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갔는데 이 노래 나와서 혹시 지금 튼 노래 뭐냐고 물어봐서 알아낸 곡
38초부터 시작되는 멜로디에 꽂혀서 물어봤었다
좋아했었던 영상
귀여움
재작년 대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산문을 강의하시다가 이 영상을 보여주시고 좋은 노래 가사가 곧 좋은 산문이더라 라고 하셨다
이어서 메모 (알랭 드 보통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74. 우리가 우리 짝과 얼마나 행복하든, (우리가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살지 않는 한) 그 사랑 때문에 다른 낭만적인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데도 다른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는 것을 압박으로 느끼게 될까? 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이미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왜 그것을 아쉬워할까? 어쩌면 그 답은 사랑에 대한 요구를 해결한다고 해서 반드시 갈망에 대한 요구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편치 않은 생각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75. 나는 앨리스가 말을 하고, 꺼진 촛불을 켜고,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가고, 얼굴에 흘러내린 금발 한 가닥을 손으로 빗어넘기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낭만적인 노스텔지어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아 우리가 알 기회도 얻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치면 우리는 낭만적인 노스텔지어에 젖는다. 현재와는 다른 사랑의 삶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있었을 가능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택이 필요 없었던 시간, 모든 선택(아무리 멋진 선택이라고 해도)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실로 인한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존재한다.
76. 미지의 존재에는 거울이 달려 있어, 거기에 우리의 가장 깊은, 가장 표현할 수 없는 소망들이 모두 비친다. 미지의 존재에는 방 건너편의 처음 보는 얼굴이 항상 이미 알고 있는 얼굴보다 신비하기 마련이라는 숙명적 명제가 내포되어 있다.
77. 클로이와 내가 흔히 주고 받는 농담이 있었다. 우리의 감정의 변덕을 인정하고 사랑의 빛은 전구처럼 항상 타올라야 한다는 상식적인 요구를 완화하기 위해서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어? 오늘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
둘 중의 하나가 그렇게 묻는다.
"덜 좋아해."
"그래? 아주 많이 덜?"
"아니,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10점 만점이라면?"
"오늘? 어, 한 6.5정도. 아냐 6.75에 더 가깝겠네. 너는 어떤데?"
"어이쿠, 나는 마이너스 3 정도인데. 오늘 아침에 네가 .....할 때는 12.5 정도였던 것도 같지만."
78. 또다른 중국 음식점(클로이는 중국 음식을 좋아했다)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식탁 중앙에 있는 원반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 접시들을 올려놓고 빙빙 돌려, 이번에는 새우, 다음에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원반 말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똑같은 순환 패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패턴을 따르지 않을까? 우리는 다른 경우에는 유동적이면서도, 인간 감정의 고정성에는 그릇되게 집착한다. 그래서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을 갈라놓는 난해한 분리선에 대한 관념이 생긴다. 그 분리선은 딱 두 번, 즉 관계를 시작할 때와 끝낼 때에만 넘게 된다는 생각이다. 매일, 또는 매 시간 그 경계선을 넘어서 출퇴근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사랑과 증오를 한 사람의 여러 측면에 대한 정당한 반응으로 보기보다는 둘로 딱 갈라놓고 싶어하는 충동이 있다. 다 좋은 것만 사랑하고 다 나쁜 것만 미워하며, 자신의 공격적인 본능이나 사랑하고 싶은 본능 어느 한 쪽에 의문의 여지 없이 딱 들어맞는 목표물을 찾아내고 싶어하는 유아적인 요구가 있다.
