완전한 날개를 지닌 모든 중간 단계의 동물들이 살아남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조금 더 불완전한 날개를 지닌 경쟁자들보다 잘 살아남았어야 한다. 창조론자들은 중간 단계의 동물들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점진적인 개선 같은 것은 이루어질 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반쪽짜리 날개를 어디에 써먹겠어?"
과학자들은 이 도전에 어떻게 답할까? 사실 유치할 만치 쉽다. 앞에서 다룬 낙하산과 활공을 떠올려보라. 날다람쥐와 그에 상응하는 호주의 유대류인 유대하늘다람쥐를 떠올려 보라.
네 다리와 꼬리 사이에 펼쳐지는 피부막을 낙하산으로 삼는 콜루고도 함께. 세계의 숲, 특히 동남아시아의 숲에는 이런 멋진 활공자가 훨씬 더 많이 산다. 날도마뱀은 날다람쥐처럼 피부로 된 비막이 있다. 하지만 네 다리를 쫙 뻗어서 비막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갈비뼈가 양옆으로 뻗어 나와서 좌우의 섬세한 피부막을 지탱한다. 진화가 새 제도지를 깔고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한다고 한 말을 기억하는지? 같은 숲에는 '날아 다니는' 뱀도 산다. 날뱀은 갈비뼈 사이에 펼쳐지는 날개 같은 것이 없다(그리고 모든 뱀이 그렇듯이 다리 자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갈비뼈를 양옆으로 내밀어서 몸 전체를 충분히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몸의 단면이 비행기의 날개 단면 같은 곡선을 이룸으로써, 낙하산 효과를 낸다. 아마 베르누이 원리의 도움도 조금 받을 듯 하다. 이들은 한 나무에서 30미터 떨어진 나무까지 활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날아가는 내내 천천히 하강하지만, 나름 조종을 한다. 이들은 땅이나 물에서 나아갈 때와 똑같은 물결 운동을 함으로써 공중을 헤엄쳐 나아가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 숲에는 활공하는 개구리도 산다. 이들의 막은 다리나 갈비뼈 사이가 아니라, 네 발의 쫙 펼쳐진 발가락 사이에 있다. 이런 활공자들은 모두 새나 박쥐처럼 제대로 날지는 못한다. 이들의 비행 표면은 완전히 진화한 날개가 아니다. 낙하산에 더 가깝다. 즉, 이들은 낙하 시간을 늘린다. 어떻게 이처럼 진화했을까?
이 모든 낙하산 하강 동물들은 숲에 산다. 숲 군집 전체를 먹여 살리는 잎에 햇빛이 닿는 높은 수관 쪽이 거주 지역이다. 다람쥐는 이 높은 공중 초원을 쪼르르 돌아다니다가, 이따금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건너뛴다. 다람쥐의 꼬리는 용도가 다양하다. 탁탁 튀겨서 다른 다람쥐에게 신호를 보내는 데에도 쓰인다. 나무에서 달리거나 뒬 때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내가 알기로, 다람쥐는 비가 올 때 꼬리를 우산으로 쓰기도 한다. 또 사막의 다람쥐는 꼬리를 햇빛 가리개로 쓴다. 그리고 6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꼬리의 복슬복슬한 표면은 공기를 받아, 꼬리가 없을 때보다 조금 더 멀리 뛸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사실이 왜 중요할까? 다람쥐가 도달하고자 한 나뭇가지에 조금 못 미친다면, 추락해서 심하게 다칠 수도 있다. 다람쥐는 꼬리 없이 도약할 수 있는 한계 거리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 거리가 얼마든 간에, 약간 복슬복슬한 꼬리는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뛸 수 있도록 해 준다. '조금'이 얼마나 될까? 단 몇 센티미터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복슬복슬한 꼬리를 지닌 개체에게 이점을 제공할 만큼은 될 것이다. 그리고 위쪽 수관의 어딘가에서 조금 더 복슬복슬한 꼬리를 지닌 다람쥐가 뛰어서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한계 거리는 보다 더 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좀 더 복슬복슬한 꼬리를 지닌 다람쥐는 더 멀리 뛸 수 있다. 숲에서 나뭇가지들 사이의 거리는 아주 다양하다. 그러니 현재 어떤 꼬리를 지닌 다람쥐가 얼마나 멀리 뛸 수 있든지 간에, 나무 위쪽 어딘가에서는 조금 더 복슬복슬하거나 조금 더 긴 꼬리를 지니고만 있다면, 다다를 수 있는 거리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조금 더 나은 꼬리를 지닌 다음 세대의 개체는 도중에 추락할 가능성이 적고 생존할 가능성이 더욱더 높으며, 그 나은 꼬리를 만드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능성도 높다.
