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요태 노래 중에 이렇게 좋은 발라드가 있는 줄 몰랐다
1분 8초부터 짱 좋았다
가끔은 내 생각 하나요
그리움에 힘들진 않나요
그래요 아니란 걸 알면서 또 바라죠
바보같은 나를 보내요
사랑을 쉽게 생각했죠
그땐 정말 이기적이였죠
한동안 이렇게 또 어리석은난
힘없이 눈물만 흘리겠죠
다 잊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제와 후회하고 있어요
돌이킬 수 없겠지만
알아요 이제 깨달아요
이럴수 밖에 없는 그대맘을 이해할께요
전보단 괜찮아 졌어요
그땐 정말 미칠것 같았죠
한 남잘 이렇게 또 잃게 되는 난
살아도 숨을 쉴 수가 없죠
다 잊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제와 후회하고 있어요
돌이킬 수 없겠지만
알아요 이제 깨달아요
이럴수 밖에 없는 그대맘을 이해 할께요
언제든 돌아오세요
지금 내 노래를 듣고있다면
부탁해요
난 안돼죠 그대 보고파요
하루도 잊을수가 없어요
많이 노력했었지만
아파요 너무 사랑해요
이렇게 그댈 찾는
날 도와줄수는 없나요
이것도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았다
너 떠난 후 많이 울었어
혼자가 되어 버렸어
나 다시는 널 볼 수 없게 된거니
딴 사람을 만나다 보면
쉽게 널 잊을 거라던
내 단순했던 생각이 틀린 거야
나만을 사랑한다 했잖아
너만 바라보게 했잖아
넌 나를 떠나 정말 괜찮은 거니
가끔씩 외로움에 취해서
너를 많이 원망했었어
날 버린 니가 너무너무 미웠어
이대로 날 떠나면 안돼
제발 포기하지 말아줘
널 사랑할 때 가장 행복했었어
Get ready back to the ga
it’s time to start
A-Yo Yo Here now here we go now
잊혀져가 gogogo 너를 원했고 go
너를 보고만 있을 때면 난 uh
행복했지만 이제는 떠나버린 내 모습
조금씩 멀어지는 내 모습
나 아직 want to say good
너의 모습 멀어져만 가 가
죽어야만 헤어진다고
그렇게 맹세한 니가
왜 내 가슴에 눈물이 되야겠니
나만을 사랑한다 했잖아
너만 바라보게 했잖아
넌 나를 떠나 정말 괜찮은 거니
가끔씩 외로움에 취해서
너를 많이 원망했었어
날 버린 니가 너무너무 미웠어
이대로 날 떠나면 안돼
제발 포기하지 말아줘
널 사랑할 때 가장 행복했었어
보너스다
눈을 감고 손 내밀어 봐
너의 손에 내가 끼워주고 싶었어
언제나 너의 손에 함께
내가 있는 거야
나와 약속해 우리 사랑을
내 안엔 너의 향기로 가득해
그 속에 너 아니면 안되는걸
이제 나의 사랑은 내가 죽는날까지
너의 안에서 살아가는거야
널 만나서 행복을 배웠어
널 만나서 사랑을 배웠어
나를 보며 웃어준 너의 그 모습에
행복은 우리 가슴안에 살고 있는거야
짜증내고 투정부리는
철없는 나를 이해해준걸 난 알아
고맙단 말은 안했지만
속으론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었어
힘들면 내 품안에서 쉬어가
지칠땐 나에게 기대 서있어
니가 힘들때마다 나는 너의뒤에서
널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게
널 만나서 행복을 배웠어
널 만나서 사랑을 배웠어
나를 보며 웃어준 너의 그 모습에
행복은 우리 가슴안에 살고 있는거야
나의 눈을 바라봐
가까이 다가와서 날 보며 말해줘
이 순간이 우리의 사랑이라고
내게 입 맞추면서 내게 속삭여줄래
너를 만나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걸
사랑한다고 세상 다 바뀌어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그댈 사랑해요
<결혼할 준비가 되다>
결혼한 지는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좀 늦게 라비는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역설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결혼이 단지 그 이수 과정에 등록한 사람에게만 중요한 수업을 해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준비는 예식에 선행하기보다 대개 10~20년 후에야 갖춰지는 것이 정상이다.
라비는 자신이 단 한 번 결혼했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언어의 교묘함 덕분이라는 점을 알아본다. 겉으로는 편리하게도 단일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 수많은 진전, 단절, 재협상, 소원한 기간, 감정적 회귀가 깔려 있어 사실상 그는 적어도 열두 번은 이혼과 재혼을 겪어온 셈이다. 오직 한 사람과 말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이정표에 도달하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의 이름이 붙은 집, 리넨으로 가득 채운 혼수, 벽난로 위에 진열된 자격증, 또는 소 몇 마리와 얼마만큼의 땅을 소유하는 것이 그런 예였다.