79. 무엇 때문에 원반이 이 감정에서 저 감정으로 돌아가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클로이가 어떤 식으로 앉아 있거나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미치도록 짜증이 날 때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달콤하고 가벼웠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클로이도 나한테 갑자기 공격을 쏟아붓는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략) 나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나는 그때까지 입을 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에 나의 어떤 행동 때문에 그녀가 속이 상해서 이 기회에 그때 쌓인 것을 표출하려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아니면 다른 사람 때문에 화가 났는데, 그 사람이 지금 없어서 내가 대용물이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의 말싸움 가운데 많은 부분에 이런 불공정한 부분이 있었다. 현재 순간에 속하지 않은, 또는 우리 둘과는 관련이 없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구실이었다는 뜻이다. (생략) (따라서 성숙이라는 것 ㅡ 잡기 힘든 목표이지만 ㅡ 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받을 만한 것을 받을 만한 때에 주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자신에게 속하고 또 거기서 끝나야 할 감정과 그런 감정을 촉발시킨 사람에게 ㅡ 나중에 나타난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ㅡ 즉시 표현해야 할 감정을 구분하는 능력)
80. 왜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우리에게 부당해 보이는 적대감과 분노를 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안에는 모순된 감정들이 수도 없이 많으며, 유아적인 반응들이 광범위하게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감정과 반응에 대해서 거의 또는 전혀 통제력이 없다. (생략) 프랑스 철학자 알랭은 말했다. "절대로 사람들이 악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냥 바늘을 찾으면 된다." 그 말은 말다툼이나 공격 뒤에 놓인 자극물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라는 뜻이다. 클로이와 나도 얼마든지 바늘을 찾을 생각이 있었으나, 엉뚱한 성적 충동으로부터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의 영향에 이르기까지 그 엄청난 복잡함에 기가 죽을 때가 많았다.
81. 우리는 기분이 좋을 때에는 투사된 미래라는 환각 속에서 위로를 찾기도 했다. 우리의 사랑은 갑자기 시작되었듯이 갑자기 끝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공동의 미래를 호소함으로써, 최소한 죽음까지 지속될 미래를 호소함으로써 현재를 강화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어디에 살 것인지, 자식을 몇이나 낳을 것인지, 어떤 식으로 연금을 받으며 살 것인지 꿈꾸었다. 사랑의 소멸에 대항하여 우리를 방어하기 위해서 우리는 웅장한 시간 속에서 함께 사는 삶을 계획하면서 즐거워했다. (생략) 상황이 그렇게까지 진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믿어야 했다.
82. 내가 전 애인들에 대해서 클로이와 이야기하기를 싫어한 것도 아마 모든 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녀들은 내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었으며, 따라서 클로이와의 관계도 비슷한 운명을 겪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존재들이었다.
83. 사랑의 비극은 그것이 시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현재의 애인과 함께 있을 때 과거의 사랑을 대하는 무관심에는 특별히 잔인한 면이 있다. 오늘은 이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달 후에는 그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길(또는 서점)을 건넌다는 것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84. 클로이와 내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랑을 계속 믿었다면, 그것은 어쩌면 결국 사랑의 순간들이 (적어도 얼마 동안은) 권태나 무관심의 순간들보다 훨씬 더 중대했기 때문이다.
85. 왜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살았을까? 어쩌면 현재를 즐기는 것은 불완전하고 위험스러울 정도로 덧없는 현실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보다는 내세에 대한 믿음 뒤에 숨는 것이 편안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미래완료형 시제에 살게 되면 이상적인 삶을 현재와 비교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를 둘러싼 상황에 헌신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지상에서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천국에서의 삶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일부 종교의 믿음과 비슷한 패턴이었다. 우리가 휴가, 파티, 일, 또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는 뭔가 불멸적인 것이 있었다. 우리는 지상에서 오래 살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수적으로 제한적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굳이 겸허하게 그런 것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필요는 없다는 태도였다. 미래완료형 시제에 사는 것에는 위안이 있다. 현재가 현실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도 없다.