이미 6장에서 살펴보았기에, 우리는 이 논리가 어디로 향할지 안다. 요점은 복슬복슬한 꼬리를 지니고 있으면 다 되고,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이 아니다. 크기와 복슬복슬함이 어느 정도이든 간에, 그 꼬리로는 도약했을 때 조금 못 미치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꼬리가 조금만 더 크거나 복슬복슬하다면 그 못 미치는 거리에 있는 나뭇가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개선은 매끄러운 비탈을 이룬다. 우리의 진화 논리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비탈이다.
복슬복슬한 꼬리는 한 쌍의 날개와 다르다. 날다람쥐나 콜루고의 비막 같은 낙하산도 아니다. 하지만 독자는 이 논리가 어떻게 이어질지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다람쥐는 겨드랑이 밑의 피부가 조금 헐겁다. 이 헐거운 피부는 체중을 그다지 늘리지 않으면서 다람쥐의 표면적을 조금 늘릴 것이다. 이 피부막은 복슬복슬한 꼬리처럼 작용하겠지만, 다람쥐가 추락하지 않고 뛸 수 있는 거리를 조금 늘리는 데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숲에 있는 나뭇가지들 사이의 거리는 일종의 연속 스펙트럼을 이룬다. 어떤 다람쥐가 얼마나 뛸 수 있든지 간에, 다른 다람쥐가 피부막의 표면적이 더 넓어서 그만큼 멀리 뛸 수 있는 덕분에 다다를 수 있는 가지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개선의 매끄러운 비탈이 시작되는 것을 본다. 우리의 진화 논리에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이 비탈의 끝에는 완전한 비막을 갖춘 날다람쥐나 유대하늘다람쥐, 콜루고가 있을 것이다.
'비탈의 끝'이라고? 거기에서 멈춰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날다람쥐와 콜루고는 낙하산을 펴고 활공할 때 다리를 움직여 활공 방향을 제어할 수 있다.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팔을 반복해서 더 격렬하게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날개 치는 운동이 될 때까지? 처음에 날갯짓은 하향 활공을 겨우 조금 연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어떻게 이 연장이 원하는 만큼 지속될 수 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서서히, 단계적으로다. 박쥐도 이런 식으로 출현했을 수 있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박쥐가 처음에 어떻게 이륙했는지를 알려 줄 유용한 화석은 없지만, 설득력 있는 비탈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콜루고의 비막은 대부분 주된 다리뼈와 꼬리 사이에 걸쳐 있다. 그러나 짧은 손가락 사이에도 뻗어 있다. 오리나 해달처럼 물에 사는 조류와 포유류는 흔히 발에 물갈퀴가 나있다. 사람도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조금 난 상태로 태어나는 아기가 가끔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배아 발생 때 나타나는 세포 자연사, 즉 '세포 예정사'라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배아를 포함하여 배아가 발달할 때, 넓게 펼쳐진 조각에서 사이사이가 깎여 나가면서 마치 조각되듯 손가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세포들은 면밀하게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죽어 나간다. 세포 예정사는 배아를 조각하는 데 쓰이는 비법 중 하나다. 모든 포유류는 자궁에 있을 때 손가락에 물갈퀴가 달려 있으며, 나중에 물갈퀴를 이루는 세포들이 죽어 사라진다. 수달처럼 헤엄치기 위해 물갈퀴가 필요한 수생 동물들은 예외다. 박쥐도 그렇다. 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금 말한 물갈퀴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들은 세포 자연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콜루고는 손가락이 짧다. 하지만 우리는 콜루고의 조상과 같은 어떤 동물이 진화할 때 물갈퀴가 달린 손가락이 서서히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면 이윽고 박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콜루고는 다른 어떤 포유 동물과도 유연관계가 가깝지 않은 동떨어진 집단이다. 그나마 그들과 가장 가까운 현생 집단은 영장류이며, 그다음이 박쥐다. 