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분위기가 신비롭다
동화책 속의 신비로운 생물들이 나올 것 같은 느낌
아이유님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서로를 닮아 기울어진 삶
소원을 담아 차오르는 달
하려다 만 괄호 속의 말
이제야 음 음 음
어디도 닿지 않는 나의 닻
넌 영원히 도착할 수 없는 섬 같아
헤매던 날
이제야 음 음 음
기록하지 않아도
내가 널 전부 기억할 테니까
기다려
기어이 우리가 만나면,
시간의 테두리 바깥에서
과거를 밟지 않고 선다면
숨이 차게 춤을 추겠어
낮에도 밝지 않은 나의 밖
끝없는 밤 남겨진 반
넌 어떨까 나와 같을까
알 수 없음에 아파지던 맘
더 멀리 자유 그 위로 가자
내일이 우릴 찾지 못할
곳에서 기쁘게 만나
이제야 한눈에 찾지 못해도 돼
내가 널 알아볼 테니까
기다려
기어이 우리가 만나면,
시간의 테두리 바깥에서
과거를 밟지 않고 선다면
숨이 차게 춤을 추겠어
드디어
기다림의 이유를 만나러
꿈결에도 잊지 않았던
잠결에도 잊을 수 없었던
너의 이름을 불러 줄게
기다려
잃어버렸던 널 되찾으러
엉키었던 시간을 견디어
미래를 쫓지 않을 두 발로
숨이 차게 달려가겠어
긴긴 서사를 거쳐
비로소 첫 줄로 적혀
나 두려움 따윈 없어
서로를 감아 포개어진 삶
그들을 가만 내려보는 달
여전히 많아 하고 싶은 말
우리 좀 봐 꼭 하나 같아
이건 방금 책 읽다가 메모한 문장들
아직 20장도 안 읽었는데 벌써 메모하고 싶은 문장이 이렇게 많았다
일단 여기까지만 써놓고 읽으면서 추가로 써야겠다
책 이름은 [알랭 드 보통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1.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언젠가 꿈 속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와 마주치게 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 받을 수 없을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그리움을 해소해줄 존재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기도는 절대로 응답받을 수 없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참한 순환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에 하나 하늘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서 우리가 그리던 왕자나 공주를 만나게 해준다면, 그 만남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한 번이라도 이성의 검열에서 벗어나서 그 만남이 우리의 낭만적 운명에서 정해진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2.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불가리아 태생의 유대계 영국 작가)의 말이다.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그것이 또 얼마나 무익한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ㅡ 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고 하더라도? 냉소주의와 사랑이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갑작스러운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과장을 통하여 어떤 주어진 얼굴, 잠깐이나마 기적적으로 믿음을 가지게 된 얼굴에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함으로써 환멸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 아닐까?
3. 사랑은 내가 아주 갑자기 느끼게 된 것이다. 그녀가 어느 여름에 남동생과 로도스 섬(에게 해의 그리스 섬)에서 보낸 휴가에 대하여 아주 길고 지루할 것이 틀림없는 이야기를 시작한 직후였다. 클로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두 손이 베이지색 양모 외투의 허리띠를 만지작거리는 것(집게손가락 아래쪽에 점이 두 개 있었다)을 지켜보았으며,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마치 너무나 자명한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깨달았다. 그녀가 문장을 끝맺는 법이 없다는 것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이, 귀걸이의 취향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결론은 피할 수가 없었다. 완전한 이상화의 순간이었다. 그녀의 우아한 외투, 나의 시차, 내가 아침에 먹은 것, 4번 터미널 수하물 취급소의 음침한 인테리어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용서할 수 없는 감정적 미성숙 때문이기도 했다.
4.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용납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하면서 ㅡ어쩌면 그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ㅡ 다른 사람은 끝도 없이 이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클로이가 인간(이 말이 내포하는 모든 의미에서)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중단하고 싶었던 내 욕망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ㅡ (생략) 우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아는 것 ㅡ 비겁함, 심약함, 게으름, 부정직, 타협성, 끔찍한 어리석음 같은 것 ㅡ 을 상대에게서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선택한 사람 주위에 사랑의 방역선을 쳐놓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어떤게 된 일인지 우리가 가진 결함으로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사랑스럽다고 결정해버린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는 빠져나가고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하여 어떻게 해서든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자기 인식에서 나온 모든 증거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5.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이야기는 전화를 거는 사람의 손에 놓여 있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그 이야기의 전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전화는 나를 수동적인 역할로 묶어놓았다.
