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같은 하루가 흐른다
겨우 참아왔던 눈물을
또 한번 참아요
아직까지 아픈줄도 모르겠어
그냥 악몽같은시간이
지나가길 바랐어
내앞에 있는건 부드럽고 따스했던
그 사람이 아닌 낯선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요
바람이 또 불어온다
이별이 내게로 온다
난 준비도 못했었는데
비마저 내리려 하나봐요
안녕 마지막 한마디 안녕
이제야 조금알것 같았던
사랑이 날 떠나가네요
아파 아파 하루 참았을뿐인데
어디가 아픈줄 모르게
너무나도 아팠어
내눈이 닿는곳 그대 어느곳이던지
너의 흔적들이 아직 남아있어
눈을 뗄수조차 없어요
바람이 또 불어온다
이별이 내게로 온다
난 준비도 못했었는데
비마저 내리려 하나봐요
안녕 마지막 한마디 안녕
이제야 조금알것 같았던
사랑이 날 떠나가네요
바보처럼 밀려온다
그리움이 내게온다
난 아직도 못 보냈는데
추억에 눈물이 밀려온다
안녕 마지막 한마디 안녕
이제야 조금 알것 같았던
사랑을 보내야 하네요
알랭 드 보통『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초월적 가치가 아니라 선호에 기초해서 도덕적 판단을 했다. 홉스는 「법의 원리」에서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를 즐겁게 하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를 불쾌하게 하는 것을 악이라고 부른다. 사람이란 그 기질이 서로 다 다르기 때문에 선과 악의 일반적 구별에서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가톤 하플로스, 즉 그냥 좋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클로이가 나를 "불쾌하게" 했기 때문에 클로이를 악이라고 불렀다. 그녀가 악한 존재로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가치 시스템은 절대적 기준에 따라서 클로이의 범법을 설명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전적인 도덕주의자의 잘못을 범한 셈인데, 니체는 이 점을 간결하게 요약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동기와 관계없기 오로지 그 유용하거나 해로운 결과때문에 개별적 행동들을 선하거나 악하다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된 계기를 잊어버리고, 선과 악이 결과에 관계없이 행동 자체에 내재된 특질이라고 믿게 된다.
나는 나에게 쾌락을 주느냐 고통을 주느냐에 따라서 클로이에게 어떤 도덕적 딱지를 붙일 것이냐를 결정했다. 나는 세계와 그녀가 이 세계 속에서 가지는 의무를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판단하는, 자기 중심적인 도학자였다.
사람들이 타인을 비난할 때 그 행동 자체가 악한 행동이라서가 아닌, 그 행동이 본인에게 불쾌했기 때문에 마치 그 자체로 악한 행동인 것처럼 지적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연인 관계인 남녀가 싸울 때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너가 잘못을 했으니까 내가 화나는 거라니까?" 라는 식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행동 자체가 악인 것처럼 나무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 생각인데 이럴 땐 너가 한 행동은 "나쁘다" 또는 너가 한 행동은 "잘못됐다" 라고 하기 보다는 너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싫다, 나는 그게 싫다, 너가 그래서 내가 서운하다, 속상하다, 질투가 난다, 이렇게 "내 감정"을 말하는 게 더 옳은 것 같다. 나에게 불쾌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유별나거나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드려 하지 말고, 그냥 내가 느낀 감정을 말하는게 더 성숙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더라도, 흥분해서 악을 쓰는 것 보다는 차분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왜 불쾌한 감정이 생겼는지, 그 감정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보고 이성적으로. 무조건 참거나 양보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더 잘 지내기 위해서 서운한 점에 대해서 서로 얘기할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말을 잘하는 방법으로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로 "평가가 아닌 내 감정을 말하기" 라는 글을 봤다. 대부분의 대화 상황에서 유용한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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