설령 그들이 박쥐의 친척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가 제시한 논리는 여전히 타당할 것이다. 박쥐의 조상에게 비막에 이어서 날개를 진화시키는 일은 어렵기는커녕 쉬웠을 것이다. 세포 자연사를 억제하고, 팔뼈보다 손가락뼈가 더 길어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 진행 과정을 추진하는 선택압은 아주 쉽게 재구성할 수 있다. 서서히, 비행 표면의 모양을 더 민감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물갈퀴 달린 손가락을 1센티미터씩 늘려, 비행 거리를 역시 1센티미터씩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런 뒤에 날갯짓을 통해서 제어와 비행 거리를 개선하면, 진정한 비행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척추동물이 어떻게 비행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는지를 놓고 두 가지 이론이 경쟁하고 있다는 말을 해야겠다. '하강trees down' 이론과 '이륙ground up' 이론이다. 지금까지는 '하강' 이론만 언급했다. 내가 이쪽을 선호한다고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두 이론이 서로 다른 비행 동물에 들어맞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박쥐는 '하강' 이론, 새는 '이륙' 이론대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륙' 이론도 살펴보기로 하자. 실제로 조류는 이륙하라는 압박을 가장 강하게 받아 왔다.
새는 이미 깃털을 갖춘 채 뒷다리로 달리는 파충류로부터 진화했다. 새의 조상은 유명하고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 공룡이었다. 오늘날의 타조가 보여 주듯이, 두 다리로 달리는 동물은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네 발로 총총 걷는 포유동물과 달리, 우리는 뒷다리로 빠르게 달릴 때 팔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운동선수는 달릴 때 팔을 격렬하게 앞뒤로 흔든다. 가장 빨리 달리는 육상동물 중 하나인 타조는 균형을 잡기 위해, 특히 방향을 돌릴 때 '팔'(짤막한 날개라고 부를 수도 있다. 비행하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고, 날개임을 여전히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을 쓴다.
뒷다리로 빨리 달리는 파충류는 달리면서 바다의 날치처럼 틈틈이 뛰어오르곤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단열용으로 진화한 깃털은 다람쥐의 복슬복슬한 꼬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도약을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꼬리와 팔의 깃털은 발달하는 피막과 같은 식으로 도약 때 체공 시간을 늘렸을 것이다. 균형을 잡기 위해 펼친 팔은 이 점에서 특히 유용했을 것이고, 원시적인 날개로 발달했을 수도 있다. 아직 진정한 비행은 할 순 없었겠지만 도약 때 체공 시간은 늘렸을 것이다. 여기서 나뭇가지들 사이의 거리가 연속 스펙트럼을 이룬다고 한 것과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깃털로 덮인 팔이 없는 파충류가 아무리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해도, 깃털 달린 팔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공작과 꿩은 잘 날지 못한다. 대개 이륙하자마자 착륙한다. 공작의 비행은 도약 후 체공 시간을 조금 늘린 것과 다르지 않다. 쫓아오는 다랑어를 피해서 날치가 잠시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세대를 거칠수록 깃털이 난 팔은 표면적이 꾸준히 증가해, 도피하기 위해 도약했을 때 체공 시간이 꾸준히 늘어나다가 이윽고 막연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진정한 비행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먹이에서 포식자로 눈을 돌리면, '덮치는 포식자' 이론으로 이어진다. 이 개념에 따르면, 깃털 달린 공룡 중 한 종은 매복해서 먹이를 잡는 쪽으로 분화했다. 가파른 둑같이 잡기 유리한 곳에 숨어서 먹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덮쳤다. 깃털 달린 팔과 꼬리는 포식자를 잠시 공중에 머물게 해 주었다. 