6. 차라리 편지라면 좋았을 것을. 그녀가 일주일 뒤에 전화를 했을 때 나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준비했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채 어슬렁거리다가, 면봉으로 귀를 후비며 욕조의 물이 흘러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기습을 당했다. 나는 침실에 있는 전화로 달려갔다. 목소리는 배우지 않는 한, 그래서 연기를 하지 않는 한, 밑바탕 스케치일 수밖에 없다. 내 목소리에는 긴장, 흥분, 분노가 담겨 있었는데, 만일 종이에 쓰는 글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능숙하게 지워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화기는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서 말하는 사람에게 한 번의 기회밖에 주지 않았다.
"이거 반갑군요."
나는 멍청하게 말을 이어갔다.
"점심이나 저녁을 하죠. 아니면 다른 거라도."
아니면 하고 말할 때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다. 이 단어를 글로 써 놓았다면 말로 했을 때보다 얼마나 단단하게 느껴졌을까. 내가 필자였다면 견고하고, 단단하고, 문법적으로 강력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펜을 잡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필자가 아니라 비틀거리고, 물이 줄줄 흐르고, 궁색하고, 목소리가 갈라지는 화자밖에 없었다.
7. 더 혼잡한 두번째 이탈리아 전시실에서 어느 때인가 우리는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바람에 내 손이 그녀의 손에 닿았다. 그녀는 손을 빼지 않았고, 나도 빼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우리의 눈은 맞은 편 캔버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클로이의 살갗의 감촉이 내 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서 있었다. 부정한 쾌락의 느낌에, 허락받지 않고 얻었기 때문에 느끼는 관음증적 전율에 몸이 녹을 것 같았다. 상대의 눈길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ㅡ 물론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맞은편에 걸린 캔버스는 브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우화"였다. 큐피드가 어머니 비너스에게 입을 맞추는 동안 비너스는 몰래 큐피드의 화살 하나를 뽑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눈이 먼 사랑, 큐피드의 능력의 무장해제를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여기서부터 오늘 읽은 거 추가
8. 서로 이끌리고 있다는 기호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은 어떤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내가 기호들을 찾으면 찾을수록, 읽을 수 있는 기호들이 더 많이 나타났다. 클로이의 몸의 모든 움직임에서 욕망의 증거로 해석할 수 있는 기호들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생략) 나를 이런 탐정으로 만든 것, 고민이 덜했더라면 눈치 못 채고 지나갔을 실마리들을 악착같이 쫓는 사냥꾼으로 만든 것은 욕망이었다. 나를 모든 것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로 만든 것은 욕망이었다.
9. 이해 못하겠군요. 진정한, 지속적인 사랑이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클로이가 물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겁니다. 열정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 순간적으로 홀리는 것과 사랑인지 뭔지를 구별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입니다.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서 구별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맞아요. (침묵) 그런데 이 케이크 역겹지 않아요? 이건 사지 말걸 그랬어요."
"하지만 그쪽에서 사자고 한 건데."
"알아요. 하지만 (클로이는 손으로 머리를 빗었다) 알다시피, 진지하게 말해서, 다시 아까 나한테 물어본 걸로 돌아가, 낭만적이라는 것이 시대착오냐 아니냐? 그러니까 내 말은, 만일 사람들에게 대놓고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틀림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거예요. 하지만 그것이 꼭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것은 자기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방식일 뿐이에요. 사람들도 로맨스라는 것을 믿지만, 꼭 그래야 하거나, 아니면 그러는 것이 용납되기 전에는 아닌 척하는 것일 뿐이에요.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냉소주의를 던져버릴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럴 기회를 결코 얻지 못하는 사람이 다수죠."
10. "그러니까 내 말은, 왜 자기보다 3천 배는 더 어리석은 자에게 1분이라도 시간을 쓰냐는 거예요. (생략) 섹스 때문에 그 애를 이용하는 자한테 말이죠. 만일 그 애가 마찬가지로 섹스 때문에 그 자를 이용하고 싶어한다면 그건 좋다 이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요. 따라서 그 애는 양쪽 세계에서 최악의 것만 얻고 있는 셈이죠."