86. 그러나 절대로 오지 않는 미래를 갈망한다는 것은 지나가버린 시간을 갈망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과거는 단지 그것이 과거이기 때문에 더 나아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87.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대나 기억 ㅡ 상대적으로 보호를 받는 자리 ㅡ 에서 벗어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며, 이것이 내가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삶(천국의 개입은 논외로 하고)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다. 헌신을 한 판의 달걀이라고 본다면, 현재에 헌신하는 것은 달걀을 과거와 미래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담는 위험이다. 이 비유를 사랑으로 옮긴다면, 내가 클로이와 행복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는 것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달걀이 그녀의 바구니 안에 확실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88. 우리가 서로에게 지독한 비난을 퍼부었지만 사실 그 비난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는 점은 우리가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싸웠음을 보여준다.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우리가 그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싸운 것이다. 우리의 비난에는 복잡한 이면의 의미가 깔려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이것은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는 근본적인 주장과 통한다. 어떤 사람에게 의존하는 기쁨은 그런 의존에 수반되는, 몸이 마비될 듯한 두려움에 비교하면 빛이 바랜다. 우리가 발렌시아를 돌면서 이따금씩 격렬하게 또 약간은 까닭 없이 말다툼을 했던 것은 우리 둘 다 서로의 바구니에 달걀을 모두 집어넣었다는 것 ㅡ 좀더 검전한 가계 관리를 목표로 삼기에는 무력한 처지라는 것 ㅡ 을 깨달았기 때문에 생긴 긴장을 방출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생략) 클로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를 이런 식으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 네가 이것을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놓여. 내가 너한테 꺼지라고 말하면 너는 나한테 뭘 집어던지기는 하지만 떠나지는 않거든. 그게 안심이 돼."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 소리지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생존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서로 파괴하려고 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89. 클로이를 사랑하면서 생기는 불안은 부분적으로는 내 행복의 원인이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클로이는 갑자기 나에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고,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관계를 일찌감치 끝내고 싶은 유혹이 생겼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나 습관이나 익숙함이 관계를 끝내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클로이나 나 둘 중의 하나가 끝을 내버리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연애가 자연스러운 종말에 이르기 전에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다툼을 하는 것에서 표현되었다)을 느꼈다. 증오에서 나온 살인이 아니라 지나친 사랑에서 나온, 아니 지나친 사랑이 가져올 공포에서 나온 살인이었다. 연인들은 그들의 행복의 실험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견딜 수 없을 때에만 자신들의 사랑의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90. 사랑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 답을 알 수 없을 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질문이 있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것이냐 하는 의문이다. 이것은 마치 건강과 힘이 충만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보려는 것과 같다. 사랑의 종말과 삶의 종말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후자의 경우에는 적어도 죽음 뒤에는 우리가 아무 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끝이 반드시 사랑의 끝은 아니며, 더군다나 삶의 끝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연인에게는 그런 위안이 없다.
91.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속성이나 특질을 넘어선 존재론적 지위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다. 사랑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부유함 속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애정/소유를 얻고 유지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지켜야 한다. 사랑에서건 돈에서건 오직 빈곤만이 체제의 의문을 품게 한다. 그래서 아마 연인들은 위대한 혁명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92. 어느 날 거리에서 불행한 여자 옆을 지나가다 클로이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저 여자처럼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었어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
그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몸이라는 세속적인 표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참하게도 어떻게 바꾸어볼 수 없는 표면보다 높은 곳에 사랑을 놓아달라는 요구이다. (생략)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상태의, 가장 취약한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93. 그날 나는 처음으로 클로이가 나에게서 미끄러져나간다는 것을,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가치에 의문을 품는 것을 느꼈다. (생략) 11시가 되어도 전화가 없어서 내가 먼저 전화를 하기로 했다. 자동응답기가 나왔다. 새벽 2시 30분에 다시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응답기에 내 불안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그것을 말로 하면 정말로 그런 불안이 존재하게 될 것 같았다. 의심이 비난과 비난에 대한 대응으로 비화할 것 같았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었다. 아니면 가장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클로이가 윌과 시간을 모르고 논다고 상상하기보다는 사고를 당했다고 상상하는 것이 더 편했다. 나는 새벽 4시에 경찰에 전화를 해서 (생략)
"문제를 말하면 진짜로 문제가 생겨." 클로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뭐가 나타날지 두려워 나는 감히 생각을 해볼 수가 없었다. (생략) 그 어느 때보다 환각의 힘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진실을 정면으로 보지 않으려는 충동, 생각만 하지 않으면 불쾌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녀의 부재에 얽혀든 듯한 느낌이 들고, 나의 의심에 죄책감이 들고, 나 자신의 죄책감에 화가 나서, 다음날 10시에 클로이와 만났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그녀는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젊은 베르테르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그동안 준비하지 않았던 아침 시리얼을 사러 동네 슈퍼마켓까지 갔다가 오는 수고를 했겠는가? 그녀의 무관심이 아니라 의무감이 그녀를 고발하고 있었다. (생략)
"왜 그래? 저게 네가 좋아하는 거 아냐?"
클로이는 내가 시리얼을 입에 잔뜩 넣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며 물었다.