더 멀리에서 덮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날다람쥐의 사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점진적인 개선의 비탈이었다면, 이것은 덮치는 거리가 꾸준히 증가하는 비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륙' 달리기 이론의 또 다른 가능한 변이 형태가 있다. 곤충은 척추동물보다 훨씬 전에 비행을 발견했으며, 비행 곤충 무리는 진화하는 척추동물이 착취하기 좋은 풍부한 먹이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아마 빠르게 달리는 파충류는 그들을 잡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올랐을 것이다. 오늘날의 개처럼 덥석 물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고양이처럼 팔을 높이 치켜들어서 잡았을 수도 있다. 보통 집고양이는 공중으로 2미터까지 뛰어오를 수 있으며, 팔을 쭉 뻗어서 나는 새나 곤충을 잡을 수 있다. 표범 같은 커다란 고양이류도 같은 행동을 하며, 더 큰 새를 잡는다. 조상 파충류가 나는 곤충을 뒤쫓을 때도 비슷한 행동을 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날지 못하는 원시적인 '날개'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먼저 유명한 화석인 시조새를 살펴보자. 시조새는 여러 면에서 우리가 파충류 하면 으레 떠올리는 동물과 조류의 중간 형태였다. 현생 조류와 매우 비슷한 날개를 지니고 있었지만, 날개에 손가락이 튀어나와 있었다. 또한 조류와는 달리, 파충류처럼 이빨이 있었다. 현생 조류와 다르다고 말했지만, 고인이 된 스티븐 제이 굴드는 탁월한 자연사 저서인 <닭의 이빨과 말의 발가락Hen's Teeth and Horse's Toes> 에서 발생학자들이 닭의 배아에 이빨을 나게 하는 독창적인 실험에 성공한 사례를 기술했다. 그들은 수백만 년 동안 잃었던 조상의 능력을 실험실에서 재발견했다. 또 시조새는 뼈가 든 긴 파충류의 꼬리도 지니고 있었다. 이 꼬리는 날개와 더불어 중요한 비행 표면이자 안정 장치 역할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시조새의 조상이 (원래 단열을 위해 진화한) 깃털이 곤충을 잡는 데 유용하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포충망을 휘둘러서 나는 곤충을 잡는 것과 비슷한 용도로 팔의 깃털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깃털 포충망이 추가로 엉성한 비행 표면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아직 진짜 비행은 아니었지만, 깃털이 난 팔은 뛰어오른 파충류가 더 높이 나는 곤충에게 다다르는 데에, 그리고 곤충을 낚아채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을 수 있다. 비행 표면은 넓은 표면을 필요로 하며, 포충망도 그렇다. 곤충을 잡기 위해서 뛰어오를 때, 이 '포충망'은 엉성한 날개 역할을 했으며 도약 길이와 높이를 늘렸다. 곤충을 낚아챌 때 날개를 휘두르는 움직임은 날개를 치는 것과 조금 비슷해 보였을 것이고, 이런 움직임은 양력을 추가로 제공했을 수 있다. 서서히 팔은 날개의 기능을 하게 되면서 '포충망' 기능을 잃어 갔다. 이 이론에 따르면, 그렇게 새에게서 진정한 날갯짓 비행이 진화했다. 여기서 내가 '포충망' 이론과 다른 '이륙' 이론들이 '하강' 이론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본다는 말을 해야겠다.
하지만 일부 생물학자들이 선호하므로, 완벽함을 기하기 위해서 언급했다.
'이륙' 이론의 또 다른 판본은 '비탈 달려 올라가기' 이론이다. 예를 들어, 땅에 사는 동물들은 종종 포식자를 피해서 나무 위로 쪼르르 달려 올라가곤 한다. 곧바로 다람쥐가 떠오르겠지만, 조금 덜 능숙할 뿐 그렇게 하는 동물들은 많다. 모든 나무줄기가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죽어 쓰러진 나무나 부러진 굵은 가지는 비탈을 제공한다. 사실 숲의 나무들은 수평에서 수직에 이르기까지 각도의 연속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 이제 자신이 45도인 비탈을 달려 올라가려 한다고 상상해 보자. 깃털 난 팔을 휘두른다면 기어오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날개는 아니지만, 즉 공중을 활공할 만큼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기울어진 나무줄기를 올라갈 때 쳐대면 약간의 양력과 안정성이 추가됨으로써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개선의 비탈을 본다. 말 그대로, 또 비유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이 원시 날개가 45도 비탈을 오르기 위해 발달하고 있을 때, 그 개선은 자동적으로 50도 비탈을 오르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은 그런 식으로 죽 이루어졌을 것이다.