"끔찍한 얘기로군요."
"그래요. 그리고 음, 정말 슬픈 얘기죠. 두 당사자가 평등한 상태에서, 서로 똑같이 줄 준비가 된 상태에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는 거예요. 한쪽은 얼른 한번 즐기고 싶어하고 다른 쪽은 진정한 사랑을 원할 때에는 관계가 성립되면 안 되죠. 거기서 모든 고민이 생기는 것 같아요. 불균형이 있기 때문에. 사랑들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인생에서 뭘 원하는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11. 우리는 머뭇머뭇, 가장 비비 꼬인 방식으로 방향과 범위를 잡아나갔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사랑에서 무엇을 찾는 걸까?" 이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당사자의 개입 거부를 미묘하게 언어적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이런 의식들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아주 진지하고 아주 유용했다. 이런 의문들, 이런 결단 (예냐 아니오냐?) 결여에는 어떤 논리가 있었다. 설사 클로이가 언젠가 "예"를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A에서 Z를 거쳐 B로 나아가는 의식에는 직접적인 의사소통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내키지 않아하는 파트너를 불쾌하게 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고, 원하는 파트너를 천천히 서로에 대한 욕망이라는 전망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라는 큰 말이 주는 위압감은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할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임으로써 누그러들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게임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부인할 수 있었다. 이 게임의 주된 규칙은 게임을 하지 않는 것처럼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 양 당사자가 게임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반적인 단어들을 이용하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 단어에 새로운 의미들을 부여했고, 암호화된 의미와 일반적 의미 사이의 긴장을 이용하고 있었다 :
암호 : "사람들은 사랑에 대하여 덜 냉소적이어야 한다."
메시지 : "나에 대한 당신의 냉소를 그만두어라."
그것은 전시 암호와 비슷하여, 한쪽의 욕망이 상대방의 욕망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수모를 겪을 위험을 피해서 가능한 한 길게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었다. 나치 대원들이 방 안으로 치고 들어오면, 연합군 에이전트들은 아주 민감한 문서(나는 당신을 원한다)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구절들을 송신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클로이와 내가 실제로 말하는 것에는 직접적으로 우리와 관련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혹의 기호들이 부인 가능할 정도로 미약한데(단순히 손이 스치는 것이나 아주 짧은 순간 더 머물다 가는 눈길), 누가 우리 이야기의 주제가 유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개의 입이 서로를 향해서 길고 위험한 여행을 할 때 생기는 엄청난 위험들, 결국은 하나의 핵심적 위험 ㅡ 저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을 것이다 ㅡ 으로 환원되는 위험들을 누그러뜨리는 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12.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그건 정말 안 되겠어요."
이어서 내가 막 절망하려는 순간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구애과정에서 수줍음은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욕망의 분명한 증거가 잘 드러나지 않을 때 그 이유의 설명수단으로 자주 동원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는 모호한 신호들과 마주쳤을 때, 이런 분명한 태도의 결여를 수줍음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 더 좋은 설명이 어디 있겠는가 ㅡ 사랑하는 사람도 바라기는 하지만, 너무 수줍어서 그렇다고 말을 못한다. 그러나 수줍음을 끌어들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마음이 환각에 사로잡혔다는 분명한 표시이다. 수줍음의 증거를 찾으려고 한다면 모든 행동을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붉히거나, 입을 다물거나,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리는 것, 이것들을 모두 수줍음의 증거라고 갖다붙일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유혹의 대상이 수줍어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호의 부재를 존재로 바꾸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심지어 수줍어하는 사람이 자신감을 내비치는 사람보다 더 욕망이 강하다. 표현을 못하는 것이 오히려 욕망이 더 강하다는 증거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가능하다.
13.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그 반대일 경우에는 태평함이 요구되는 이 게임에서 진지한 욕망이 장애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완벽함을 찾고, 그 완벽함과 자신을 비교하면 열등감을 느낀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뜻이다. 그녀와 비교하면 나는 도데체 무엇일까? 그녀가 내 초라한 입에서 떨어지는 말(그것도 내 혀가 풀려야 가능하겠지만) 가운데 몇 마디에 기꺼이 대꾸를 해주는 것도 영광인데, 하물며 나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또 아주 우아하게 차려입고 나왔다는 것("이 옷 괜찮아요?" 그녀는 차 안에서 묻더니 덫붙였다. "괜찮아야 돼요. 여섯 번씩이나 옷을 바꿔입어볼 수는 없는 것 아니에요?)은 최고의 영광이 아닌가.