그런 뒤 낭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이런 실질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금전을 따지고 계산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초점이 감정적 특질로 이동했다. 올바른 감정들, 그중에서도 특히 영혼의 짝을 만났다는 믿음, 상대방이 나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느낌, 다시는 상대 말고는 다른 누구와도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이 중요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이제 라비는 낭만주의 개념들이 재난을 낳는다는 것을 안다. 그의 준비된 마음은 완전히 다른 기준들에 기초한 결과다. 그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무엇보다 완벽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은 근본에 있어서는 불완전할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 옛 동창생, 인터넷에서 사귄 새로운 친구 등도 우리를 실망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삶의 현실은 우리의 모든 본성을 변형시킨다. 상처 없이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이상에 못 미치는 양육을 받았다. 우리는 설명하기보다 싸우고, 알려주기보다 들볶고, 고민거리를 분석하기보다 초조해하고, 거짓말을 하고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려 탓을 한다.
이렇게 위험 요소들이 중첩되어 있는 와중에 완벽한 인간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낯선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기 전에 그들을 깊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화를 내는지 즉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몇 해가 걸릴 수도 있다), 이론상 그 존재함은 처음부터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모두 당연히 악몽의 전형인 '엉뚱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재앙일 이유는 없다. 진보한 낭만적 비관주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일 수는 없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또 다른 타락한 생명체와 함께 사는 현실에 나 자신을 적응시킬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혼은 '어지간히 좋은' 결혼만 있을 수 있다.
정착을 하기 전에 몇 명의 애인을 사귀어보는 것도 이 깨달음을 깊이 새기는 데 도움이 된다. '제 짝'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없으며, 가까이서 보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조금씩 잘못되었다는 진실을 직접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발견할 기회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은 나의 외로운 내면을 이해하고, 나는 왜 하필 그 농담이 그렇게 재미있는지를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적을 미워하고, 상당히 특화된 성적 시나리오를 함께 시도해보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록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은 철저히 직관에 반한다. 우리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고 대체로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발을 못 맞추는 건 나머지 사람들이라고, 그렇지만 성숙은 자신의 광기를 감지하고, 적절한 때에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만일 수시로 자신이란 사람에 대해 당황스러워지지 않는다면 자기 이해를 향한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커스틴이 까다로운 게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새장 안에서 집안 살림, 친인척, 청소 분담, 파티, 식료품 같은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면 당연히 '까다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의 허물이 아니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려는 삶의 속성일 뿐이다. 대개 난감한 것은 결혼이란 제도이지, 관련된 개인들이 아니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사랑'을 단일하고 분화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양식인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후자를 실행할 준비가 된 동시에 전자에 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집착을 인식할 때 결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처음에는 '사랑받기'에 대해서만 알고 인생을 시작한다. 아주 그릇되게도 사랑받는 일이 표준처럼 보이게 된다. 아이들은 마치 부모가 거의 항상 온정 어리고 기꺼운 마음을 유지하며 자발적으로 그들을 위로해주고 인도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먹여주고 씻겨주는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개념을 성년기까지 갖고 간다.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보살핌을 받고 다 받아들여지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마음속 은밀한 구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예측하고, 우리의 심정을 읽어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게 해줄 연인을 그린다.
이건 '낭만적'인 것 같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항상 섹스는 사랑과 불편하게 동거하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견해는 사랑과 섹스가 한 줄로 맞춰지길 기대한다. 우리가 불만스러운 삶을 수용할 정도로 강해질 때 결혼할 준비를 적절히 갖췄다 할 것이다. 그러나 간통은 실현 가능한 해답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쪽도 간통의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마음 깊이 단절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 단 한 번의 의미 없는 모험에도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반복적인 습성이 있다. 간통의 피해자는 파트너가 몇 시간 동안 낯선 이와 뒤엉켜 '배신'하는 동안에 그의 마음에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제대로 알아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여러 번 그들의 변명을 들을 수는 있지만 내심 한 가지만큼은 확신한다. 그들이 우리를 굴욕에 빠뜨리기로 작심을 한 것이며, 그들의 사랑은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지위와 함께 남김없이 증발해버렸다고 말이다. 다른 어떤 결론을 주장한다면 파도와 싸우는 꼴이 된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이제 (평온한 날에는) 행복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가르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여러 분야에서 파트너가 우리보다 더 현명하고 합리적이고 성숙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기를 바라야 하고, 그들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인내해야 한다. 또한 다른 순간에는 최고의 교사로서 모범을 보이고,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방도 알리라 지레짐작하지 않고 우리의 제안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미 완벽한 경우에나 서로 가르친다는 개념에 애정이 없다고 일축해버릴 수 있다.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알맞은' 사람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성은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러브스토리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고, 영화와 소설에 묘사된 사랑이 그가 삶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랑과는 거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 많은 경우 별거와 이혼이 불가피해 보이는 것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우리를 자주 잘못 인도하는 미적 매체들이 부과한 기대에 따라 우리의 관계를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못은 삶이 아닌 예술에 있다. 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보다 정확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시작에만 너무 얽매여 있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이해를 약속하지 않는 이야기, 우리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놓고 사랑의 여정에서 거쳐 갈 길이 우울하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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