외향 충동: 비행을 넘어서
나는 내가 그랬듯 독자도 새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꾼 적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책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이런 궁금증이 인다. 독자는 언젠가 우리 고향 행성을 떠나서 화성까지 날가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니면 목성의 달로? 토성으로? 어릴 때 나는 그 꿈이 과학 소설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목성까지 가려면 몇 년이 걸린다. 수백 명의 공학자와 과학자가 대규모로 협력해야 하는 계획이다. 그들은 미리 궤도를 계산하고 다른 행성들의 중력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기 위해 복잡한 시간표를 짜야 한다. 화성까지 가는 데에도 몇 달이 걸린다. 그러나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무인 우주선은 이미 해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로켓을 화성으로 보내고 싶어 하는 것에 더해, 거기에 정착촌을 짓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는 나름의 진지한 이유가 있다.
11장에서 다룬 내용을 기억하는지? 그 장에서 우리는 동식물이 적어도 일부 자손을 운 좋게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멀리 보내려는 외향 충동을 진화시킨 이유를 설명하는 수학 이론을 살펴보았다. 설령 부모 자신이 가능한 최고의 장소에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식을 멀리 보내는 쪽이 유리하다는 이론이었다. 기억하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세상 어디든 간에 빠르든 늦든 불이나 홍수, 지진 같은 재앙이 닥치게 마련이므로,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정반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가 인류가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반면 화성은 살기에 아주 안 좋은 곳이다. 그러나 언젠가 지구가 극심한 격변에 빠지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다른 곳에 개척자들의 정착지를 이루는 것밖에 없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격변이어야 할까? 기후 변화의 장기 효과, 치명적인 세계적 유행병, 생물학전을 비롯한 다양한 첨단 기술 전쟁 등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대표할 한 가지 가능성을 언급하고 싶다. 단기적으로 보면 가장 가능성이 낮은 것은 맞지만, 굳이 언급하고자 하는 이유는 대다수 사람들이 아마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비록 단기적으로는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그 일은 결국에는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일어난다면, 누구도 떠올리지 못한 악몽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을 피하려면, 우리의 비행 기술을 이 책에서 다룬 범위 너머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룡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안다. 그들은 무려 1억 7천 5백만 년 동안 육지를 지배했다. 공룡에게는 나름의 방식으로 지구가 완벽한 행성이었다····· 새파란 하늘에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산만 한 크기의 바윗덩어리가 시속 6만4천 킬로미터로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충돌하기 전까지는. 충돌 즉시 그 지역의 공룡들은 2천도가 넘는 고열에 증발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충돌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이 동시에 수십억 개가 터진 것과 맞먹었다. 바다는 끓어올랐고, 높이 1.6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일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러나 최후까지 남아 있던 공룡을 전멸시킨 것은 아마 폭발의 열기도 산불도 지진 해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충돌로 생긴 엄청난 양의 재, 먼지, 황산 방울이 하늘로 올라가서 짙은 구름이 되어 전 세계를 뒤덮었다. 세계는 여러 해 동안 어둠에 잠긴 채 식어갔다. 유카탄반도의 공룡은 운이 좋은 쪽이었다. 즉사했으니까. 살아남은 공룡들은 그들이 의지하는 식물들이 햇빛 부족으로 죽어 감에 따라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우리 포유류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아마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며 버틴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우리는 어리둥절해하며, 수염을 씰룩거리고 눈을 깜빡이면서 서서히 돌아오는 햇빛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우리는 극소수였던 그 생존자들의 후손이다. 그 생존자들은 생쥐와 코뿔소, 코끼리와 캥거루, 영양, 고래, 박쥐, 인간으로 진화했다.