14. 나는 마치 탁자 건너에 천사를 마주 대하고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멍해져서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할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풀을 먹인 하얀 탁자보에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무늬를 그리거나, 목이 마르지도 않은데 커다란 유리잔에 든 거품이 피어오르는 물을 홀짝일 뿐.
이런 식으로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 직접적으로 나 자신이 아닌 인격, 우월한 존재의 요구를 찾아내고 거기에 부응하려는 구애의 자아를 내세울 필요가 생긴다. 사랑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나? 영원히 그렇지야 않겠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구애의 이 단계에서는 그렇게 된 것이 사실이다. 구애하는 위치 때문에 나는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지 않고 그녀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내 타이가 어떤가? 하고 묻지 않고 그녀가 내 타이를 어떻게 볼까? 하고 묻게 되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상상하고 그 눈을 통하여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였다. 그 질문의 재귀적인 운동 속에서 나의 자아는 점점 배반과 비진정성에 물들게 될 수 밖에 없었다.
15.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같이 있는 사람에 관계없이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 날 저녁 나는 클로이의 욕망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서 나 자신을 바꾸려는 진정하지 못한 시도를 계속했다. 그녀는 남자에게서 뭘 기대할까? 나는 어떤 취향과 지향에 내 행동을 맞추어야 하나? 자신에게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도덕적 자아의 핵심적 기준이라고 한다면, 나는 구애 때문에 이 윤리시험에서는 완전히 탈락하고 말았다. 왜 나는 클로이의 머리 위의 칠판에서 특별광고를 하고 있는 맛있어 보이는 포도주들에 대한 내 감정을 속였을까? 미네랄에 대한 그녀의 갈증과 비교했을 때 나의 선택이 갑자기 부적절하고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구애는 나를 둘로 갈라놓았다. 진짜(알코올 같은) 자아와 거짓된(물 같은) 자아로.
16. 우리는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자기에 칼과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클로이는 너무나 오랫동안 나의 유일한 생각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내가 공유할 수 없는 하나의 생각이었다. 침묵은 저주스러운 고발장이었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침묵과 서툰 태도는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않는 사람은 유혹하기가 쉽기 때문에, 유혹이 서툰 사람이 오히려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들어간 식당과 같은 이름을 가진 「위험한 관계」라는 책에서 드 메르퇴유 후작부인은 드발몽 자작에게 편지를 쓰는데, 후작부인은 자작의 연애편지가 너무 완벽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진정한 연인의 말일 수 없다고 까탈을 부린다. 진정한 연인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안 선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랑에 걸려 넘어지고, 욕망에는 명료한 표현이 결여되어 있다(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는 나의 말의 변비를 자작의 능란한 어휘와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17. 클로이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했다. 겸손과 자기 비하가 그녀의 가장 분명한 특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 자신이 대화 주제로 떠오르면 클로이는 가장 심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냥 "나"라든가 "클로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무능력자"라든가 "신경 쇠약이 오필리아(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등장인물) 뺨칠 여자"라고 말했다. 그녀의 자기 비하가 더욱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의 위장된 호소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기 대문이다. 나는 너무 멍청해요/아니,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하는 식의 대화를 의도하는 이중적인 자기 비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18. 독창성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시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쪽으로는 전혀 다가갈 수가 없었다. 클로이의 생각으로 판단되는 것에 나를 맞추어나갈 뿐이었다. 그녀가 강인한 남자를 좋아하면 나는 강인해졌다. 그녀가 윈드서핑을 좋아하면 나는 윈드서핑 선수가 되었다. 그녀가 체스를 싫어하면 나도 체스를 싫어했다. 그녀가 연인에게서 원하는 것에 대한 나의 추측은 꼭 끼는 양복에 비유할 수 있었고, 나의 진짜 자아는 뚱뚱한 남자에 비유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은 뚱뚱한 남자가 자신에게 너무 작은 양복을 입으려고 기를 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재단한 직물에 들어가지 않는 부푼 살을 짓누르고, 바지가 터지지 않도록 숨을 멈추고 배를 쑥 들이밀었다. 내 자세가 내 마음에 들 만큼 자연스럽지 않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양복은 입은 뚱뚱한 남자가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옷이 터질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무사히 저녁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랑 때문에 불구가 되었다.
