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은 VOS
노래 진짜 잘 부르신다....
원곡도 좋지만 한동근님이 부르시니까 더 좋다
발성법을 나한테 복사시키고 싶다
한동근님 곡 올린 김에 내가 좋다고 느꼈던 한동근님 무대 2개만 더
노래 부르는 모습도 같이 보면서 들으면 더 좋겠지만 그건 풀버전을 돈 내야 볼 수 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난 너무 가슴이 떨려서
우리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고 있네요
이건 꿈인 걸 알지만
지금 이대로 깨지 않고서
영원히 잠 잘 수 있다면
날 안아 주네요
예전 모습처럼
그 동안 힘들었지
나를 보며 위로하네요
내 손을 잡네요
지친 맘 쉬라며
지금도 그대 손은
그 때처럼 따뜻하네요
혹시 이게 꿈이란 걸
그대가 알게 하진 않을 거야
내가 정말 잘할 거야
그대 다른 생각 못 하도록
그대 이젠 가지 마요
그냥 여기서 나와 있어줘요
나도 깨지 않을게요
이젠 보내지 않을 거예요
계속 나를 안아주세요
예전 모습처럼
그 동안 힘들었지
나를 보며 위로하네요
내 손을 잡네요
지친 맘 이젠 쉬라며
지금도 그대 손은
그 때처럼 따뜻하네요
대답해줘요 그대도 나를
나만큼 그리워했다고
날 안아주네요
안쓰러운 미소로
이제 나 먼저 갈게
미안한 듯 얘길 하네요
나처럼 그대도
그대도
알고 있었군요
꿈이란걸
그래도 고마워요
이렇게라도 만나줘서
날 안아주네요
날 안아주네요
작별인사라며
작별인사라며
나 웃어줄게요
이렇게 보내긴 싫은데
뒤돌아서네요
뒤돌아 서지 말아요
다시 그 때처럼
그 때처럼
나 이제 울게요
또 다시 보내기 싫은데
이제 다시 눈을 떴는데
가슴이 많이 시리네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나 괜찮아요
다신 오지 마요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 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하동균님 버전도
<토라짐에 대하여>
"라비 씨, 어디서 일하세요?" 머리가 묻는다. 그는 턱수염을 기른 퉁명스러운 사내로 석유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학 시절 한 때 커스틴을 흠모한 적이 있다.
"도시 디자인 회사에서 일해요." 라비는 마치 자신이 여자아이처럼 느껴진다. 더 강한 남성이 있는 자리에서는 가끔 그렇다.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소통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덧붙이자면, 토라짐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한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토라짐은 우리의 가장 이른 유년기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아름답고도 위험한 이상, 즉 무언의 이해가 약속되어 있다는 이상에 경의를 표한다. 자궁에 있을 때 우리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필요가 충족되었다. 적절한 위안이 저절로 발생했다. 이 목가적인 상황은 처음 몇 해간 계속됐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알릴 필요가 없었다. 크고 친절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가늠해줬다. 우리의 눈물, 우리의 불분명함, 우리의 혼란을 꿰뚫어 보고, 우리가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불편함의 이유들을 찾아냈다. 그래서인지 연애에서 달변가조차 파트너가 자신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할라치면 본능에 따라 함구하는 쪽으로 기운다. 무언의 정확한 독심술이 파트너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진실한 징표로 느껴진다.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때만이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이해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토라진 사람의 분노를 감당해야 하는 특별한 표적이 되었을 때에도 온화하게 웃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 애처로운 역설은 알아보기 어렵지 않다. 토라진 사람은 키 180센티미터에 성인의 직업을 견뎌내고 있을지라도, 진짜 메시지는 지극히 퇴행적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 젖을 먹는 아기이니, 지금 당장 나의 부모가 되어줘야 해. 당신은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를 정확히 헤아려주어야 해. 내가 아기였을 때, 사랑에 대한 관념들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래주었듯이 말이야."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의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누군가를 우리보다 어리게 여기는 것을 윗사람 행세로 보는 생각이 만연한 탓에 우리는 성숙한 자아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ㅡ그리고 용서해주는ㅡ것이 가끔은 가장 큰 특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는다.
성숙함이란 낭만적 사랑이 사랑을 주기보다는 찾기를, 사랑하기보다는 사랑 받기를 추구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춘 편협하고 다소 인색한 감정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 그들의 철저한 의존성,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ㅡ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상호 호혜를 강렬히 원하지도 성급하게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사랑이란 말은 갈수록 부정적 의미들을 내포하게 되었다. 개인주의와 자기충족에 빠진 문화는 민족과 타인의 부름에 응하는 행동을 쉽게 등차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매혹하고 위로해주는 능력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더 자란 아이들이 가끔 큰 불안을 느끼며 판단을 내리듯이, 아이들은 아무 '요점'이 없고, 이것이 아이들의 요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ㅡ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위치에 있기 때문에ㅡ어떤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장점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약점에 대한 동정, 즉 인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고 한때 나 자신의 것이었고 결국 나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그 취약성을 동정하는 사랑으로 인도된다. 자율과 독립성을 늘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어 하는 와중에 이 무기력한 피조물은 아무도 결국은 '자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은ㅡ문자 그대로ㅡ사랑하는 능력에 의지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남의 종이 되는 것은 굴욕이 아니라 정반대라는 것을 배운다. 나 자신의 왜곡되고 만족을 모르는 본성에 끊임없이 응해야 하는 피곤한 의무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목표를 부여받았다는 위안과 특권을 알게 된다.
아이는 어른에게 사랑의 다른 측면을 가르쳐준다. 진정한 사랑은 까다롭고 불쾌한 행동 이면에 놓여 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부모는 울음, 발길질, 슬픔, 화가 진정 무엇 때문인지를 짐작해야 한다. 이 해석 활동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평범한 성인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해석 양상과 확연히 차별되는 점은 자애심이다. 부모는 아이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괴로워하고 아파할 수는 있겠지만, 단지 아이를 찌르고 있는 핀을 확인하고 제거해주면 아이는 즉시 타고난 천진함을 회복할 것이라고. 아이가 울 때 우리는 아이가 심술궂거나 자기 연민에 빠졌다고 비난하지 않고,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한다. 아이가 깨물 때 우리는 아이가 틀림없이 겁을 먹었거나 순간적으로 골이 났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배고픔. 소화장애, 수면 부족이 기분에 서서히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잘 알아본다.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입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성인들의 관계에서도 심술궂음과 잔인함을 보아 넘기고 거의 항상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낼 수 있다. 인류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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