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았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그렇게 운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더 작은 운석은 지구에 종종 충돌하며, 6천5백만 년 전에 공룡을 전멸시킨 것만큼 커다란 운석이 다시금 충돌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더 큰 것이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잠 못 이루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독자의 생애 동안에, 심지어 다음 주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다. 6천5백만 년은 긴 시간이며, 다시 기나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큰 충돌이 닥칠 수도 있다. 그렇긴 해도, 때때로 나도 조금 비관적인 분위기에 휩싸일 때 그런 생각을 하곤 하는데, 몇몇 이들은 이제 인류가 그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른 누가 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 행성의 운명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대비하는 한 가지 방법은 태양 주위의 타원 궤도를 도는 천체 중에서 원형에 가까운 궤도를 도는 지구와 충돌할 위험이 있는 것을 검출하고, 차단하거나 방향을 돌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인류는 머지않아 그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 중요한 한 걸음은 우주선 로제타호를 혜성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음 단계는 위협적인 소행성이나 혜성을 조금 다른 궤도로 밀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 궤도가 지구 궤도와 더 이상 교차하지 않도록 그것들의 속도를 조금 더 높이거나 늦출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속도를 아주 조금만 바꾸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산만 한 크기의 운석에 영향을 미치려면 아주 큰 힘을 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 위협이 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혜성이든 멈출 수 없는 유행병이든 11장에서 얻은 교훈을 유념하여 화성 같은 다른 행성에 정착지를 세우는 일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화성에도 거대한 소행성이 충돌할 수 있다. 그러나 두 행성이 같은 소행성에, 또는 같은 유행병에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속담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화성에 정착지를 세우는 일은 엄청나게 어렵다. 산소는 아예 없고, 물도 거의 업삳. 또한 인류의 대다수는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종은 구할 수 있다. 적어도 기억은 남을 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 쌓은 모든 것, 음악, 미술과 건축, 문학, 과학 등을 기록한 저장소를 세우면 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지구에 정착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것이 화성에 가고자 하는 한 가지 이유다.
11장에서 동식물이 현재의 안락한 곳에서 멀리 떨어진 미지의 세계로 자식을 보내려는 외향 충동을 지닌다는 말을 했을 때, 인류 역사를 떠올리지 않았는지? 모험 정신? 무모한 탐사?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무런 단서조차 얻지 못한 채 서쪽으로 항해를 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같은 위대한 탐험가들을 부추긴 충동을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세계 일주 탐험에 나선 페르디난드 마젤란(비록 그는 귀국하지 못하고 살해당했지만)을? 적어도 아메리카의 사례에서는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박해를 피해 떠난 정착민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나는 진화생물학자이기도 하므로, 더 깊은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천 세기 전 우리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 나와 아시아, 유럽, 호주에 정착했고, 베링해협을 건너서 최초의 진정한 아메리카인이 되었다. 그들도 같은 외향 충동에 내몰렸을까? 위대한 역사적 이주의 일부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그냥 대대로 방황한 것일 뿐일까?
또는 수백만 세기 전으로 돌아가자면, 최초의 어류가 뭍으로 올라오는 모험을 한 것도 같은 외향 충동에서였을까? 그 물고기는 유달리 모험심 강한 총기류였을까? 아니면 그저 우연한 사고로 벌어진 일이었을까? 최초로 공중으로 뛰어오른 파충류는 어떨까? 최초로 도약 야심을 드러낸 깃털 달린 공룡은 조류라는 위대한 가문을 탄생시키게 된다. 명석한 선구적인 개체였을까? 아니면 오로지 우연이 한 일일까? 나는 정말로 알고 싶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문자 그대로 다른 세계로의 이주든, 낯선 수학적 공간을 추상적으로 날아다니는 마음의 비행이든 간에. 그 비행은 망원경을 통해서 저 멀리 멀어지는 은하를 향해 도약하는 것일 수도 있고, 빛나는 현미경을 통해 살아 있는 세포의 엔진실 깊숙이 잠수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거대 강입자 충돌기의 거대한 원형 통로로 입자를 가속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장엄하게 팽창하는 우주의 미래로 나아가거나, 태양계의 탄생 이전으로 암석을 계속 역추적하여 시간의 기원 자체를 살펴보는 것처럼 시간 속을 날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비행이 중력으로부터 세 번째 차원으로의 탈출인 것처럼, 과학은 일상생활의 평범함으로부터 나선을 그리면서 상상력이 점점 희박해지는 높이까지 탈출하는 것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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