19. 우리는 계획보다는 우연에 의해서 목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실증주의와 합리주의의 정신에 심취한 구애자, 세심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사랑에 빠지는 법칙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믿는 구애자에게는 기운이 빠지는 이야기이다. 구애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덫에 걸 사랑의 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일을 진행한다. 어떤 웃음, 의견, 포크를 쥐는 방식 같은 것. 그러나 불행하게도, 설사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고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구애의 과정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계산이라기보다는 우연에 의해서이다.
20. 사랑의 고리들은 극단적인 개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논리적 인과법칙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략) 나는 아주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사랑의 고리에 걸리는 경향이 있다. 유혹하는 여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요한 자산으로 내세우지 못하는 것들이다. 나는 코밑에 약간 솜털이 있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다. 나는 보통 여자의 콧수염에는 까다로운 편인데, 이상하게도 이 여자의 경우에는 거기에 매력을 느꼈다. 내 욕망은 그녀의 따뜻한 웃음, 긴 금발, 지적인 대화보다도 그 솜털이 있는 곳에 집중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친구들과 그녀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애써 그것이 그녀가 지니고 있는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분위기"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21. 그럼에도 구애자의 고민(키스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이 차 안에 있는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구애의 어느 시점에서 배우는 관객을 잃을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유혹하는 자아는 연기에 의해서 환심을 사려는 시도를 하지만, 게임은 결국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상황을 규정할 것을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키스는 모든 것을 바꾸어버릴 터였다. 두 살갗이 접촉하게 되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가, 암호화된 말의 교환은 끝이 나고 드디어 이면의 의미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리버풀 로드 23a번지의 문 앞으로 다가가면서 나는 기호들을 오독했을 위험에 겁을 집어먹고, 비유적인 의미의 커피 한 잔을 제안할 때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생략) 몇 분 뒤에 나왔을 때도 내 의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외투로 손을 뻗으며 내 사랑에게, 절제가 최선이며 지난 몇 주 동안 품었던 공상은 공상으로 끝나야 한다고 결심한 남자의 사려 깊은 권위로 즐거운 저녁을 보냈으면 곧 다시 만나고 싶다고,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면 전화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성숙한 작별을 하게 된 나 자신에게 대견해하며, 그녀의 양 볼에 입을 맞추고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아파트를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
상황을 고려할 때, 클로이가 내 말에 쉽게 설득당하지 않고 내 스카프 끝을 잡아 나의 도주를 저지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나를 아파트 안으로 다시 끌어당겨 두 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아까 초콜릿을 기다릴 때 딱 한 번 보여주었던 웃음이었다. 그녀는 속삭였다.
"우리는 애들이 아니잖아요."
그녀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입을 자신의 입으로 덮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아름다운 키스가 시작되었다.
22.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육체의 산물이다. 무분별하며, 디오니소스적이며, 직접적이며, 이성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며, 희열을 동반한 육체적 욕망의 해소이다. 이와 비교하면 생각은 병, 질서를 강제하려는 병적 충동, 흐름에 굴복하지 못하는 침울한 정신의 상징과 다름없어 보인다. 내가 섹스를 하는 동안에 생각을 했다는 것은 성적 교류의 근본 법칙을 어긴 것이며, 타락 전의 생각없는 영역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대안이 있었을까?
23. 가장 달콤한 키스, 키스라면 이래야 한다고 꿈꾸어오던 키스였다. 가볍게 스치다가 머뭇머뭇 살며시 밀고 나가자, 우리 살갗에서는 독특한 맛이 풍겨나왔다. 이어서 압력이 강해지고, 우리 입술은 떨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두 입은 헐떡거리며 욕망을 표현했다. 내 입술은 잠시 클로이의 입술을 떠나 그녀의 뺨, 관자놀이, 귀를 찾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 몸에 밀착시켰다. 두 다리가 얽혔고, 어지럼증이 느껴지나 했더니 소파로 쓰러졌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에게 매달렸다.
24. 다음 글에 이어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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