94. 인식론적으로 곡예를 부려서 현실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떤 충동이 생긴다. 그 이야기가 유쾌하다면 믿고 싶은 충동이다. 낙관적인 바보의 세계관처럼 클로이의 저녁 이야기는 바람직했고 믿을 만했다. 영원히 들어가 앉아 있고 싶은 따뜻한 목욕물 같았다. 그녀가 그것을 믿는다면 왜 나라고 못 믿을까? 그녀에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왜 나한테는 복잡해야 할까? 나는 블룸즈버리에 있는 폴라의 아파트 바닥에서 밤을 보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속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생각하던 다른 저녁(다른 침대, 다른 남자, 수축)을 치워버릴 수 있었다. 정치가의 캐러멜 같은 약속에 눈물을 흘리는 유권자처럼, 나는 나의 가장 깊은 감정적 갈망에 호소하는 허위의 능력에 유혹당하고 있었다.
95. 노련한 의사들, 환자의 암의 첫 징후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몸 속의 축구공만한 크기의 종양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생활의 다른 면에서는 분명하고 이성적이지만, 자기 자식 가운데 하나가 죽었다거나 배우자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계속 자기 자식은 실종되었을 뿐이라고 믿거나, 배우자가 새로운 결혼을 포기하고 옛날 결혼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사랑이 난파했음에도 난파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행동한다. 사형 평결을 무시하면 죽음을 저지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실제로 죽음의 기호들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내가 고통때문에 문맹이 되지만 않았다면 못 읽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96. 사랑의 죽음의 피해자는 시신을 되살리려고 하지만 독창적인 전략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생략) 나는 클로이가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과거에 우리를 붙여놓았던 요소들을 맹목적으로 되풀이함으로써 그녀를 다시 끌어당기려고 했다. 나는 계속 키스를 했다. 그 이후 몇 주 동안 우리가 즐거운 저녁을 함께 보냈던 영화관이나 식당에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우리가 함께 웃음을 터뜨렸던 농담을 다시 했고, 우리의 몸들이 엉켜서 만들어냈던 자세를 다시 채택했다.
97. 나는 우리의 익숙한 집안 언어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했다. 과거 우리의 갈등을 완화시켜주었던 언어들이었다. 사랑의 일시적인 변덕을 인정하고, 그럼으로써 그런 변덕을 불쾌하지 않게 만들었던 헤라클레이토스적인 농담이었다.
"오늘 어디 안 좋아?" 어느 날 아침 비너스가 거의 나만큼이나 창백하고 슬퍼 보이길래 물었다.
"오늘?"
"응, 오늘. 어디 안 좋아?"
"아니, 왜? 안 좋아야 할 이유라도 있어?"
"아니."
"그런데 왜 물어?"
"모르겠어. 좀 슬퍼 보여서."
"미안해, 나도 인간이야."
"난 그냥 도와주려던 것뿐인데. 오늘은 10점 만점에 몇 점을 줄래?"
"모르겠어."
"왜 몰라?"
"피곤해."
"말해봐."
"모르겠다니까?"
"어서, 10점 만점에? 6점? 3점? 마이너스 12점? 플러스 20점?"
"모르겠어."
"추측이라도 해봐."
"정말 모르겠다니까. 가만 좀 내버려둬. 제기랄!"
98. 집안 언어를 풀어놓았으나 클로이에게는 점점 낯선 것이 되었다. 아니, 부인하고 싶지 않아서 잊은 척하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언어의 복잡성을 거부하고 외국인인 척했다. 그녀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흠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이, 과거에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렸던 말이, 갑자기 왜 화를 돋우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바뀐 것도 없는데 왜 갑자기 수많은 점에서 기분 나쁜 존재로 비난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황금시대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물어보았다. 지금은 하지 않고 있는데 과거에는 했던 것이 무엇일까? 나는 클로이의 사랑의 대상이었던 과거의 자아에 필사적으로 순응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것은 과거의 자아야말로 지금 그렇게 화를 돋우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해체를 향하는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일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99. 나는 그녀의 짜증을 돋우는 존재가 되었다. 상호 작용을 포기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책을 사다주었고, 그녀의 재킷을 세탁소에 맡겼고, 저녁값을 냈고, 크리스마스에 우리의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파리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눈에 뻔히 보이는 것들을 거슬러 사랑을 할 때 돌아오는 결과는 모욕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우울하게 할 수 있었고, 나에게 소리를 지를 수 있었고, 나를 무시할 수 있었고, 놀릴 수 있었고, 속일 수 있었고, 때릴 수 있었고, 찰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더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100. 일은 희비극의 시나리오로 풀려나갔다.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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